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묘려(寬洞墓廬)
대전광역시 동구 냉천로152번길 291(마산동 96)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7호
관동묘려(寬洞墓廬)
이곳은 열녀문을 하사받은
쌍청당(雙淸堂) 송유(1389~1446)의 어머니 고흥유씨 부인을 추모하는 재실로서,
문종 2년(1452) 82세로 졸하자 이곳에서 장례를 지내고 그 측면에 만든 재실이다.
류씨부인(1371~1452)은 류준(柳濬)의 딸로서 진사 송극기(宋克己)의 부인이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이 죽었으며 네 살난 아들이 있었다.
친정부모는 당시 풍습대로 재가시키려고 하였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네 살난 송유를 업은 채 개경에서 수백리를 걸어서 회덕(懷德)의 시가에 내려왔다.
그 뒤 류씨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며 아들 유(愉)를 훌륭히 키웠으나
1446년 아들 유마저 세상을 등지자 거듭 당하는 슬픔을 억제하며
손자 계사(繼祀)와 계중(繼中) 을 훌륭하게 길러 은진 송씨의 가맥을 이었고,
1452년 82세로 뜻있는 일생을 마쳤다.
아들인 쌍청당 유(愉)의 증손 여해(汝諧)가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성종의 자문에 응했고,
그의 맏아들 세충(世忠)은 군수와 장령을 지냈으며
선비들이 이상으로 삼았던 십불고생(十不顧生)을 몸소 실천한 학자로도 명망이 높았다.
세충(世忠)의 아들 기수(麒壽)는 4조(朝)의 임금을 섬기며 대사헌, 이조 판서를 역임하였느며,
기수의 사촌 인수(麟壽)는 성리학의 대가로 선비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대사헌과 이조참판을 거쳐 한성부 좌윤에 올랐으나 윤원형의 미움을 받아 을사사화에 사사 되었다.
송갑조(甲祚)는 광해군때 성균관의 유생으로 인목대비의 유폐를 반대하다가 유적에 삭제되었고,
인조반정으로 강릉 참봉에 천거되었으며, 그의 아들 우암 송시열(時烈)대에 크게 크게 가문을 빛내게 된다...
류씨 부인은 시부모를 섬기고 아들 쌍청당 송유(雙淸堂 宋愉:1389~1446)을 잘 보살펴 훌륭히 키웠으므로
효종 4년(1653)에 열녀(烈女)로서 정려(旌閭)되었고,
현종 4년(1665)에는 정려비(旌閭碑)가 세워졌다.
仁庵恩津宋公諱景洙事績碑
인암은진송공휘경수사적비
송명의선생유허비각
執端府君遺墟碑 移建事實記
집단부군유허비 이건사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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