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山歷史公園
왕산역사공원
경상북도 상주시 서성동 163-48
상주의 중심 왕산의 유래
왕산(王山)은 고도(古都) 상주(尙州)의 중앙에 위치한 명산(名山)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31대 신문왕 7년(서기687년)에
거리 1천1백9보의 상주성을 쌓고 성의 4대문 중앙에 자리한 작은 산이 왕산이다.
고려 31대 공민왕 11년(서기 1362년) 홍건적의 침략으로
고려 왕실이 상주목의 상주성을
임시 거처행궁으로 사용하였으며 이때 이 작은 산이 고려 왕실의 산이 되었다.
1700년대 제작된 상산지도(商山地圖)에는 왕산을 배경으로 관아들이 있었으며
1392년 조선조(태조원년)부터 1592년까지 경상감영을 겸한 곳이 이 왕산의 아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 상산삼악(商山三嶽)
(갑장산甲長山/806m,노음산露陰山/728.5m, 천봉산天峰山435.8m)이라 일컬어 오면서도
왕산을 영산(靈山)으로 여겼으며
1617년 창석 이준(蒼石 李埈)이 편찬한 상산지(商山誌)에 의하면
상주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임진왜란 전까지 68명이 문과에 급제한 것은 왕산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여
이 왕산을 일명 장원봉(壯元峯)이라고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왕산 이름을 앙산(央山)으로 하였다가 최근 왕산으로 바로 잡았다.
창석 이준선생이 『왕산괴정』시를 남기었고
13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산이 왕산이며
장원봉을 중심으로 왕산을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상주 경상감영(慶尙監營) 터
이곳 일대는 조선 초기 경상감영이 자리했던 터다.
조선 초에 경상감영의 본영을 경주에 두었다가
1408년(태종 8년)경상감영을 상주로 옮겨
1592년 임란시까지 200여년간 경상감영이 상주에 있었으며
경상도 관찰사가 상주목사를 겸임한때도 있었다.
歷代 尙州牧使 善政碑群
역대 상주목사 선정비군
상주 풍영루(尙州 風詠樓)
1327년 고려 충숙왕 14년에 상락군 판삼사사 김순(金恂 )의 4째 아들인
상주목사 온재 김영후(穩齋 金永煦,1292~1361)가 보수하고
1370년 공민왕 19년에 상주목사 충익공 김남득(忠翊公 金南得,1340진사시)이 재 중건 하였으나
1380년 우왕 6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정자가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1408년 상주목사 송인(宋因)과 판관 한암(韓巖)이 옛 정자터에 다시 세웠고,
1488년 성종 19년에 상주 수령 설순조(薛順祖)가 다시 누각을 건립하였다.
근재 안축(謹齋 安軸,1282~1409)이 기문을 짓고,
목은 이색(牧隱 李穡,1328~1396),
양촌 권근(陽村 權近,1352~1409),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1431~1492)의 기문과
도은 이숭인(陶隱 李崇仁,1347~1392)의 시가 전하여 진다.
상주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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