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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조선국 역관사 순난지비, 한국전망대,미우다해수욕장

구름에 달

by 碧巖 2016. 7. 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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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國 譯官使 殉難之碑 조선국 역관사 순난지비

 

한국전망대

대마도의 카미쯔시마 최북단에 위치한 한국 전망대는

거제도까지 49.5km,

부산까지는 약 50km정도 떨어져 있어,

날씨가 좋은 날은 부산까지 아주 잘 보인다고 한다.

부산에서 불꽃 축제가 열리는 날은 대마도 사람들이 망원경을 들고 올라와 구경을 할 정도이다.

한국전망대는 일제 강점기 쓰시마에 잡혀온 한국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설이나 추석명절에 올라와

한국 땅을 바라보며 망향의 서러움을 달래기도 했던 곳이다.

그래서 1997년 부산이 보이는 이곳에 전망대를 세우게 되었고,

탑골공원의 팔각정을 본떠 건축초기 단계부터 한국산 재료를 구입하여 사용하는 등,

한국적인 것을 고려해 지었다.

 

 

조선국 역관사 순난지비

팔각정 옆에는 조선국 역관사 순난지비(朝鮮國 譯官使 殉難之碑)’가 세워져 있다.

譯官使(역관사)는 오늘날 외무고시에 합격한 직업외무공무원에 해당된다.

숙종 29년인 170325일 아침 부산항을 출항한 배 3척이 있었다.

정사 한천석(韓天錫), 부사 박세양(朴世亮)을 비롯한 108명의 역관사 일행이 탄 사선(使船)

쓰시마번의 책임자 야마가와 사쿠자에몬이 방문을 위해 보내준 예인선이었다.

출항 할 때는 날씨가 좋았으나, 정오가 지나자 기상이 악화되어 3척 모두 좌초되고 말았다.

쓰시마번과 마을 사람들이 구조에 나섰고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다.

도착지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와니우라 앞바다에서 전원이 사망하는 비참한 해난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역관사 일행은 조선통신사와는 별도로 쓰시마까지 100명 정도의 규모로 구성되어

파견된 통신사 사절로 에도(江戶)시대에 50회 이상 일본에 파견되었다.

대마도의 경조사 때, 또는 한일 외교 상 의견 절충이 필요할 때 방문하여

당시 한일 선린외교의 실질적인 중계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사고 당일은 3대 쓰시마 번주 요시마사(21대 대마도 도주 종의진)의 장례와

5대 번주 요시미치(23대 대마도 도주 종의방)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하던 중이었다.

 

1991320일 한일건립위원회가 이국의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역관사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조난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한국전망대 옆에 추모비를 세웠다.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1991년에 112개의 초석으로 비를 세웠으며

정역관사 한천석 외 111명의 이름을 돌 판에 새겼다.

 

초석을 112개로 한 이유는 역관사 일행 104명이 조난당할 때

배안에는 8명의 대마도 사람(대마도 관리 4명과 뱃길 인도자 4)이 타고 있다가 함께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익사자 명단이 발견되어 새로이 그 비 앞에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朝鮮國 譯官使 殉難之碑 조선국 역관사 순난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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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다 해수욕장

미우다 해수욕장은 1996년 일본의 바닷가 100선으로 인정받은 해수욕장으로

대마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입자가 고운 모래 해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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