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대도호부관아江陵大都護府官衙
사적 제388호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131번길 6
1993년 강릉시 청사 신축예정 용지에 대한 발굴조사로 드러난 강릉 객사터이다.
객사문인 임영관 삼문은 이 터의 남측에 국보 제51호로 지정 보존되어 있고,
서측에는 임진왜란 이후 경주에 있던 태조이성계의 어진을 모셔다 봉안하였던 집경전(集慶殿)터가 있다.
조선 영조 때인 1750년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936년(고려 태조 19)에 임영관이 창건되었고, 그후 1627년(인조 5) 대청(大廳)이 화재를 당하여,
1633년 부사 유문화(柳文華)가 다시 건축하였다. 그후 수차례의 중수와 중창을 거쳐 1927년에 이르렀다.『
임영지』에 의하면, 강릉객사의 규모는 전대청(殿大廳) 9칸, 중대청 12칸, 동대청 13칸, 낭청방(廊廳房) 6칸,
서헌(西軒) 6칸, 월랑(月廊) 31칸, 삼문(三門) 6칸 등 모두 83칸이었다고 한다.
1993년도의 발굴조사에서 고려 초기부터 중기 이후, 조선시대의 연화문 암·숫막새들과 조선시대 와편들,
11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고급 청자편들, 16·17세기의 조선 백자 및 분청자기편들이 양호한 상태로 나왔다.
이들 출토품 및 유구, 『임영지』의 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임영관은 고려 초기부터
1927년 1차, 1929년 2차의 강릉공립보통학교 설립에 따라 일제에 의하여 철거될 때까지 이 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물에는 본래 공민왕이 1366년(무오년)에 낙산사 관음에 후사를 빌기 위하여 왔다가 길이 막혀 열흘동안 강릉에 머물렀을 때 쓴 ‘임영관(臨瀛館)’ 편액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객사문에 걸려 있는 편액은 1970년대에 다시 모사 제작한 것이다.
임영관지는 1993년 이곳에 있던 경찰서의 철거로 빈터로 남아 있다가
1993년 5월 10일 강릉시 청사 신축기공식 후 관상수를 옮겨심기 위하여 캐내던 중
임영관의 건물유구가 노출됨으로써 곧 발굴조사에 착수하여 사적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중문과 동헌
동헌
별당과 의운루
임영관 삼문, 중대청, 전대청
강릉 임영관 삼문
江陵 臨瀛館 三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기와건물. 본래 강릉객사의 정문으로,
오늘날 주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그 정문만이 강릉경찰서 마당에 남아 있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승려 범일(梵日)이 관사(官舍) 터에 절을 지었으나 절은 병화(兵火)로 소실되고
그 문만이 남아 있다가 그 자리에 부관(府館)을 옮겨 지음으로써 객사문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염양사(艶陽寺)의 삼문(三門)을 객사로 옮겨 지었기 때문에 사문(沙門)이라 불려 왔다고도 한다.
양식은 주심포식(柱心包式)으로 되어 있고, 그 평면은 측면 중앙칸 자리에 세운 기둥들 사이사이에 커다란 널판장문을 쌍으로 정면 3칸에 달아 실(室)은 하나도 없다.
문루에는 고려시대 공민왕의 친필인 ‘임영관(臨瀛館)’이라는 가로 3m, 세로 1.2m 크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중대청
서헌,전대청,동대청
고려시대 공민왕의 친필인 ‘임영관(臨瀛館)’이라는 가로 3m, 세로 1.2m 크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임영관 [臨瀛館]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에 있는, 고려ㆍ조선 시대에 강릉에 임명된 관리가 머물던 건물터.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진 83칸의 건물이 있었다고 ≪임영지≫에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국보 제51호인 객사문만 남아 있다. 사적 정식 명칭은 ‘강릉 임영관’이다
의운루
칠사당七事堂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호
강원도 강릉시 경강로 2045 / 명주동 38-1
강원도 강릉시 명주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축물.
조선 시대 수령의 주요 업무가 칠사(七事)로 규정되었던 데서 연유하여
지방에서 수령의 집무처를 칠사당(七事堂)이라 명명하였다.
존심인서(存心仁恕)- 칠사라 하여 빈민과 노약자를 구호
행기염근(行己廉謹)- 비용 절약
봉행조령(奉行條令)- 명령의 준행과 전달 상황을 확인
권과농상(勸課農桑)- 제언과 식목을 관리하고 농사를 장려하
수명학교(修明學校)- 교육에 관계된 사무
부역균평(賦役均平)- 공부(貢賦)와 군역(軍役)에 관한 사무
결송명윤(決訟明允)- 노비 소송을 비롯한 잡송처리에 관한 사무
960년부터 조선 시대까지 강릉 지역의 관아가 있는 곳으로 바로 옆에 있다.
1632년(인조 10)에 한 차례 중건되었고, 1726년(영조 2)에 크게 중수하였으며,
1866년(고종 3)에 진위병(鎭衛兵)의 영(營)으로 쓰이다가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에 중건하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 수비대가 있다가 강릉군수 관사로 쓰였으며 6·25 때 민사 원조단에서 임시로 사용하였다가
1958년까지 강릉시장 관사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강릉 단오제의 신주를 빚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관아의 건축 양식과 공간 배치를 보여주는 건축물로서의 보존 가치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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