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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소정공 국재 윤곤 묘(昭靖公 菊齋 尹坤), 파평윤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20. 12. 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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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공 국재 윤곤(昭靖公 菊齋 尹坤)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 산81-1

경기도기념물 제106호

 

佐命功臣波平君昭靖公      尹坤先生墓域

좌명공신파평군소정공      윤곤선생묘역

 

소정공 국재 윤곤(昭靖公 菊齋 尹坤), 소정공 국음 윤곤(昭靖公 菊陰 尹坤)

경기도기념물 제106호

윤곤(尹坤,   ? ∼ 1422년세종4)은 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號는 국재(菊齋)· 국음(菊陰),    諡號는 소정(昭靖)이다.

아버지는 고려말 문하평리를 지낸 윤승순(尹承順)이고

어머니는 단양이씨로 판도판서를 지낸 이거경(李居敬)의 딸이다.

동북 9성을 쌓은 문숙공(文肅公) 윤관(尹瓘)의 후손으로,

그는 윤관의 아들 형제들 중 윤언이(尹彦頤)의 후손이다.

첫 부인은 첨의정승 성재(誠齋) 유탁(柳濯)의 딸 고흥유씨와 결혼했다가 뒤에

청주한씨 예문관대학사 문열공 죽소(竹所) 한상질(韓尙質)의 딸과 재혼하였다.

한상질의 아들 중 한기는 한명회의 아버지로 한명회의 고모부가 된다.

 

성종의 국구 평정공(平靖公) 윤호(尹壕)의 할아버지이며,

세종의 부마인 충경공(忠景公) 윤사로(尹師路)와

성종때의 영의정을 지낸 탕좌(湯佐) 윤필상(尹弼商)은 그의 증손자였다.

한편 고려 충혜왕비 희비윤씨(禧妃尹氏)의 친정아버지 윤계종(尹繼宗)은

소정공 윤곤의 증조부 윤안숙(尹安淑)의 형이다.

따라서 희비윤씨는 윤곤의 재종대고모가 된다.

또한 훗날의 소론 영수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와

문성공(文成公)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10대, 11대 선조이기도 하다.

또한 압구정(狎鷗亭) 한명회(韓明澮)는 그의 처조카가 된다.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동생 윤향(尹珦)과 함께 문학(文學)으로 기용되었으며

1392년(공양왕4년,태조원년) 조선이 건국한 뒤에도 벼슬에 참여하여,

완산부윤을 지내고, 1398년에 대장군(大將軍)이 되었다.

1400년(정종2)에는 동지총제(同知摠制)로 재임 중, 제2차 왕자의 난 때

외삼촌인 이무(李茂), 상장군 이저(李佇)를 따라 정안대군 이방원(李芳遠) 편에 서서 협력한 공으로,

태종으로 즉위후 1401년 추충익대좌명공신(推忠翊戴佐命功臣)3등에 책록되고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로, 파평군(坡平君)에 봉해졌다.

 

그해 명나라에 태종의 즉위를 알리는 사은사가 파견될 때  윤곤은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명나라 연경에 파견되어 태종이 왕위를 물려받았음을 고하는 뜻을 전달하고

돌아왔으나 무역마값을 잘못 정한 죄로, 파평에 안치되었다.

1406년(태종6년) 좌군도총제로 임명되었으나,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파면되었다가

1408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는 태종의 각별한 신뢰를 얻었는데,  그의 동생 윤목(尹穆)이

민무구(閔無咎)의 옥사에 연루(1409)되어 처형당하였지만 그는 처벌받지 않았고,

대간의 탄핵이 계속되었으나 태종은 그를 특별히 배려하였다.  

1413년(태종13) 경주 안동도 병마도절제사를 지냈다.

1417년(태종17) 의정부 참찬을 지내고

1418년(태종18,세종즉위년) 평안도 관찰사(觀察使)로 기용되었다.

평안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기생의 풍류를 폐지하여 풍속을 바로잡는 등 많은 공을 쌓고 돌아왔으며,

1419년(세종원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는 조선 건국 후에도 고관을 역임하였지만 늘 고려를 그리워했다 한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백이와 숙제에서 이름을 따서 윤희이(尹希夷), 윤희제(尹希齊)라고 지었다 한다.

