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배동삼릉慶州 拜洞三陵
사적 제219호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73-1번지
경주 배동삼릉慶州 拜洞三陵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 있는, 신라 시대 왕릉군이다.
1971년 4월 28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19호 배리삼릉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경주 배동삼릉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하단부터 신라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제53대 신덕왕(神德王),
제54대 경명왕(景明王)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신덕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의 무덤은 1953년과 1963년에 도굴 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임을 확인하였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재위 154∼184)은 백제가 침입하여 백성을 잡아가자 친히 군사를 출동하여 전장에 나아갔다.
그러나 백제가 화친을 요청하자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왜(倭)에서는 사신을 보내왔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58m, 높이 5.4m, 지름 18m이다.
제52대 효공왕(孝恭王)이 자손이 없이 죽자 백성들이
제49대 헌강왕(憲康王)의 사위인 신덕왕(제 53대 재위 912∼917, 박경휘)을 추대하였다.
견훤(甄萱)과 궁예(弓裔)의 침입이 있어 싸움에 진력하였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61m, 높이 5.8m, 지름 18m이다.
두 차례에 걸쳐 도굴을 당하여 1953년과 1963년에 내부가 조사되었다.
제54대 경명왕(재위 917∼927, 박승영)은 신덕왕의 아들로
고려 태조 왕건(王建)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大耶城)공격을 물리쳤다.
중국 후당(後唐)과 외교를 맺으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50m, 높이 4.5m, 지름 16m이다.
경주 배동 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한다,.
제8대 阿達羅王아달라왕, 제53대 神德王신덕왕, 제54대 景明王경명왕 === 三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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