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 임제(白湖 林悌), 겸재 임제(謙齋 林悌)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산 92-1
白湖林先生墓所入路
백호임선생묘소입로
白湖林悌先生詩碑
백호임제선생시비
백호(白湖) 임제(林悌) 선생 시비
彈劒登台意氣高
탄검등태의기고 / 칼 튕기며 行帥台에 오르니 기운이 솟는다.
一摩行色嘆蕭蕭
일마행색탄소소 / 초라한 벼슬자리 내 모습 쓸쓸하여라
滄溟秋冷蛟龍蟄
창명추냉교룡칩 / 찬 가을바다 교룡이 꿈틀대고
長白雲深虎豹驕
장백운심호표교 / 구름 깊은 장백산엔 호랑이 득실대네
生世未呑氣虜國
생세미탄기노국 / 세상에 태어나 만주(滿洲)땅을 못 삼키고
幾時重到洛陽橋
기시중도낙양교 / 어느 때 다시 서울로 돌아 갈건가
淸樽醉罷催歸騎
청준취파최귀기 / 잔 비우고 말 타고 돌아서니
極目遙空瘴霧消
극목요공장무소 / 아슬한 저 하늘엔 안개 걷히네
하나 둘 셋 넷...삼백스물다섯 325계단??
林白湖先生墓前許眉叟撰碑文飜譯碑昌寧登林宗中謹樹
임백호선생묘전허미수찬비문번역비창녕등임종중근수 1989년4월 백호공종중
겸재 임제(謙齋 林悌, 1549년명종4년~1587년선조20년),
字는 자순(子順), 號는 백호(白湖), 풍강(楓江), 소치(嘯癡), 벽산(碧山), 겸재(謙齋),
본관은 나주(羅州), 증조는 전라도병마우후 임평(林枰), 조부는 승지·호조참의 임붕(林鵬),
아버지는 평안도병마절도사 임진(林晉), 어머니는 윤개(尹塏)의 따님 남원윤씨,
배위는 대사헌 김만균(金萬鈞)의 따님 경주김씨이다.
백호(白湖)는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스승이 없었다 한다.
1570년 선조 3년 22세에 상경 길에 그가 쓴 시가
창녕인 대곡 성운(白湖 成運)에게 전해진 것이 계기가 되어 성운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젊어서는 얽매임을 싫어하여 기녀와 술자리를 즐기며 살았다 하며,
1571년 선조 4년 23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때 잠시 동안 술을 끊고 글공부에 뜻을 두었으나 과거에 번번이 떨어졌다. 그러나 계속 학업에 정진하여 『중용』을 800번이나 읽은 일은 유명한 일화이다.
1576년 선조 9년 28세에 속리산에서 성운을 하직하고,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577년 알성시에 급제한 뒤 흥양현감(興陽縣監), 서북도병마평사, 관서도사, 예조정랑을 거쳐 홍문관지제교를 지냈다. 성격이 호방한 그는 얽매임을 싫어해 벼슬길에 대한 마음이 없어져
관리들이 서로를 비방 질시하며 편을 가르는 현실에 깊은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관직을 삭탈당하고 전국을 유람하다가 고향인 회진리에서 선조 20년(1587) 3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아들에게
“천하의 여러 나라가 제왕을 일컫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오직 우리나라만이 끝내 제왕을 일컫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못난 나라에 태어나서 죽는 것이 무엇이 아깝겠느냐! 너희들은 조금도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 한 뒤에
“내가 죽거든 곡을 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겼다.
검(劍)과 피리를 좋아했고, 술 마시고 방랑하며 여인과 친구를 사귄 짧은 삶을 살았다.
벼슬에 환멸을 느껴 유람을 시작한 그는 이르는 곳마다 많은 일화를 남겼다.
평소에 백호 임제(白湖 林悌)는 명기(名妓) 황진이를 흠모하여 그녀와 한번 대작하기를 원했으나
1583년 선조 16년 35세에야 서북도 병마평사로 부임해 가던 길에 황진이 묘를 찾았다.
