鎭川常山林氏父子忠臣公派
진천상산임씨부자충신공파
영세추모지永世追慕地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산 28
贈通訓大夫司憲府執義 常山林公諱翰追慕碑 配贈淑人信川康氏祔左 配贈淑人文化柳氏合祔
증통훈대부사헌부집의 상산임공휘한추모비 배증숙인신천강씨부좌 배증숙인문화유씨합부
贈嘉善大夫兵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行修義副尉常山林公諱敬文追慕碑 配贈貞夫人陜川李氏合祔
증가선대부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행수의부위상산임공휘경문추모비 배증정부인합천이씨합부
中訓大夫行司僕寺僉正 常山林公諱格追慕碑 配淑人晉陽鄭氏祔左 配淑人南陽洪氏合祔
중훈대부행사복시첨정 상산임공휘격추모비 배숙인진양정씨부좌 배숙인남양홍씨합부
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領經筵參贊官修撰官行鎭岺縣監成均生員常山林公諱胤宗追慕碑 配贈淑夫人忠原安氏合祔
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영경연참찬관수찬관행진령현감성균생원상산임공휘윤종추모비 배증숙부인충원안씨합부
通訓大夫行內瞻寺副正 常山林公諱春追慕碑 配淑人全義李氏祔左 配淑人昌原黃氏合祔
통훈대부행내첨사부정 상산임공휘춘추모비 배숙인전의이씨부좌 배숙인창원황씨합부
學生常山林公諱秀茂追慕碑 配孺人河陰奉氏合祔
학생상산임공휘수무추모비 배유인하음봉씨합부
學生常山林公諱大誠追慕碑 配孺人慶州李氏合祔
학생상산임공휘대성추모비 배유인경주이씨합부
贈嘉善大夫戶曹參判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副摠管 行禦侮將軍忠武衛副護軍 常山林公諱秀筌殉節追慕碑
증가선대부호조참판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행어모장군충무위부호군 상산임공휘수전순절추모비
配贈貞夫人文化柳氏合祔 배증정부인문화유씨합부
贈嘉善大夫兵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副摠管 行禦侮將軍訓練院副正常山林公諱贒追慕碑
증가선대부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행어모장군훈련원부정상산임공휘현추모비
配贈貞夫人沃溝張氏合祔 배증정부인옥구장씨합부
通德郞常山林公諱泰元追慕碑 配恭人坡平尹氏合祔
통덕랑상산임공휘태원추모비 배공인파평윤씨합부
贈通政大夫掌隸院判決事常山林公諱以元追慕碑 配贈淑夫人坡平尹氏合祔
증통정대부장예원판결사상산임공휘이원추모비 배증숙부인파평윤씨합부
仲榮居士常山林公諱㯙追慕碑 配孺人羅州朴氏合祔
중영거사상산임공휘철추모비 배유인나주박씨합부
汝固居士常山林公諱植追慕碑 配孺人全州李氏祔左 配孺人忠州崔氏合祔
여고거사상산임공휘식추모비 배유인전주이씨부좌 배유인충주최씨합부
贈通政大夫刑曹參判行通訓大夫龍驤衛副護軍常山林公諱杞追慕碑 配贈淑夫人蔚山李氏合祔
증통정대부형조참판행통훈대부용양위부호군상산임공휘기추모비 배증숙부인울산이씨합부
贈嘉善大夫漢城左尹常山林公諱檀追慕碑 配贈貞夫人平壤趙氏祔左 配贈貞夫人海州吳氏合祔
증가선대부한성좌윤상산임공휘단추모비 배증정부인평양조씨부좌 배증정부인해주오씨합부
훈련원주부 임현訓練院主簿 林贒 행 어모장군 훈령원부정行禦侮將軍訓練院副正
주부공(主簿公) 임현(林賢)은 만력병자(萬曆丙子,서기1576년 宣祖9년)10월 11일 출생하였다.
타고난 자태가 우뚝하고 용맹이 뛰어났으며 학술(學術)과 문사가 아버지를 닮음이 있었다.
아버지가 왜구에게 죽은 것을 애통하게 여겨 일찍이 서쪽을 향해 앉지를 아니했다.
혹시 아버지가 싸우다가 죽은 곳을 지나가게 되면 하늘에 부르짖고 통곡을 하니 길가던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일찍이 복수할 마음을 가지고 시를 짓기를
“아버지의 시신이 밤낮으로 숲속에서 밟히고 또 썩어가니 어찌 아버지를 죽인 왜적을 잊으리오.
충신의 유해를 죽산들에서 찾아오지 못하였으니 10년 동안 통곡을 해도 원수를 갚지 못했도다.”
