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외가(哲宗外家)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냉정리 264(철종외가길 46-1)
철종외가(哲宗外家)
조선 철종(재위1849~1863) 4년(1853년)에 철종임금의 외숙인 염보길이 살았던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로 두고 H자형 배치를 취하고 있었으나,
행랑채 일부가 헐려 지금은 ㄷ자 모양의 몸채만 남아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一자형으로 연결되어 있고
안채와 사랑채의 공간을 작은 담장으로 간단히 분리하였다
당시 일반 사대부의 웅장한 집의 규모와는 달리 법도에 맞도록 예스럽게 지은 집이다.
사도세자의 증손인 철종이 강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할아버지 은언군 때부터다.
은언군 이인(李裀)의 장남 상계군 이담(李湛)이 홍국영의 모반죄로 몰려 유폐 당한 후 음독자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 일가족 모두가 강화로 유배되었다.
이곳에서 은언군의 부인인 상산군부인(常山郡夫人) 진천송씨 송마리아와
며느리인 군부인신씨(郡夫 申氏)는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신유박해 때 은언군 이인(李裀)은 부인과 며느리인 상계군의 부인과 함께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다.
이에 강화에는 은언군 이인(李裀)의 차남인 전계군 이광(李壙)만 홀로 남게 되었다
그에게는 정실부인 최씨와 후실 염씨와 후실이씨의 2명의 부인이 또 있었다.
철종의 어머니 용담염씨(龍潭廉氏)는 강화 출신이다.
전계군은 순조의 특명으로 유배에서 방면되어 한양도성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이때 철종(1831~1863)이 태어났는데 초명은 원범이었다. 철종이 11세 때 아버지 전계군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민지용에 의해 이복형 원경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사건이 일어났다.
이 바람에 원경은 사사되고 이씨 소생의 형 경응과 함께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원범의 나이 14살 때였다.
이처럼 철종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강화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어머니 염씨(1793~1863)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천애고아도 아니었다.
또 나무나 하는 무지렁이도 아니었다.
무식한 강화도령으로 알려진 것은 당시 권력자들이 철종의 미천한 신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철종이 강화에 산 기간은 불과 5년이다.
지금의 강화읍 관청리 소재 용흥궁은 아버지 전계대원군이 유배 당시 살았던 곳이다.
그는 자주 냉정리에 있는 외가에 들렸다.
외가는 매헌서당(梅軒書堂) 현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당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외삼촌 염보길에게서 글도 배웠을 것이다.
또 강화집과 외가 중간에 있는 찬우물 가에서 양순이(봉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제24대 왕인 헌종이 23세의 젊은 나이로 후사 없이 죽었다.
그러자 후대 왕을 누구로 할 것인가를 놓고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집안 간에 각축이 벌어졌다.
풍양조씨는 흥선대원군의 형인 이하전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안동김씨는 원범을 택하였다.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는 원범을 자신의 양자로 삼아 왕으로 지명하였다.
철종의 나이 19살 때다. 14살에 강화에 왔으니 5년 만에 왕이 되어 한양으로 돌아욌다.
매헌서당
//철종가계도//
증조부 사도세자
조부 은언군 이인(李裀)
조모 상산군부인(常山郡夫人) 진천송씨 송마리아
부 전계대원군 이광(李壙)
모 용성부대부인 용담염씨(龍潭廉氏)
3자 철종 이원범- 부인 8명 자녀 5남 1녀
철인왕후김씨 대왕대비 김씨의 근친인 영은부원군 김문근의 딸
00왕자 -조졸
귀인박씨 00왕자 -조졸
귀인조씨 00왕자- 조졸
00왕자 -조졸
숙의방씨 00왕자 -조졸
숙의범씨- 영혜옹주-금릉위(錦陵尉) 박영효에게 출가
궁인이씨
궁인김씨
궁인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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