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륭사(法隆寺), 호류지 절-오사카
호류지(일본어: 法隆寺, ほうりゅうじ, 법륭사)는 나라현에 있으며
쇼토쿠 태자(聖德太子), 즉 우마야토노키미(厩戸王)가 세운 사원으로,
창건시기는 역시 쇼토쿠 태자가 세운 사원인 오사카의 시텐노지가 세워진 지 약 20년 뒤인
607년이라 알려져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금당(金堂), 5중탑(五重塔) 등이 있는 서원(西院)과 몽전 등이 있는 동원(東院)으로 나뉘어 있다.
서원가람(西院伽藍)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중 하나이다.
호류지의 건축물은 호키지(法起寺)와 함께
1993년에 "호류지 지역의 불교건축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법륭사(法隆寺호류지)
일본속 한국문화를 찿으려면 법륭사法隆寺를 빼 놓을수 없다.
일본 사찰중에서 우리 옛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최고의 문화재는 있는 곳이 나라(奈良)에 있는 법륭사이다.
법륭사는 소나무 참도를 따라 걸어 들어간다. 양산 통도사와 비슷하다.
그리고 왕이나 왕족이 오면 사용하는 회랑은 우리나라 불국사를 연상하게 만든다.
법륭사(法隆寺호류지) 는
요메이(용명)천황이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절을 짓고
약사여래불 조성하기를 염원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붕어 하였는데 이후
그의 아들 쇼토쿠 태자가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완성하였으니 서기 607년에 건립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서기에 의하면 670년 4월에 화재가 있어 사찰이 전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670년에 다시 재건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 건축물(금당, 5중탑, 회랑, 중문)이 있다.
법륭사(法隆寺)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한 사찰인데,
금당에 모셔져 있는 석가삼존상, 약사여래좌상도 백제의 후손인 구라쓰쿠리노도리[鞍作鳥]의 작품이라고 전하며,
몽전(夢殿)에 있는 구세관음상, 백제관음상(구다라관음), 옥충주자(玉蟲廚子 부처님을 모시는 불감)등
백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들이다.
또한, 고구려에서 건너온 담징스님이 그린 금당 벽화 등이 있어
백제와 고구려 미술의 산실이라 불리워지는 절이 법륭사이다.
쇼토쿠 태자는 서기 602년 백제에서 건너온 학승 관륵(觀勒) 스님을 존경하였으며,
관륵스님을 법륭사의 초대 주지로 임명하였다.
일본에서는 백제를 百濟라 쓰고 ‘쿠다라’라고 읽는다.
백제가 ‘일본의 큰 나라’라는 뜻이며, 신라를 新羅로 쓰고 ‘시라기’, 고구려를 高句麗로 쓰고 ‘고쿠리’라고 읽는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왔다고 하여 도래인(渡來人)이라 하는데 이것을 짧게 '도리'라고 부른다
관륵(觀勒)스님은 처음으로 일본에 달력의 역법을 가르치며 또한 천문학과 지리학,
그리고 병법인 둔갑방술(遁甲方術)을 펼침으로써 다양한 선진 구다라(백제) 학문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구다라 학승 관륵이 현대까지도 일인들에게서 존경받아온 것을 알 수 있는 발자취가 있다.
1993년 일본의 천문학자 후루카와 기이치로(古川麒一郞) 도쿄천문대 교수는,
그 당시 자신이 발견한 우주의 소행성에다
관륵 스님의 이름 ‘간로쿠’(KANROKU, 관륵)라는 이름을 붙여서 국제천문연맹(IAU)에 등록했다.
관륵 스님에 뒤이어 서기 610년에는 고구려 학승 담징 스님이 일본의 왕실로 건너왔다.
쇼토쿠 태자는 그림에 뛰어나며
일본 최초로 종이 만드는 닥나무 제지법을 일본 왕실에다 가르쳐주는 담징 스님을 대하며 경탄했다.
쇼토쿠 태자는 자신의 아버지 요메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호류지 사찰 금당의 벽면에 불상을 그려달라고
담징 스님에게 요청하여 그려준 법륭사의 사방불(四方佛)은 호류사의 금당을 수리하던 중
1949년 1월 26일 화재가 일어나 내진(內陳) 위쪽 소벽(小壁)에 그려진 비천상(飛天像)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타 버렸다. 따라서 호류사의 금당벽화에 대한 연구는 불타 버리기 전에 찍어 두었던 사진 자료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법륭사 5중목탑(五重木塔)
법륭사 금당(金堂)과 5중목탑(五重木塔)
법륭사금당벽화(法隆寺金堂壁畵)
법륭사 5중목탑(五重木塔)
일본 법륭사에 있는 본당이나 오중탑(五重塔:땅, 불, 물, 바람, 하늘의 오대(五大)를 본떠서 만든 탑),
언제 누구의 손에 만들어졌다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하지만 법륭사는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들에 의하여 건립되었다는 것이 대개의 중론이다.
