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릉(長壽王陵), 장군총(將軍塚)
2019년 7월 28일 일요일 네째날
장수왕(長壽王)
394 ~ 491
고구려 제20대 왕(재위 413∼491). 휘 거련(巨連:巨璉).
고구려 제18대 왕인 고국양왕(故國壤王)의 손자로
고구려 제19대 왕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맏아들이다.
모습이 괴걸(魁傑)하고 지기(志氣)가 호매(豪邁)한 대장부로,
409년(광개토대왕 19) 태자로 책봉되고, 413년 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즉위 초기 중국의 진나라(晉), 송나라(宋), 위나라(魏) 등에 사신을 파견하여 국교를 맺고,
427년(장수왕 15) 만주 퉁거우[通溝] 지방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으로 천도하여 남하정책을 추진하였다.
승려 도림(道琳)을 백제에 파견하여 백제의 허실을 탐지하는 한편 백제의 국고와 민력을 소모시키고 나서,
475년 친히 군대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여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함락하고 백제의 개로왕(蓋鹵王)을 사로잡아 죽였다.
480년(장수왕 68) 말갈(靺鞨)의 군사와 함께 신라 북부를 공략하여 고명성(孤鳴城) 등 7성을 함락시켜
남쪽으로는 아산만(牙山灣)에서 동쪽의 죽령(竹嶺)에 이르렀고,
북서쪽으로는 랴오허강[遼河] 이동(以東)의 만주지방 대부분을 차지하여,
한국 역사상 최대의 제국(帝國)을 건설하였다.
내정개혁에도 힘을 기울여 부족제도를 지방행정제도로 고쳐 5부를 신설하는 등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룩하였으며,
최장수로 98세까지 장수하여 아들인 고추대가(古鄒大加) 조다(助多)가 먼저 졸하여
손자인 문자왕(文咨王491~519)이 뒤를 이었다.
장수왕릉長壽王陵, 장군총將軍塚
장수왕릉(長壽王陵)은 중국 지린성 퉁화시 지안시(集安市) 퉁구(通溝)의 토구자산(土口子山) 중허리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돌무덤(石塚 석총)으로서, 현재 가장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돌무지무덤이다.
흔히 장군총(將軍塚)으로 불린다. 산 아래에 광개토왕릉비가 있다.
무덤은 총 7층의 단계식 피라미드로 이루어져 있고, 평면은 장방형으로서 한 변의 길이는 31.5~33미터이며,
무덤의 높이는 현재 14미터로 아파트 5층 높이에 달한다.
기단(基壇)의 무덤 둘레로 한 변에 세 개씩 호석(護石)이라 하는 적석 밀림 방지석이 배치되어 있는데,
분실되었는지 오직 동편만 가운데 호석 없이 두 개뿐이다.
현재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 정책으로 인해 많이 훼손되었다.
일찍이 도굴당한 듯하여 아무런 부장품이 남아 있지 않으며,
묘실은 횡혈식으로 벽화가 그려졌던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장수정長壽亭
장수왕릉 1호 동반무덤
장수왕의 후궁의 묘로 추정하는 1호 동반무덤
장수왕릉을 지나 바로 측면에 위치한 1호 동반무덤이라는 명칭의 고구려 왕족묘지이다.
장군총의 계단을 방불케하는 배총은
왕의 부인 또는 왕의 호위 무사의 묘라고도 하는데 장수왕의 후궁묘라고도 한다.
석묘를 덮은 석재에는
고구려와 신라시대에 볼 수 있는 물이 내부로 흐르지 못하게 하는 물 흐름 방지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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