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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정도공 백정 정역(貞度公 栢亭 鄭易), 증 영의정 정도공, 해주정씨 대령사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11. 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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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 영의정 정도공 백정 정역(貞度公 栢亭 鄭易) 묘소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오계리 519-12

 

 

 

 

 

 

 

 

有明朝鮮國崇政大夫議政府贊成 集賢殿大提學兼判中軍都摠制府事 

유명조선국숭정대부의정부찬성 집현전대제학겸판중군도총제부사 

贈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 諡貞度鄭公神道碑銘

증대광보국숭록대부영의정부사 시정도정공신도비명

 

대령사

 

 

 

 

 

 

 

 

증 영의정 정도공 백정 정역(貞度公 栢亭 鄭易) 

?∼1425(세종 7).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는 순지(順之), 는 백정(栢亭).

아버지는 판예의사사(判禮儀司事) 정윤규(鄭允珪)이며,

어머니는 대사성 설문우(薛文遇)의 따님이다.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장인이다.

 

1383(우왕 9)  이방원(李芳遠)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여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좌정언·교주도안렴부사(交州道按廉副使사헌부지평·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등을 역임하고,

1411(태종 11)에 한성부윤으로 정조부사(正朝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다음해 대사헌이 되었다.

1414년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예조·형조의 판서를 지내고,

1416년 대제학을 거쳐 호조판서가 되었다.

1419(세종 1)에 판한성부사·좌찬성, 다음해에 호조판서를 거쳐 대제학이 되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諡號는 정도(貞度)이다.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事觀象監事 行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

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영경연사관상감사 행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

集賢殿大提學兼判中軍都摠制府事 贈諡貞度 海州鄭公易之墓 貞敬夫人安東權氏祔左

집현전대제학겸판중군도총제부사 증시정도 해주정공역지묘 정경부인안동권씨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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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역 빌딩과 신도비

 

貞度公 鄭易 神道碑

정도공 정역 신도비 해주정씨

서초구 서초동 1705

검찰청사 앞 정곡빌딩 입구

 

정역(鄭易)은 해주 정씨 중시조 중 한명인 찬성공(贊成公) 정윤규(鄭允珪)의 아들이다.

고려 말기 정역은 태종 이방원과 같은 해 과거를 봤던 동기다.

정역은 조선왕조 초기 국정 운영에 참여하면서 친구였던 이방원이 개국 초반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는 것을 도왔다.

이방원은 정역의 딸을 숙의옹주로 삼아 효령대군의 배필로 들인다.

해주정씨들은 정역 사후에도 약 500년 동안 그의 묘지가 있는 동네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때문에 이 일대를 정곡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정곡빌딩 서관 뒤편에는 정곡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그러나 지난 1979년 당시 정역의 묘소 자리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 법원 등이 들어오기로 결정되면서

정역의 묘소는 지금의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해주정씨 집안의 사당인 대령사로 이장을 했다.

대령사에는 현재 해주정씨의 시조인 정숙과 3세조 정역의 영정 및 신주를 모신 사당과 묘소가 함께 위치해 있다.

 

정역(鄭易)한결같이 두터운 신망으로 4(四朝 : 태조·정종·태종·세종)를 섬긴 인물로서

정역은 덕과 성품이 두텁고 무거우며 침착하고 웅대한 기상을 지닌 어진 신하로

나라의 기둥과 주춧돌이며 선비들의 모범이 되었다.’ [세종대왕이 내린 제문(祭文)]

그는 고려 말 이방원과 함께 문과에 합격하여 친밀한 벗이 되고

조선왕조 초기 국정 운영에 참여하면서 태종과 운명적 관계를 맺게 된다.

 

왕실과 사돈지간으로 권력반열 올라

 

개국 초반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태조의 5남 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배필로 정역의 딸을  숙의옹주로,

뒷날 세종이 되는 셋째아들 충녕대군의 배필로 심온의 딸을 경숙옹주로 삼는다.

그들은 죽은 후에도 지호지간의 가까운 자리에 유택을 마련하여 수백 년의 세월이 함께 흐른다.

서초구 서초동에 정역의 묘소가,

이웃 방배동에 효령대군 이보의 묘소가 있었으니 바로 그 근밀함을 설명해 주는 듯하다. 

 

 

 

정역(鄭易)의 본관은 해주(海州), 는 순지(順之), 는 백정(栢亭),  諡號는 정도(貞度)이며,

할아버지는 소부소윤을 지낸 정언(鄭琂)이고

아버지는 판예의시사를 지낸 정윤규(鄭允珪)이며 어머니는 대사성을 지낸 설문우의 따님이다.

배위는 판종부시사 권사종의 따님이고,

큰아들 정충경(忠敬)은 형조참판, 둘째아들 정충석(忠碩)은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손자 정종()은 문종의 사위이니 영양위로 단종의 매부이며 형조판서로서 왕의 깊은 신임을 받았으나

단종 폐위 후 수양대군에 의해 광주에 유배되었다가 모반을 꾀하였다 하여 사약을 받고 죽었다

또한, 셋째 손녀는 세종대왕의 8남 영응대군의 부인이다.

 

그는 고려 말 문과에 이방원과 동방(同榜) 급제하여

좌정언, 교주도 안념부사, 사헌부 지평, 참지의정부사 등을 역임하고

태종11(1411)에 한성부윤으로 있으면서

명나라에 하정사(賀正使) 임정과 함께 부사(副使)로 다녀온 후 대사헌이 되었다.

이어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판한성부사와 4(···병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고

대제학을 거쳐 판중군도총제부사에 올랐다.

특히 판한성부사 재임시에는 업무 처리가 깨끗하고 옥사(獄事)의 심리가 공평하였는데,

졸한 뒤 영의정에 추증되고 정도(貞度)라는 시호를 받았다.

졸기(卒記)에 나타난 그의 인품은 사람됨이 중후하고 근검하여 사치하지 않았으며,

비록 왕실과 혼인하여 벼슬이 1품에 이르렀으나 교만한 빛이 없고,

 행정에 있어서는 너그러움과 간소를 위주로 하였다.’ 라고 적혀있다.

 

 

 

 

 

 

 

 

 

 

 

시조 정숙鄭肅 전법정랑

1세조 정언鄭琂, 정초(鄭礎) 형제

2세조 정윤규鄭允珪, 정윤경鄭允卿, 정윤진鄭允珍

3세조 정역鄭易,

4세조 정충경鄭忠敬, 정충석鄭忠碩

 

1. 조부 정언(鄭琂)

2. 부친 판예의사시 정윤규(鄭允珪)  

3. 증 영의정 정도공 백정 정역(貞度公 栢亭 鄭易) 

4. 장남 중추원부사 정충경(鄭忠敬 

        5. 영양위 정종(寧陽尉 鄭悰)-문종(文宗)의 장녀 경혜공주(敬惠公主)의 남편,

        6. 해평부원군 정미수(海平府院君 鄭眉壽)

        7. 정승휴(鄭承休)

        8. 가선대부 호조참판 해녕군 정원희(海寧君 鄭元禧)

        9. 정흠(鄭欽)

       10. 지돈녕부사 해풍군 제순공 정효준(海豊君 齊順公 鄭孝浚)

             11. 정식 (鄭植)

4. 차남 동지중추부사 정충석(鄭忠碩 

        5. 정변(鄭忭)-63녀중 4정침(鄭沈)

              6.  정윤경(鄭胤慶), 정후경(鄭後慶)

        7. 정필(鄭弼), 정협(鄭協)

                                                                                                                                                             벽암 두릉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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