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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소윤공 서한(大丘徐氏始祖 少尹公徐閈) 대구서씨 시조,

구름에 달

by 碧巖 2018. 7. 2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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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씨 시조 소윤공 서한(大丘徐氏始祖 少尹公 徐閈)

서한 선생 묘(충남 예산군 대흥면 하탄방리 산16)

 

大丘徐氏遠祖少尹公墓所

대구서씨원조소윤공묘소

 

 

 

高麗國朝奉大夫軍器寺少尹大丘徐公神道碑銘幷序

고려국조봉대부군기사소윤대구서공신도비명병서

 

 

 

 

 

 

 

 

 

 

 

 

 

대구서씨 시조 서한 선생

서한(徐閈)은 고려 때 조봉대부(朝奉大夫) 군기소윤(軍器少尹)을 지냈고 대구서씨 시조 이다.

고려 때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 등을 지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진 서진(徐晉)을 시조로 하는 달성서씨와 근원이 같지만

분파된 시기는 확실히 고증할 수 없다.

한양에 올라와 벼슬을 한 서한의 후손들과

고향에 남아 세거한 서진의 후손들이 각각 경파(京派)와 향파(鄕派)로 갈라져

대구서씨와 달성서씨로 분파하였다고도 한다.

근원이 같고 달성이 대구의 옛 이름이기도 하여 혼동되기도 하지만

엄연히 본관이 다르고 대동보(大同譜)도 따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시조 이후 2~6세의 세계(世系)는 실전되었으며,

7세 서익진(徐益進)은 고려 때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를 지냈고,

8세 서의(徐義)는 호조전서(戶曺典書)를 지내다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하자 은거하였다.

9세 서미성(徐彌性)이 새 왕조에 출사하여 안주목사(安州牧使)를 지냈으며,

이후 조선시대에 상신 9, 대제학 6, 왕비 1명을 비롯하여

많은 명신과 학자를 배출한 명문 거족으로 번성하였으며,

후손들은 만사공파·전첨공파·첨추공파·도위공파·봉사공파·사가공파·

               서흥파·춘헌공파·승사랑공파·장원공파·훈련봉사공파·배산파 등 12개 파로 나뉘어 있다.

 

벽암두릉연가

 

 

 

 

 

 

 

 

 

高麗朝奉大夫軍器少尹徐公閈之墓 淑夫人金氏祔左

고려조봉대부군기소윤서공한지묘 숙부인김씨부좌

 

 

 

 

 

高麗朝奉大夫軍器少尹徐公閈之墓 淑夫人金氏祔左

고려조봉대부군기소윤서공한지묘 숙부인김씨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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