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안옹주(淑安翁主)⦁황유(黃裕)묘역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수리 산75
李太宗大王女 淑安公主之墓 단기四二八二年 三月九日(1949년)
이태종대왕녀 숙안공주지묘 단기4282년 3월9일(1949년)
숙안옹주(淑安翁主, ? ~ 1464년)는 조선의 왕족으로,
제3대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의 서11녀이다.
가족 관계
전주 이씨(全州 李氏)
조부 : 제1대 태조대왕(太祖大王, 1335~1408, 재위: 1392~1398)
조모 : 신의왕후 안변 한씨(神懿王后 安邊 韓氏, 1337~1391)
아버지 : 제3대 태종대왕(太宗大王, 1367~1422, 재위: 1400~1418)
어머니 : 후궁 김씨(後宮 金氏)
시가 회덕 황씨(懷德 黃氏)
시아버지 : 충청도관찰사 혜의공 황자후(忠淸道都觀察使 惠懿公 黃子厚)
시어머니 : 청주 한씨(淸州 韓氏)
부마 : 봉헌대부(奉憲大夫) 회천군 양도공 황유(懷川君 良度公 黃裕, 1421~1450)
장남 : 황정(黃汀)
차남 : 황제(黃濟)
삼남 : 황호(黃浩)
사남 : 황징(黃澂)
李太宗大王女 淑安公主之墓 단기四二八二年 三月九日(1949년)
淑安翁主 夫君 良悼公黃裕之墓
숙안옹주 부군 양도공황유지묘
황유(黃裕1421~1450)
조선초기 문신으로 본관은 회덕이다.
회덕 황씨(懷德黃氏)는 고려말 조선 초에 이 지역에서 유수한 세력으로 행세한 씨족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조(姓氏條)에 의하면
당시 회덕지방의 성씨는 4개의 토성(土姓)이 있었는데, 황(黃), 임(任), 방(房)의 사성(四姓)이 그것이다.
회덕 황씨의 중시조(中始祖)는 황윤보(黃允寶)이다.
그는 고려말 형부전서(刑部典書)를 역임한 인물인데,
이 때부터 이들 회덕 황씨가 지금의 대전지역에서 유력한 씨족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황유는 곧 중시조 황윤보의 현손(玄孫)이며, 고려때 중추원사(中樞院使)를 지낸 자후(自厚)의 아들이다.
황자후는 조선 태종 때에 음보(蔭補)로 출사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1412년(태종13년)에는
형조좌참의(刑曹坐參議)에 올랐고(이 때 그는 호패법의 시행을 건의하여 이를 관철하였다),
다시 호조참의(戶曹參議)를 거쳤으며, 세종조에는 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 都觀察使), 한성부윤(漢城府尹),
중추원사(中樞院使)등의 내외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황유는 이러한 빛나는 가문의 후광을 받아 왕실과 혼인하였으니,
곧 태종의 11녀 숙안옹주(淑安翁主)의 부군으로 태종의 부마(附馬)가 된 것이다.
황유는 이로써 처음에 회천위(懷川尉 : 회천은 회덕의 옛 이름이다)에 봉해졌으며, 만년에는 봉군(封君)되었다.
황유는 숙안옹주와의 사이에 네 아들을 두었다. 그는 30에 卒하여 諡號가 良悼양도이다.
후에 광주(廣州) 퇴촌(退村)의 어머니(郡夫入 淸州韓氏)묘 아래에 장사되었고,
숙안옹주는 양주(楊州)에 장사되었는데,
황유의 묘는 실전(失傳)되었다가 후일 후손 생원(生員) 황규현(黃圭顯)에 의해 찾아졌고,
훗날 옹주묘가 개발로 인해 황유의 묘 아래로 이장되었다.
황유의 묘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도수리 산75에 위치하고 있다.
正憲大夫懷川尉 諡 良悼公黃裕之墓
정헌대부회천위 시 양도공황유지묘
漢陽郡夫人 淸州韓氏之墓
한양군부인 청주한씨지묘
漢陽郡夫人 淸州韓氏之墓
한양군부인 청주한씨지묘
夫君 惠懿公 黃子厚 부군 혜의공 황자후의 묘는 대전 동구 마산동 산20-1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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