1608년(선조41년) 무신년에 무과에 합격해서 곧 어모장군 훈련원 주부(主簿)를 했었다.
1619년(광해11년) 심하지역(瀋河之役)에 충성과 분노가 일어나서 곧 적개장(敵愾將)으로서
충무공 김응하(忠武公 金應河)의 진영을 향해 갈려고 어머니에게 결별을 고하기를
“불초한 아들이 운명이 기구해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평생토록 봉양하려 했는데
왕사(王事)가 견고하지 못하니 사사로운 정을 돌볼 수 없고 지금 슬하를 떠나 멀리가니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약 할 수 없으므로 다시는 아들을 생각하지 마옵소서.” 하고 절하고 물러났다.
의병을 거느리고 길을 재촉하여 가는데 압록강을 건너며 칼을 빼어 돛대를 내려치며 군중에 맹세하기를
“임금의 밥을 먹고 임금의 옷을 입으면서 혹시라도 난리를 당해 살기위해 도망하는 자는 이 돛대와 같이 하리라.”
하고 또 말하기를
“옛날에 우리 아버지가 난리를 당해 순절(殉節)을 해서 백골이 백사장에 굴러다니니 내가 비록 불초(不肖)하나
죽기를 두려워 아버지를 욕보이겠느냐. 단 육순 노모가 의지할 때가 없도다.” 이 말을 하니 천지가 막막하구나.
인해서 시를 짓기를
“대궐을 향해 해바라기처럼 기울어져 있고 남쪽 언덕에 누가 난초를 캐는가
군복을 입고 만리 길 떠나는데 북소리 끝나니 우리군사 씩씩하도다.”했다.
이해 10월에 우리 군사가 부차령(富車嶺)에서 패하니 원수 강홍립(姜弘立)등이 모두 다 항복했는데
공은 홀로 충무공 김응하(忠武公 金應河)장군과 같이 죽을힘을 다해 싸웠으나
그러나 전세가 장차 어찌 할 수 없게 되니 적병이 항복하라고 달래니 공이 적을 꾸짖기를
“의롭지 못하게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거늘 하물며 너희 오랑캐들에게 무릎을 꿇어 살아서
국가의 은혜를 저버릴 수는 없다. 전쟁에 패해 순절을 해서 장부의 뜻과 몸이 비록 가루가 될지라도
족히 슬퍼하지 아니 할 것이다.”하고
충무공 김응하(忠武公 金應河)장군과 같이 유수(柳樹) 아래에서 오랑케의 칼날에 죽으니
1619년(광해11) 3월 20일이고 나이는 40세이다.
초혼(招魂)을 해서 문백면 평산리 통산(通山)에 장사 지냈으니 아버지 산소를 따라 간 것이다.
아! 아버지가 죽어서 충성을 다 했고,
아들도 죽어서 충성을 다 했으니 한 문중에 두 충절이 일월(日月)처럼 빛나리라.
공의 부자는 가히 만세토록 이름이 남울 것이니 거룩하고 성대하도다.
1688년(숙종14,무진년)에 주부공은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증직되고,
1721년(경종원년,신축년)에
공조참의(工曹參議) 가선대부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가 증직되고
父子인 임수전(林秀筌)과 임현(林贒)에게 다 같이 충신정려(忠臣旌閭)가 내려졌다.
//증 통훈대부 사헌부집의 상산임공 임한林翰 가계도//
고조부 임지林智 상산군
증조부 임구林球 안렴사
조부 임득제林得齊 광주목사
부 임수경林秀卿 사헌부집의
임한林翰 증통훈대부 사헌부집의
장남 임경문林敬文 수의부위修義副尉
손자 임권林權 통덕랑
증손 임윤손林胤孫
손자 임격林格 사복시정
증손 임윤종林胤宗
4대손 임춘林春
5대손 임수무林秀茂
6대손 임대성林大誠
5대손 임수전林秀筌
6대손 임현林贒
7대손 임태원林泰元
8대손 임철林㯙
9대손 임봉거林鳳擧
10대손 임경석林慶錫
7대손 임이원林以元
8대손 임식林植
9대손 임봉지林鳳至
8대손 임기林杞
9대손 임봉의林鳳儀
9대손 임봉년林鳳年
8대손 임단林檀
9대손 임봉상林鳳翔
9대손 임봉일林鳳逸
9대손 임봉구林鳳九
5대손 임수형林秀衡
5대손 임수의林秀萓
증손 임윤조林胤祖
4대손 임세응林世應
4대손 임세복林世福
증손 임윤증林胤曾
차남 임경행林敬行 진사
손자 임모林模 장사랑
손자 임평林枰 정랑
삼남 임경충林敬忠 직장
손자 임욱林木昱 진사
벽암두릉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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