 

1422년 3월 11일 윤곤(尹坤)이 병으로 졸하니, 조회를 3일 동안 폐하였다.

두 임금이 행재소(行在所)에 있다가 부음(訃音)을 듣고 육선(肉膳)을 먹지 않았으며,

태상왕(태종)은 그를 부원군(府院君)에 임명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였다.

윤곤은 성품이 관후(寬厚)하고 풍채(風彩)가 있었다.

공신(功臣)으로서 부귀(富貴)를 보전하였으니, 세상에서 복노인(福翁)이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아들이 셋이니, 윤희이(尹希夷), 윤희제(尹希齊), 윤삼산(尹三山)이었다.

사망 당시 정확한 연령은 전하지 않으나 고령이었다고 한다.

사후 소정(昭靖)이란 시호를 내렸으니,

용의(容儀)가 아름다운 것을 소(昭)라 하고, 마음이 너그러워 고종명(考終命)한 것을 정(靖)이라 하였다.

推忠翊載佐命功臣 崇政大夫行吏曹判書  坡平君贈諡昭靖公尹坤之墓

추충익재좌명공신 숭정대부행이조판서  파평군증시소정공윤곤지묘

 

묘표

十八代孫 進士 尹圭炳謹述 십팔대손 진사 윤규병 근술

十六代孫 尹撥敬書易面     십육대손       윤발경 서이면

十八代孫 通政大夫前承政院右副承旨兼 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 尹曙 謹書陰記

십팔대손 통정대부전승정원우부승지겸 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 윤서 근서음기

// 파평윤씨 소정공 국재 윤곤(昭靖公 菊齋 尹坤)가계//

   14대조 시조 윤신달(尹莘達) 삼한공신 태사공

   10대조 문숙공 윤관(文肅公 尹瓘)

   고조부 윤보(尹珤) 영평군

   증조부 양간공 윤안숙(양간공 윤안숙), 도첨의 찬성사

할아버지 윤척(尹陟)- 군부판서, 영평군.

   아버지 충간공 윤승순(忠簡公 尹承順) - 문하평리, 판개성부사.

   어머니 군부인 단양이씨, 판도판서 이거경(李居敬)의 따님

            소정공 국재 윤곤(昭靖公 菊齋 尹坤) ? ~1422년(세종4)

            배위 순정택주 고흥류씨, 첨의정승 고흥백 충정공 류탁의 따님)

                   장남 윤희이(尹希夷) - 상호군

                   차남 윤희제(尹希齊) - 판한성부사 검교참의

                          손자 윤경(尹坰) - 배천군수

                                 증손자 윤필상(尹弼商)

                          손자 윤은(尹垠) 목사 공조참의, 증 우의정 영천부원군(鈴川府院君)

                          배위 안성군대부인(安城郡大夫人)용인이씨, 예빈시판관 이수상(李守常)의 따님

                                                                                   강원감사 이백지(李伯持)의 손녀

                                 증손자 윤사로(尹師路), 충경공(忠景公), 영천부원군

                                 배위 정현옹주(貞顯翁主), 세종의 서장녀

                                        현손 윤반(尹磻), 공혜왕후(恭惠王后) 언니와 혼인

                                        현손 윤인(尹潾)

                                 증손자 윤사하(尹師夏) 통례원좌통례

                                        현손 윤탕(尹宕) 목사

                          손자 윤배(尹培) - 사헌부 장령

          후배위 근순택주 청주한씨, 예문관대학사 문열공 한상질(文烈公 韓尙質)의 따님

                  삼남 윤삼산(尹三山) - 첨지중추부사 영천부원군

                          손자 평정공 윤호(平靖公 尹壕), 성종의 국구(영원부원군)

                                  증손녀 : 정현왕후(貞顯王后) 성종의 계비, 중종의 생모

          동생 윤목(尹穆)-평양부윤 좌명공신, 원평군

          동생 소도공 윤향(昭度公 尹珦)-형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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