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경기광주-숙안옹주(淑安翁主),회천군 양도공 황유(懷川君 良度公 黃裕)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3. 22. 22:09

본문

728x90


숙안옹주(淑安翁主)황유(黃裕)묘역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수리 산75


   李太宗大王女 淑安公主之墓 단기四二八二年 三月九日(1949)

     이태종대왕녀 숙안공주지묘 단기428239(1949)


숙안옹주(淑安翁主, ? ~ 1464)는 조선의 왕족으로,

3대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의 서11녀이다.

 

가족 관계

전주 이씨(全州 李氏)

      조부 : 1대 태조대왕(太祖大王, 1335~1408, 재위: 1392~1398)

      조모 : 신의왕후 안변 한씨(神懿王后 安邊 韓氏, 1337~1391)

   아버지 : 3대 태종대왕(太宗大王, 1367~1422, 재위: 1400~1418)

   어머니 : 후궁 김씨(後宮 金氏)

시가 회덕 황씨(懷德 黃氏)

시아버지 : 충청도관찰사 혜의공 황자후(忠淸道都觀察使 惠懿公 黃子厚)

시어머니 : 청주 한씨(淸州 韓氏)

      부마 : 봉헌대부(奉憲大夫) 회천군 양도공 황유(懷川君 良度公 黃裕, 1421~1450)

      장남 : 황정(黃汀)

      차남 : 황제(黃濟)

      삼남 : 황호(黃浩)

      사남 : 황징(黃澂)


          李太宗大王女 淑安公主之墓 단기四二八二年 三月九日(1949)



淑安翁主 夫君   良悼公黃裕之墓

숙안옹주 부군   양도공황유지묘


황유(黃裕1421~1450)

조선초기 문신으로 본관은 회덕이다.

회덕 황씨(懷德黃氏)는 고려말 조선 초에 이 지역에서 유수한 세력으로 행세한 씨족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조(姓氏條)에 의하면

당시 회덕지방의 성씨는 4개의 토성(土姓)이 있었는데, (), (), ()의 사성(四姓)이 그것이다.

회덕 황씨의 중시조(中始祖)는 황윤보(黃允寶)이다.

그는 고려말 형부전서(刑部典書)를 역임한 인물인데,

이 때부터 이들 회덕 황씨가 지금의 대전지역에서 유력한 씨족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황유는 곧 중시조 황윤보의 현손(玄孫)이며, 고려때 중추원사(中樞院使)를 지낸 자후(自厚)의 아들이다.

황자후는 조선 태종 때에 음보(蔭補)로 출사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1412(태종13)에는

형조좌참의(刑曹坐參議)에 올랐고(이 때 그는 호패법의 시행을 건의하여 이를 관철하였다),

다시 호조참의(戶曹參議)를 거쳤으며, 세종조에는 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 都觀察使), 한성부윤(漢城府尹),

중추원사(中樞院使)등의 내외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황유는 이러한 빛나는 가문의 후광을 받아 왕실과 혼인하였으니,

곧 태종의 11녀 숙안옹주(淑安翁主)의 부군으로 태종의 부마(附馬)가 된 것이다.

황유는 이로써 처음에 회천위(懷川尉 : 회천은 회덕의 옛 이름이다)에 봉해졌으며, 만년에는 봉군(封君)되었다.

황유는 숙안옹주와의 사이에 네 아들을 두었다. 그는 30하여 諡號良悼양도이다.

후에 광주(廣州) 퇴촌(退村)의 어머니(郡夫入 淸州韓氏)묘 아래에 장사되었고,

숙안옹주는 양주(楊州)에 장사되었는데,

황유의 묘는 실전(失傳)되었다가 후일 후손 생원(生員) 황규현(黃圭顯)에 의해 찾아졌고,

훗날 옹주묘가 개발로 인해 황유의 묘 아래로 이장되었다.

황유의 묘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도수리 산75에 위치하고 있다.


                正憲大夫懷川尉 諡 良悼公黃裕之墓

                    정헌대부회천위 시 양도공황유지묘




漢陽郡夫人 淸州韓氏之墓

한양군부인 청주한씨지묘



                          漢陽郡夫人 淸州韓氏之墓

                          한양군부인 청주한씨지묘

夫君 惠懿公 黃子厚 부군 혜의공 황자후의 묘는 대전 동구 마산동 산20-1에 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