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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대제학 문정공 쌍계 이복원(文靖公 雙溪 李福源), 연안이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21. 3. 27.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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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학 문정공 쌍계 이복원(文靖公 雙溪 李福源)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쌍학리 산40-18

 

朝鮮左議政文靖李公墓 貞敬夫人坡平尹氏祔右 貞敬夫人順興安氏祔左

조선좌의정문정이공묘   정경부인파평윤씨부우   정경부인순흥안씨부좌

 

대제학 문정공 쌍계 이복원(文靖公 雙溪 李福源:1719~1729)

 

본관은 연안, 자는 수지(綏之), 호는 쌍계(雙溪),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6대조는 좌의정을 지낸 대제학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5대조는 대제학 백주 이명한(白洲 李明漢),

고조부는 이만상(李萬相)으로 3대 대제학으로 유명한 대제학 청호 이일상(靑湖 李一相)의 셋째 아우다.

증조부는 군수 이봉조(李鳳朝), 조부는 관찰사 송벽당 이정신(松蘗堂 李正臣),

아버지는 예조판서 지암 이철보(止庵 李喆輔),

어머니는 정경부인 반남박씨로 예산현감 박필순(朴弼純)의 따님이며,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충정공 이시수(忠正公 李時秀)와

대제학을 역임한 문헌공 극옹 이만수(文獻公 屐翁 李晩秀)를 둔 명문가다.

 

쌍계 이복원(雙溪 李福源)은

1738년(영조14년) 20세에 사마시를 거쳐

1754년(영조30년) 36세에 증광문과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대사간, 대사헌,

1772년 대제학, 1775년 형조판서를 거쳐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다.

1780년(정조4년)  62세에 에 이조판서를 거쳐,

형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판중추부사, 원자보양관, 세자부, 영중추부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고,

1783년에는 문안사, 1790년에는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문장에 능하여 영조의 시책문을 짓고 정조가《명의록》을 지을 때 찬집당상을 맡았으며,

왕실의《갱장록》편찬을 주도했다. 이외에도《일성록》《대전회통》의 서문을 썼다.

저서로《천령향함이지락(千齡享含飴之樂)》《쌍계유고(雙溪遺稿)》가 있다.

관직에 있는 동안 스스로의 몸가짐에 엄격하여

마치 벼슬이 없는 선비처럼 포의를 걸치고 근신하는 생활로 일생을 보내 유상(儒相)이라 불렸다.

문형이 된 후에 정조 임금은 자신이 세운 규장각의 문헌편찬 작업과 왕실의 기록을 전적으로 맡겼으며

“마음속에 쌓인 덕망이 밖으로 맑게 비치니, 공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어진 재상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쌍계의 죽음을 맞이하고 쓴 사제문(賜祭文)에서

정조는“몸은 순수하고 깨끗하며 사람들로부터는 시비가 없었고,

항상 맑고 검소하였으며 마음가짐이 견고하였도다”라고 칭송하였다.

따라서 세상에서는 그를 ‘포의(布衣)의 대제학’이라 일컬었으며, 집안은 국조문원가(國朝文苑家)라 하였다.

 

신흥사에는 영조 때 신흥사를 중창한 용암체조(龍岩體照)대사의 용암대선사비가 있는데,

당시 좌의정을 지낸 쌍계가 비문을 짓고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이 글씨를 썼다.

20세에 첫째 부인인 파평 윤씨를 잃고 재취한 순흥안씨 부인과 18년을 살았지만

둘째 부인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는 불행을 겪고 쓴 제문은

조선 선비가 아내를 잃고 애통한 심사를 글로 표현한 것이다.

“사람 사는 것이 마치 흩날리는 꽃잎이나 버들강아지와도 같아 정처 없이 흩어지고 떨어지니

그 사이에 한번 만난다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오.…

수명은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내 할 일을 다 했는지 생각하면 유감이 있구려.

이것이 내가 못내 후회하고 한스러워, 시간이 흘러도 그 한이 풀리지 않는 이유라오”라고 슬퍼하였다.

 

쌍계 이복원(文靖公 雙溪)이

강원도 양구현감 재임시기인 1753년(영조29) 4월 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양구 관아에서 출발하여

수렴동을 거쳐 쌍폭, 봉정암, 가야동굴, 오세암, 영시암 등을 유람하고 양구현 관아로 돌아온

내설악 기행문이다.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과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대한 언급과 주지 설정과의 대화가 들어 있으며

영시암(永矢庵)과 삼연거사 김창흡(三淵居士 金昌翕)에 대한 기록도 하여

설악과 매월, 삼연의 인연을 중시하였다.

기행문의 끝에는 양구현의 가뭄으로 인해 보리들이 말라 시들고

근심스런 안색의 백성들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은 어진 목민관의 따뜻한 마음을 엿보게 한다.

이 기행문은《쌍계유고》제10권에 수록된 것으로 장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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