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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전주이씨 수도군파 풍산부정 이외(李偎),이숙예(李淑禮),이창수(李昌壽),이헌성(李憲誠),이대복(李大福),이징후(李徵厚)

구름에 달

by 碧巖 2019. 4. 1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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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李氏守道君派豊山副正 世葬地

전주이씨수도군파풍산부정 세장지

 

豊山副正 李偎

풍산부정 이외

경기 화성시 서신면 사곳리 50-2

 

 

全州李氏  守道君派豊山副正  世葬地

전주이씨  수도군파풍산부정  세장지

 

전주이씨 수도군파

 

수도군(守道君) 이덕생(李德生)은 정종의 7남으로 어머니는 숙의 해평윤씨다.

해평윤씨는 수도군, 임언군, 석보군, 장천군 등 4남을 두었다.

장남인 수도군의 초봉(初封)은 수도정(守道正)이고 품계는 명선대부이며,

그는 부귀영화를 거절하고 양주(楊州) 묵은동에서 학문을 연구하다가  1449(세종 3) 사망했다.

그래서 그의 호는 `묵은(默隱)'이다.

수도군은 3남을 두었다.

장남은 어산부정 이검(語山副正 李儉)

차남은 동림부정 이암엄(東林副正 李嚴巖)

삼남은 풍산부정 이외(豊山副正 李偎)로 정의대부이다,

 

 

 

 

 

 

 

麻田之門

마전지문

 

 

崇慕齋숭모재

 

 

豊山副正 李偎풍산부정 이외

 

 

 

 

朝鮮國宗室 正義大夫豊山副正全州李公諱偎之壇 妣縣夫人富有沈氏

조선국종실 정의대부풍산부정  전주이공휘외지단  비현부인부유심씨

 

 

 

 

 

안릉수 이숙예 安陵守 李淑禮

 

 

 

朝鮮國宗室彰善大夫安陵守 全州李公諱淑禮之墓  妣愼人安東權氏

조선국종실창선대부안릉수    전주이공휘숙예지묘     비신인안동권씨

 

 

 

 

 

 

 

 

종남정 이창수 終南正 李昌壽

 

 

종남정 이창수 終南正 李昌壽

1481(성종 12)1519(중종 14)

호는 치재(耻齋)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정종(定宗)의 아들인 이덕생(李德生)의 증손으로  부친은 안릉수(安陵守) 이숙예(李淑禮)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조광조(趙光祖)와 교유하였다.

1498(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굉필이 김종직(金宗直)의 문도로서 붕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평안북도 희천(熙川)에 귀향 갔을 때,

조광조와 함께 수행하여, 의리를 실천하였다.

1500(연산군 6) 순천으로 이배(移排)되었을 때에도 수행하여 지극히 모셨다.

 

조광조와 주고받은 시에 남아 있는 일화가 있는데,

그의 부친이 정신병을 앓아 밤낮으로 곁에서 간호를 하다가,

어느 날 꿈에서 신약(神藥)을 얻게 되어 부친의 병을 낫게 하였다고 전한다.

향년 3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朝鮮國宗室明善大夫終南正全州李公諱昌壽之墓 妣愼夫人平壤李氏

조선국종실명선대부종남정   전주이공휘창수지묘    비신부인평양이씨

 

 

 

 

 

 

 

 

부호군 이헌성 副護軍 李憲誠

 

 

 

 

贈通政大夫戶曹參議  行龍驤衛副護軍全州李公諱憲誠之墓 配贈淑夫人安東金氏合窆

증통정대부호조참의    행용양위부호군전주이공휘헌성지묘    배증숙부인안동김씨합폄

 

 

 

 

 

 

사헌부지평 이대복 司憲府持平 李大福

 

 

贈嘉善大夫戶曹參判 行司憲府持平全州李公諱大福  配贈貞夫人靈山辛氏 之壇

증가선대부호조참판    행사헌부지평전주이공휘대복     배증정부인영산신씨 지단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증의정부좌참찬   李元俊이원준

 

 

 

 

이원준(李元俊)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증의정부좌참찬 

1572 1661

이원준의 본관은 전주(全州, 守道君派-豐山副正派-護軍公1(大福))

2대 정종의 아들 수도군(守都君)의  6세손으로

()는 백영(伯英)이고 호는 모암(慕菴)이다.

할아버지는 이헌성(李憲誠)이고 아버지는 이대복(李大福)이며 어머니는 영산신씨 유렴(有廉)의 딸이다.

선조34(1601) 진사시에 합격한 후 광해군 때는 벼슬을 하지 않았고

인조반정 이후 김장생(金長生)과 정경세(鄭經世) 등과 같이 등용되어 안의安義현감, 청산현감을 지냈고

인조14(1636) 영평(永平)현령을 지냈다.

인조22(1644) 종부시(宗簿寺) 주부를 거쳐 특전(特典)으로 품계가 통정대부에 올랐으며

1645년 청안淸安)현감을 지냈고

효종6(1655)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배명(拜命)되고 위로 3대가 추증의 은전을 받았다.

아들은 3남으로  李徵厚이징후, 이민후(李敏厚), 李之厚이지후이다.

 

 

有 朝鮮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 贈資憲大夫議政府左參贊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 李公墓碣銘

유 조선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증자헌대부의정부좌참찬겸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 이공묘갈명

大匡輔國崇祿大夫行判中樞府事兼領 經筵事監春秋館事世子府 宋時烈撰

대광보국숭록대부행판중추부사겸영 경연사감춘추관사세자부 송시열찬

正憲大夫行司憲府大司憲兼成均館祭酒 世子贊善 宋浚吉書

정헌대부행사헌부대사헌겸성균관제주 세자찬선 송준길서

正憲大夫吏曹判書兼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領 經筵春秋館成均館事世子左賓客 金壽恒象

정헌대부이조판서겸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영 경연춘추관성균관사세자좌빈객 김수항상

 

 

아래 글은 전주이씨 대동 종약원 홈페이지의 이원준에 대한 평()이다.

