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화성-동지돈녕부사 청녕군 월곡 한덕급(淸寧君 月谷 韓德及)

구름에 달

by 碧巖 2021. 6. 11. 23:54

본문

청녕군 월곡 한덕급(淸寧君 月谷 韓德及)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 584-2

嘉善大夫同知敦寧府事淸寧君韓公德及得之之墓 貞夫人光州金氏祔左

가선대부동지돈녕부사 청녕군한공덕급득지지묘   정부인광주김씨부좌

 

청녕군 월곡 한덕급(淸寧君 月谷 韓德及, 1577선조10년~1660현종1년)

선조 중기의 문신으로 字는 특지(得之)요 號는 월곡(月谷)이다.

아버지는 선조 때 우의정을 지낸 충정공 한응인(忠靖公 韓應寅)의 장남이고

어머니는 정경부인 전주이씨로 현감공 이담령(李耼齡)의 따님이다.

1601년(선조34)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추천(推薦)으로 차례에 따라 봉사(奉事)에 임명하였으나 취임하지 않으니

금오랑(金吾郞)으로 임명되었다가 주부(主簿)로 옮겼다.

외직으로는 옥천군수(沃川郡守)외 6개 군수와 해주(海州) 및 청주복사(淸州牧使)를 지내고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이르러 청녕군(淸寧君)에 습봉되었으며 소무원종공신(昭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공은 광해군 때 아버지 충정공 한응인(忠靖公 韓應寅)이 억울하게 삭탈관작당하고 광주로 내려가게 되자

공도 관직을 떠나게 되어 충정공을 따라가 모셨으나

아버지는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여 세상을 떠나니 묘소 옆에 오두막집을 짓고 3년상을 치루었다.

 

다섯 왕조를 섬기고 84세에 졸하니 현종은 예관(禮官)편에 재물과 제문 등을 내리어 제사케 하였다.

묘표는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이 찬(撰)하고

대사헌 석호 윤문거(石湖 尹文學)가 썼으며 현종 7년 (1666)에 세웠다.

 

음기(陰記)에 쓰기를 공을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공은 진실로 복인(福人)이로다.

영화로문 환경속에 살다가 장수를 누리고 편안히 별세하여 감탄하였다고 써있다.

묘소앞 전방에 공의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찬(撰)하였고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이 비문을 썼으며

대제학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이 전(篆)하여 현종5년(1664년)에 세웠다.

배위는 정부인 광주김씨로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따님이다.

슬하에 3남을 낳으니 장남은 청흥군 한수원(淸興君 韓壽遠)이고

차남은 증 좌승지 선전관 한지원 (宣傳官 韓智遠)이며

3남은 첨정 한지원(僉正 韓志遠)이다.

부실(室)에서 증 호조참판 만호 한성원(萬戶 韓聲遠)이 있다.

월곡 한덕급 묘소 후경

 

淸寧君 韓德及 神道碑

청녕군 한덕급 신도비와 묘역

有明朝鮮國嘉善大夫 同知敦寧府事 淸寧君 韓公神道碑銘

유명조선국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   청녕군   한공신도비명

崇祿大夫議政府右贊成兼成均館祭酒 宋時烈撰

숭록대부의정부우찬성겸    성균관제주    송시열찬

正憲大夫行司憲府大司憲兼 成均館祭酒 宋浚吉書

정헌대부행사헌부대사헌겸    성균관제주   송준길서

資憲大夫吏曹判書 兼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成均館事同知經筵事 

자헌대부이조판서겸  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성균관사동지경연사  

五衛都摠府都摠管 金壽恒 篆

오위도총부도총관   김수항 전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