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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문간공 낙봉 신광한文簡公 駱峰 申光漢/황해도사 신진申津/신홍점申鴻漸/신홍지/이조참의 정자양

구름에 달

by 碧巖 2019. 2. 1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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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부원군 문간공 낙봉 신광한

靈城府院君 文簡公 駱峰 申光漢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 65-1

 

문간공 낙봉 신광한文簡公 駱峰 申光漢

1484(성종 15)1555(명종 10)

본관은 고령(高靈).   는 한지(漢之) 또는 시회(時晦),

는 낙봉(駱峰), 기재(企齋), 석선재(石仙齋), 청성동주(靑城洞主)

공조참판 신장(申檣)의 증손

할아버지는 영의정 신숙주(申叔舟)

아버지는 내자시정(內資寺正) 신형(申泂). 어머니는 영일정씨 사포(司圃) 정보(鄭溥)의 딸.

 

 

1507(중종 2) 사마시에 합격

1510년에 식년 문과 을과 급제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를 받았다.

1513년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에 등용되고, 이어서 홍문관부수찬·교리·정언(正言공조정랑을 역임하고,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으로 경연의 시강관(侍講官)을 겸임하였다.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고금의 시무(時務)를 논하여 채택되는 바가 매우 많았으며,

1518년 특명으로 대사성에 올랐다.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 일파라고 탄핵을 받아 삼척부사로 좌천되고, 이듬해에 파직되었다. 

이어서  여주로 추방, 18년 동안 칩거하였다.

1538년 윤인경(尹仁鏡)이 이조판서가 되어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사람들을 서용하자 대사성으로 복직되었다.

대사간을 거쳐, 경기도관찰사·한성부우윤·병조참판을 역임하고,

1540년 대사헌

1542년 세자시강원의 우부빈객(右副賓客)을 겸임하고, 이어 호조참판을 거쳐 한성부판윤

1543년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거쳐,

1544년에는 이조판서가 되었다.

 

인종 때 대제학을 거쳐, 명종 즉위와 함께 우참찬이 되었으며

윤원형(尹元衡) 등이 을사사화를 일으키자 소윤(小尹)에 가담,

추성위사홍제보익공신(推誠衛社弘濟保翼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또한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라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으며,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대제학·지성균관사경연춘추관동지사(經筵春秋館同知事)를 겸임하였다.

 

이어서 영성부원군(靈城府院君)으로 추봉된 후 좌참찬·예조판서를 역임하고,

1548(명종 3)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가 되었다.

1549년 좌찬성이 되어 지성균관사와 지경연사를 겸하였다.

1553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고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1554년에 사직하고 1555년 졸 하였다.

 

문장에 능하여 시문을 많이 지었으며, 학문을 숭상하여 대사성 재임시 학도들이 심광한에게 운집하였다.

또한, 청렴하여 이조판서가 되어서는 인사를 공정히 하고,

유일(遺逸: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학덕이 높은 선비)을 많이 등용하였다.

학문에 있어서는 맹자와 한유(韓愈)를 기준으로 했고, 시문에 있어서는 두보(杜甫)를 본받았다.

저서로 기재집(企齋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  領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  諡文簡公行推誠定難衛社功臣輔國崇祿大

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 영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시문간공행추성정난위사공신보국숭록대부

靈城府院君兼 領經筵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 贈諡文簡公申光漢之墓  貞敬夫人 海州吳氏之墓

영성부원군겸 영경연사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 증시문간공신광한지묘  정경부인 해주오씨지묘

 

 

 

 

 

 

 

 

신광한 신도비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 領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行推誠定難衛社功臣輔國崇祿大夫左贊成

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 영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행 추성정난위사공신보국숭록대부좌찬성

靈城府院君兼 領經筵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 成均館大司成申光漢神道碑銘 貞敬夫人 海州吳氏之墓

영성부원군겸 영경연사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 성균관대사성신광한신도비명   정경부인 해주오씨지묘

 

 

 

 

 

 

 

 

영성부원군 낙봉 신광한묘역 후경

 

 

 

영성부원군 낙봉 신광한 차남  황해도사 신진 黃海都事 申津

 

 

奉列大夫行黃海道都事兼 春秋館記注官申公津之墓

봉열대부행황해도도사겸 춘추관기주관신공진지묘

 

 

영성부원군 낙봉 신광한 손자 신홍점申鴻漸

 

 

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 經筵參贊官行禦侮將軍世子翊衛同翊申鴻漸之墓

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 경연참찬관행어모장군세자익위동익형신홍점지묘

 

 

영성부원군 낙봉 신광한 손자 신홍지

 

忠義衛申公鴻沚之墓

충의위신공홍지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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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참의 정자양 吏曹參議 鄭自洋

 

 

정자양鄭自洋(1415~1492)

송곡 정연(松谷 鄭淵)의 둘째아들로  안평대군의 처남이다.

공양왕릉이 먼저인지 영일정씨 묘역이 먼저인지는 모르나

정자양은 성종때 이조참의를 지냈는데  어머니가 공양왕의 외손녀이다.

외가쪽의 인연으로 영일정씨와 고령신씨의 묘역이 공양왕릉 후면에 위치하고 있 는것으로 나타나 있다.

정자양鄭自洋은 송강 정철의 큰 증조할아버지이기도 하다.

 

 

 

 

  通政大夫吏曹參議迎日鄭公諱自洋之墓  配淑夫人平昌李氏祔

  통정대부이조참의영일정공휘자양지묘  배숙부인평창이씨부

 

 

 

 

 

 

 

 

이조참의 정자양 묘역후경

 

<영성부원군 문간공 신광한 가계도>

   증조부 공조참판 신장(申檣)

할아버지 영의정 신숙주(申叔舟)

   아버지 내자시정(內資寺正) 신형(申泂)

   어머니 영일정씨 사포(司圃) 정보(鄭溥)의 딸

            신광한申光漢 영성부원군 문간공(靈城府院君 文簡公)

            초배 평택임씨 군수 임만근林萬根의 딸

                 장녀 정형鄭衡,정홍鄭洪--정연鄭淵송곡松谷--정자원自源, 정자양鄭自洋, 자제自濟, 정자숙自淑

                 차녀 심의검沈義儉현령--심융沈嶐, 심업沈嶪, 심암沈巖, 심은沈訔, 심대沈岱

            재배 정경부인 해주오씨 현감 오옥정吳玉貞의 딸

                  장남 신역申湙

                  차남 신진申津 황해 도사(黃海都事)

                         손자 신홍점申鴻漸

                         손자 신홍해申鴻海

                         손자 신홍지申鴻沚

                  삼남 신애申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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