일본의 유명한 종교철학자이자 미학자(美學者)이며 민예운동(民藝運動)의 지도자였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는 그의 저서(조선과 그 예술)에서
“일본의 국보로서 세계에 자랑삼고 세계의 사람들도 그 미(美)를 시인하고 있는 작품의 대부분은
과연 누구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졌는가?
그 중에도 국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의 거의 전부는 실로 조선의 민족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그것들은 일본의 국보라 부르기보다는 정당하게 말하자면 조선의 국보로 부르지 않으면 안된다”
때문에 법륭사에 있는 것의 대부분은 불교문화는 우리 선조들의 얼과 정성
그리고 불교문화의 위대하고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5중목탑(五重木塔)
백제인 기술자들이 참여해 지은 이 목탑은 창건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백제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호류지의 목탑은 높이 31.5m로 1400여년동안 2번의 큰 보수만 하고
온전하게 모습을 갖춘 제일 오래된 목탑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일 뿐 만 아니라 세계최고의 목조건축물이기도 하다.
1993년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고 다시 호류지는 세계 건축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1300년이 지나도 왜 오층탑은 무너지지 않는가>라는게 제일 말이 많았다.
이에 학자들은
1. 탑 안을 중심으로 기둥이 있어 탑 전체의 밸런스를 맞춰 초고층빌딩의 내진강도에 맞먹는 구조로 되어 있다.
2. 천년 이상의 내구성을 지닌 측백나무를 이용
3. 사용한 모든 못 및 꺾쇄에 옻칠을 해 부패를 막았다. 라고 이유를 대고 있다.
그렇다 해도 7세기의 일본이 현대에 통용될만한 튼튼한 구조물을 왜 법륭사만 만들어 놓았을까 하는 점이다.
의문은 의문을 불러 그것이 이윽고 법륭사를 건립한 쇼토쿠 태자의 수수께끼로 증폭되고 있다.
또 신기한 점은 그 지역 사람들이 말하는 것인데 오래 된 법륭사 경내에는
그 어느곳에서도 희안하게도 거미집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유메도노(夢殿) 불당
유메도노(夢殿) 불당
쇼토쿠 태자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739년에 건립한 가람을 조구오인(上宮王院) 불당이라고 하는데,
이 불당이 그 중심건물이다. 평지에 제법 높게 2중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계단, 지붕, 건물높이와 크기가 적당히 어울려 멋지다.
동원가람은 언제 건축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특이한 건물이었다.
8각형 건물인데, 동서남북에 올라가는 계단과 문을 달았다.
2중의 높은 기단과 적당한 높이의 건물은 보기에 아름다웠다.
몽전은 꼭꼭 문을 닫아 보살상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왜 관람시간에 철통같이 막아서 볼 수조차도 없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림으로 볼 수밖에 없다.
팔각형 불당 중앙의 감실에는 쇼토쿠 태자 실물 크기의 관음상을 안치하였으며,
그 주변에는 성관음 보살상(헤이안 시대), 쇼토쿠 태자의 효도상(가마쿠라 시대), 교신소즈의 건칠상(나라시대),
또 헤이안 시대에 유메노도 불당을 수리한 도센율사의 소상(헤이안 시대) 등도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백제관음상
동원 종각
이 종각은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는 건축물로, 내부에는 나라시대의 범종이 걸려 있다고 한다.
일본-신국신사辛國神社가라쿠니진자 / (0) | 2019.04.26 |
---|---|
일본-동대사東大寺도다이지/ 나라현 나라시 奈良縣 (0) | 2019.04.25 |
일본-아라시야마공원,嵐山람산공원,주은래총리시비周恩來總理詩碑, 천룡사天龍寺덴류사, (0) | 2019.04.23 |
안동-낙강정洛江亭, 경북 지방문화재 제587호, 마애권예 磨厓 權輗 (0) | 2019.04.23 |
괴산-양아록 묵재 이문건(默齋 李文楗), 이온(李熅), 이원배(李元培),이수봉(李守封), 이진간(李眞, 이윤탁한글영비 (0) | 2019.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