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 이조참판 안의(安誼) 묘소
세종 5년(1423) ∼ 세조 13년(1467)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산174-2
순흥안씨삼파 참판공묘소
이천공 충의공 판서공 묘소 입구
증 이조참판 안의(安誼) 묘소
◆안의(安誼) 참판공. 세종 5년(1423) ∼ 세조 13년(1467).
안의(安誼)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字는 의지(宜之),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좌참찬 안숭선(安崇善)의 아들로 세종 29년(1447)에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음보(蔭補)로 궁중에서 소요되던 기름 꿀 채소 등의 출납을 맡아보던 의영고(義盈庫)의 직장(直長)을 지내고
사헌감찰(司憲監察)로 승직되어 충훈부경력(忠勳府經歷)과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고
나아가 연안부사(延安府使)와 성주목사(星州牧使)를 거쳐
성화(成化)무자(戊子1467년) 10月에 지병으로 졸(卒)하니 享年 46이요.
증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公은 천자(天姿)가 영유(英裕)하고 효우(孝友)가 돈독하여 어버이 섬김을 지성으로 하고
兄弟에 화목하였으며 동관(同官)과 붕우(朋友)에 반드시 신의로써 대하니 사람들이 심히 경모하였다 한다.
벼슬에 임하여 부지런하고 공경하며 누대(累代) 문예(文藝)로 경전과 사장(詞章)에 익숙하고
일에 접하여는 칼날을 마지함과 같이 하였다.
二大邑을 지켜 성적이 더욱 나타나서 아전에게는 위신으로 두렵게 하고
백성은 인의로서 대하여 명금(鳴琴) 영각에 치화(治化)가 대성하더니
불행(不幸)히 壽를 못하니 주위에서 모두 애석히 여기었다.
공의 배위는 파평인 감찰 윤효동(尹孝童)의 무남독녀로
4남 2녀를 두니
장남은 선공감정 안우삼(安友參)이요
차남은 형조참판 안우건(安友騫)이요
삼남은 충의위 안우익(安友益)으로 조졸하였고
사남은 선공판관 증 이조참판 안우하(安友夏)이다.
장녀는 호군 윤강랑에게 출가하였으니 부친은 파원위(坡原尉) 윤평이다.
묘역과 인근의 순흥안씨 터전이 참판공 안의의 장인인 감찰 윤효동의 소유였으나
무남독녀인 안의의 부인에게 상속되어 순흥안씨의 소유가 되였다고 하며,
이에 감찰 윤효동의 묘역 수호관리도 참판공파에서 계속한다고 한다.
通政大夫行延安都護府使 海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 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 同知經筵春秋館義禁府事
통정대부행연안도호부사 해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 증가선대부이조참판겸 동지경연춘추관의금부사
順興安公諱誼之墓 配貞夫人坡平尹氏祔
순흥안공휘의지묘 배정부인파평윤씨부
//참판공 안의安誼 가계//
5대조부 도첨의찬성사 안축(安軸)
고조부 판문하부사 안종원(安宗源)
증조부 개국공신 양도공 안경공(良度公 安景恭)
증조모 의정택주懿靜宅主 영일정씨, 문정공(文貞公) 정사도(鄭思道)의 따님
조부 판중추원사 정숙공 안순(靖肅公 安純)
부친 의정부좌참찬 문숙공 안숭선(文肅公 安崇善)
모친 송씨로 판전농시사 송천우(宋千祐)의 따님
연안부사 성주목사 안의(安誼)
배위 파평윤씨, 사헌부감찰 윤효동(尹孝童)의 무남독녀
자 안우삼安友參, 안우건安友騫, 안우익友安益, 안우하安友夏
손 안찬(安燦)상호군(上護軍),안요(安燿),안담(安燂),안훈(安燻),안습(安습),안엽(安燁),안수(安燧)
손녀 생원 손부(孫溥)에게
손녀 종남도정(終南都正) 이억수李億壽에게
증손 안홍세安弘世, 안창세安昌世, 안원세安元世
4대손 안평安枰
5대손 안홍제安弘濟
6대손 안처행安處行, 안중행安重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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