 

그는 성격이 온화하여 평생에 남을 흘겨보거나 참혹한 짓을 하지 않고

집에서는 기거(起居)에 엄한 법도가 있어서 항상 처자를 대함에 이를 드러내고 웃거나 성내는 일이 없었다.

집에서는 그와 같이 엄하면서도 남의 물건을 받을 때면 거저 받는 일 없이 다른 물건과 바꾸어 주기를 즐겼다.

사람들과 사귀되 성실신의하고 간곡 측은히 하였다.

친구가 빈궁하면 거두어 구휼하고 부조를 하였으며 또한 마음과 정성을 다하였다.

 

한때 외종형제들이 어렵게 되자 토지를 주어 경작케 하였는데

외종들이 임의로 처분함을 보고 아들들이 분개하여 되돌려 받고자 하니

그는 이를 만류하며 그들이 곤궁하여 한 짓이니 그대로 두라.”고 하였다.

젊어서부터 <소학> 읽기를 좋아했고 글씨를 쓰고 시를 짓되 옛사람의 것을 따라서 하였다.

일찍이 당시의 명유(名儒)들과 교유하며 아름다운 산수를 찾아 풍류를 즐기며

500여 편의 많은 시와 글을 문집으로 남겼으며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경시아배서(警示兒輩書)>도 만들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위독하자 무명지를 잘라 피를 흘려 넣어드려 회생케 한 일이 있고,

종신토록 봉양하지 못함을 원통히 여겼다.

부모의 기일이 다가오면 한달전부터 근신하며 고기반찬을 먹지 않고 제삿날이 되면 단정히 앉아서

한 끼니 죽을 먹으며 종일토록 슬퍼하며 말을 하지 않고 제사를 올렸다.

또 그는 평소에 글자를 옷 사이에 꿰매 넣게 하여 죽을 때까지 가지고 다니며 말하되

 내 옛 임금이 손수 쓰신 것을 차마 버릴 수 없음이라.”고 하였다.

그의 이러한 행동을 본 사람들은 절로 공경하였다 한다.

또 문장과 학식이 수도군과 종남정의 구업을 승계할 만하였으나 혼탁한 조정에서 벼슬하지 않고

광해군 시절에 묻혀 지내다가 인조반정 후에야 특별히 지방의 수령으로 제수되었으며

만년에는 여강에서 한가히 지내다가 현종2(1661) 정월 14, 향년 90세로 별세하였다.

묘소는 광주(廣州) 학야동 선영 유좌(酉坐)의 언덕에 부인과 합장하였다.

 

 

차남 민후(敏厚 : 양녕대군파로 출계)

인조6(1628) 유효립이 광해군을 다시 옹립하고자 계획한 것을 적발하는데 공을 세워

영사원종(寧社原從)공신이 되자 은전으로

이원준도 자헌대부 의정부 좌참판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이 되었다.

 

공이 임종 직전에 손수 쓴 절필 한 수는 다음과 같다. 

   요임금 때 하늘의 해는 사해를 비쳐 만백성을 편안케 하였으며,

   순임금 적 궁전의 바람은 훈훈하여 성남을 풀어주는 거문고 소리로다.

   천년을 매한가지로 성군의 시대 만났으니,

   태평세월 함께 즐김이 예와 이제가 똑같구나.

 

한성부서윤 이징후 漢城府庶尹 李徵厚

 

 

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 行漢城府庶尹 全州李公諱徵厚 配贈淑夫人坡平尹氏之壇

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    행한성부서윤  전주이공휘징후  배증숙부인파평윤씨지단

 

 

 

 

 

 

 

 

 

 

 

<풍산부정 이외(豊山副正 李偎) 가계도>

증조부 태조太祖이성계(李成桂1335~1408(1392~1398 재위)

증조모 신의왕후 한씨의 차남

   조부 제2대 정종定宗 이방과(李芳果1357~1419(1398~1400 재위)

   조모 측실 숙의윤씨(淑儀尹氏 1368~1417): 해평윤씨 대사헌 윤방언(尹邦彦)

            4남 수도군,임언군,석보군,장천군

   부친 수도군 이덕생(守道君 李德生?~1449)묵은공(黙隱公)수도군(守道君)/희정공(僖靖公)

   모친 정실 여산송씨(宋氏) 여성군부인(礪城郡夫人): 송계성(宋繼性)의 딸

     형 어산부정 이검(語山副正 李儉)

     형 동림부정 이암엄(東林副正 李嚴巖)

     풍산부정 이외(豊山副正 李偎)

     배위 현부인부유심씨  縣夫人富有沈氏

         자 안릉수 이숙예 安陵守 李淑禮

            배위 신인 안동권씨 

               손 終南正종남정 李昌壽이창수 恥齋치재

                    증손 李憲誠이헌성 용양위부호군, 生父 楊谷副守양곡부수 李嶾이은

                         현손 李大福이대복 증가선대부 호조참판

                                  5대손 李元俊이원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증의정부좌참찬

                                        6대손 李徵厚이징후 한성부서윤

                                               7대손 李齊亮이제량, 李齊尹이제윤, 李齊說이제열,

                                                                   李齊益이제익,  첨정 증 대사헌 李齊尙이제상

                                        6대손 李敏厚이민후 증 이조판서 出系 族叔李宗榮방숙이종영

                                        6대손 李之厚이지후

               손 高峰副守고봉부수 李堯壽이극수

 

 

 

                                                                                                                                                                          벽암 두릉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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