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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고려 제7대 왕 선양공(宣讓公) 목종(穆宗)대왕 유허지, 공릉(恭陵)

구름에 달

by 碧巖 2021. 12. 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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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제7대 왕 선양공(宣讓公) 목종(穆宗)대왕 공릉(恭陵)유허지,

경기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 산100-1

 

목종(穆宗) 고려 제7대왕(980,경종5~1009,목종12)

고려의 제7대 왕. 이름은 왕송(王誦), 字는 효신(孝伸)이다.

아버지는 경종(景宗,955~981 고려 제5대왕)이며,

어머니는헌애왕후(獻哀王后) 황보씨(皇甫氏)로 일명 천추태후(千秋太后)다.

2살 때 아버지 경종(景宗)이 죽자 당숙인 성종(成宗,960~997 고려 제6대왕)이 뒤를 이었다.

990년(성종 9) 개령군(開零君)에 봉해지고, 후사로 지명된 지 7년만인 19세에 즉위했다.

즉위 첫해 12월 문무양반 및 군인에 대한 지급 체계인 전시과를 개정하고, 1004년에는 과거법을 개정했다.

1005년에는 지방관 제도를 개편하여

12절도(節度)·4도호(都護)와 동계(東界)·서북계(西北界)의 방어진사(防禦鎭使)·현령(縣令)·진장(鎭將)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관찰사(觀察使)·도단련사(都團練使)·단련사(團練使)·자사(刺史)는 모두 폐지하였다.

또한 서경을 중시하였으며, 북방지역의 군사 요충지에 대한 정비도 이루어져 성의 수리와 축조에도 힘을 썼다.

한편, 목종에게 아들이 없자

모후인 천추태후(千秋太后)는 외척인 김치양(金致陽)과 간통하여 낳은 아들을 왕으로 삼고자 했다.

1009년 정월에 모후와 김치양이 태조의 손으로 유일하게 왕위계승 자격을 가진 대량원군(大良院君)을 해치려 하자,

목종은 최항(崔沆)·채충순(蔡忠順) 등에게 대량원군을 자신의 후사로 세울 것을 지시하는 한편,

서북면도순검사 강조(康兆)에게 입위를 명했다.

대량원군(현종顯宗, 고려8대왕)의 영립은 성공했으나,

도리어 강조(康兆)에 의해 폐위되어 충주로 가던 중 적성현(積城縣)에서 강조(康兆)가 보낸 사람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능은 공릉이며, 시호는 선양(宣讓), 선녕(宣寧)이다.

시호는 선령대왕(宣靈大王)을 거쳐

孝思威惠克英定恭宣讓大王           定恭克英威惠孝思宣讓大王

  효사위혜극영정공선양대왕 에서       정공극영위혜효사선양대왕으로

능호는 공릉(恭陵)에서    의릉(義陵)으로

묘호는 민종(愍宗)에서    목종(穆宗)으로

문충공 익제 이제현(文忠公 益齋 李齊賢,1287충렬왕14~1367공민왕16)은

<고려사>에서 목종(穆宗)의 치세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경부(慶父)는 노나라(魯)의 예법을 위반하였고,

여불위(呂不韋)는 진나라(秦)의 화근을 빚어냈으며,

제나라(齊) 환공(桓公)은 자기 시체에서 벌레가 생기도록 거두는 자가 없었고,

진시황(秦始皇)은 사구지역인 모래톱에서 객사하였으니 이런 사람들이 어찌 만대의 치욕을 모면할 수 있겠는가?

목종(穆宗)은 이런 사람들의 실패를 교훈으로 하여 일의 시초부터 마땅한 방비를 하지 않았다가

결국 모자가 함께 화를 입고 왕실을 거의 망칠 뻔 하였던 것이다.

아아!  목종의 불행은 오히려 불행이 아니로다."

재위 12년, 나이 30세에 왕위에서 쫓겨난 뒤 객지에서 비참하게 비명 횡사한

목종은 생을 마감한 지 한 달 만에야 적성현 남쪽에 화장되었다.

高麗穆宗大王恭陵遺址碑

고려목종대왕공릉유지비

 

고려 목종대왕 공릉 유지비로,

퇴골에 세워진 것은 고려 제7대왕 목종(穆宗)이 강조(康兆)가 보낸 군사들에 의해 퇴골에서 시해를 당하고,

죽은 후 목종 사당에 합사되었다고 한다.

목종의 능은 공릉이며 현재는 위치를 알 수 없으나, 개성의 동쪽이라고 추측한다.

죽임을 당하고 화장하여 처음 묻혔던 장소가 퇴골이라 그 기록을 알리고자 유지비 설립이 추진되었다.

 

國防部戰史編纂委員會硏究委員 柳在浩 撰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연구위원 유재호 찬

前高麗上古史學會長 鄭昌模 書

 전고려상고사학회장 정창모 서

檀紀4323年辛未十一月 日(1990.11.)

京畿道知事 李在昌建立

 경기도지사 이재창건립

 

1990년 유지비가 세워질 때,

부지 330㎡를 연안이씨 장령공파 종중(휘 언침, 諱 彦忱)에서 제공하여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릉유적비 건립추진위원

추진위원장 경기도지사 이재창(李在昌)

부위원장 대한노인회파주지회장 이규환(李圭煥)

부위원장                전국방장관 유재흥(劉載興)

추진위원                   국회의원 최무룡(崔戊龍)

25사단장 육군소장 류효일(劉孝一)

파주군수 홍종대(洪鍾大)

파주경찰서장 정현욱(鄭炫彧)

파주군교육장 김내환(金乃煥)

파주군의회의원 심재웅(沈載雄)

파주문화원장 지광웅(池光雄)

행정동우회파주지회장 김남준(金南準)

파주향교전교 노봉현(盧鳳鉉)

교하향교전교 윤녕세(尹寕卋)

적성향교전교 윤교혁(尹敎赫)

유도회파주지부장 안병상(安秉相)

유도회교하지부장 이기현(李琪炫)

유도회적성지부장 이광희(李光熙)

파산서원장 김성회(金聲會)

자운서원장 황의록(黃義祿)

용주서원장 안상익(安相益)

유현학원이사장 유순구(劉淳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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