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삼도수군통제영 統營三道水軍統制營
사적 제402호
경상남도 통영시 세병로 27외(문화동)
통제사이하개하마비
삼도대중군위문
중영청
통영삼도수군통제영
統營三道水軍統制營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은 조선 후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3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해상 방어 총사령부의 터로, 1998년 2월 20일에 사적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1603년(선조 36)에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에 세운 이후,
1895년(고종 32)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세병관을 제외한 건물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다.
통제영은 1593년(선조 16)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직제를 새로 만들어
전라좌수사에게 이를 겸임하게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
삼도수군통제영’으로 통칭되며, 약칭은 ‘통영’이다.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의 한산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정유재란으로 한산 진영이 폐허가 되자, 통제영은 전세에 따라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고,
전란이 끝난 뒤에도 거제도 오아포(烏兒浦), 고성현 춘원포(春元浦) 등지로 옮겨 다니며 제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1603년(선조 36) 제6대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통제영을 두룡포(頭龍浦: 현 통영시 문화동)로 정한 이후,
이곳에다 터를 닦고 건물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1605년(선조 38) 음력 7월 14일에는 여황산 남쪽 기슭에 객사인 세병관(洗兵館), 백화당, 정해정 등을 세웠다.
1678년(숙종 4) 제57대 통제사 윤천뢰(尹天賚)가 영문 주위의 산 능선을 따라 높이 1장 반(약 4.6m),
둘레 1만 1730자(약 3.6㎞), 성가퀴 707개 규모의 평산성(平山城)을 쌓았다.
그리하여 19세기 중엽의 통영성에는 4대문(大門)과 2암문(暗門) 그리고 3포루(鋪樓)가 있었고,
세병관을 위시하여 100여 개의 관아가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강점된 뒤 세병관을 제외한 대·소 관아 100여 동의 건물들이 모두 헐렸고, 그
자리에 학교, 법원, 검찰, 세무서 등이 들어섰다.
1975년 이후에 세병관 및 주변 지역을 정비하고, 1996년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유구를 확인하였다.
통제영 건물 중 현존하는 것은 보물 제293호로 지정된 세병관 뿐이며,
1987년에 복원된 수항루(受降樓) 1동이 있다.
수항루를 지나 우측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2호인 두룡포 기사비(頭龍浦 記事碑)와 비각 건물이,
좌측에는 매표소 및 관리사 건물이 있다.
통제사 내아인 운주당(運籌堂), 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건물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 선자방) 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있다.
그 밖에 파취헌, 분뇨정 등 지역에는 충렬여자중학교와 충렬여자상업고등학교가 각각 위치하고 있는 등
대부분의 지역에 공공건물이 들어섰고, 주변 일대는 일반 주택지가 되었다.
좌청
산성청
[지과문(止戈門)]
삼도수군통제영 문화관광해설사 옥복주님의 안내로
400여년 전의 계단 위 망일루(望日樓)를 지나 지과문(止戈門)에 이르렀다.
지과문은 인조 24년(1646) 김응해(金應海) 통제사 때 세병관의 개건과 함께 세웠다고 한다.
지과(止戈)은 한자 무(武)에서 나왔는데 지(止)와 과(戈)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글자다.
과(戈)는 창이란 뜻과 함께 전쟁이란 뜻도 있기 때문에
지과문(止戈門)이란 곧 전쟁(戈)을 멈추게(止)하는 문, 평화의 문이란 뜻이라 한다.
[세병관(洗兵館)]
서유대(徐有大) 통제사가 썼다는 ‘洗兵館’ 대자 현판이 우리 눈을 압도한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현판이 아닐까 싶다.
세병관은 국보 제305호이며,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건축물인 국보 제227호 종묘 정전이고
국보 제224호 경복궁 경회루 다음 세 번째로 큰 목조건축물이라 한다.
국보 제304호 여수 진남관보다도 조금 더 크다고...
통영은 임진왜란 이후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하고 있던 곳으로
최고 수장이 종이품 삼도수군통제사이다.
초대 통제사가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
2대 통제사가 원균(元均) 장군.
삼도수군통제사는 1895년 고종 때 갑오개혁으로 통제영이 폐영될 때까지
293년 동안 211대 이상의 통제사가 역임한 것으로 나와있다.
⓵전주이씨 28인 ⓶전의이씨 14인 ⓷덕수이씨 13인 14대
⓸평산신씨 12인 14대 ⓹안동김씨 11인 12대 ⑥진주류씨 9인 10대 ⑦능성구씨 6인 7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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