백호는 황진이와 비록 대작은 할 수 없었으나 술 한 잔 올리며 시 한 수를 읊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었는가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이 시조로 인해 백호 임제(白湖 林悌)는 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삭탈관직을 당해야했다.
어명을 받고 임지로 가던 관인이 관복을 입은 채로 천한 신분의 기생 무덤에 잔을 올렸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생 한우(寒雨)와 시조를 주고받은 일로도 유명하였다. 백호는 당대의 풍류객이요, 호남아였다.
그런 백호가 명기(名妓)를 그냥 놔둘 리가 없지 않은가.
어느 날 밤, 백호와 한우 두 남녀가 술상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한잔 두잔 마시다 보니 서로 취기가 돌았다.
백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 한 수를 읊는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북쪽 하늘이 맑아 우산없이 길을 나섰더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寒雨]가 내렸다.
오늘 찬비[寒雨]를 맞았으니 네가 나를 맞아주지 않으면 나 혼자 찬 이불 속에서 잘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은근히 동침할 것을 물은 것이다.
이 시가 기녀 한우에게 준 「한우가(寒雨歌)」이다.
한우는 재색을 겸비하고, 노래와 시문에 능하였으며, 거문고와 가야금에도 뛰어난 그런 기녀였다.
한우 또한 가득 부은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가야금을 끌어당겨 무릎에 얹은 다음 둥기둥 첫줄이 울렸다.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로 얼어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조용한 물살이 일어 허공으로 부서지는 가락이 참으로 곱고 아름다웠다.
백호는 짐짓 내색하나 없이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었다.
‘무엇 때문에 춥게 자려하십니까?
무슨 일로 춥게 자려하십니까?
원앙 베개, 비취 이불이 여기 있는데 왜 혼자 주무시려 하시는 것입니까?
오늘은 찬비[寒雨]를 맞으셨으니 저와 함께 따뜻하게 주무시고 가십시오.’ 이것이 한우의 멋드러진 사랑의 화답시였다.
평양기생 일지매와 얽힌 일화도 유명하다.
어느 해 여름, 백호가 평양을 들렀다. 평양은 색향이고 그 중에서도 용모 자태와 가무 문장이 뛰어나고
성품 또한 도도하기가 이를데가 없어 뭇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기생 일지매가 있었다.
천하의 백호가 어찌 그냥 있었겠는가. 한번 그녀를 안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백호는 그녀의 몸종과 생선을 흥정하는 체하며 시간을 끌다가 그 집 문간방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혼자 방에서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자니 어디선가 달빛 창문으로 청아한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홀로 있는 밤은 일지매에게도 나그네에게도 외롭고 고독한 밤인 것이다.
적막한 달밤 거문고 소리는 유난히도 맑고 청아한데 그 소리가 백호가 묵고 있는 방에까지 들려왔다.
이때다 싶어 백호는 허리춤에서 피리를 꺼내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화답을 하였다. 멋지게 어울리는 화음이었다.
놀란 것은 일지매였다.
“내 거문고 소리에 화답하는 사람은 누구인고?”
일지매는 피리소리를 따라 뜰로 나왔으나 아무런 인기척도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섬돌 위에 홀로 서서 자신도 모르게 긴 한 숨을 쉬며.
“원앙금침을 누구와 함께 펼고…….” 일지매가 혼자 중얼거렸다.
“나그네 베갯머리 한 끝이 비었는데…….” 백호가 대꾸를 한다.
일지매는 다시 한 번 놀란다.
“문간방에 든 사람은 틀림없는 생선 장수였는데 그 생선 장수 목소리가 아닌가?” 그녀는 문간방으로 다가갔다.
“어인 호한이 아녀자의 간장을 녹이는고?” 나무꾼과 선녀는 술잔을 주고받으며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이러한 일화로 해서 사람들은 그를 평가하길 기이한 인물이라고 했고 또 한편에서는 법도에 어긋난 사람이라고도 했다.
禮曹正郞知製敎白湖林公之墓 淑人慶州金氏祔
예조정랑 지제교 백호임공지묘 숙인경주김씨부
白湖公墓碣原文및譯文
백호공묘갈원문및역문
//나주임씨 백호 임제(白湖 林悌) 가계//
증조부 전라도 병마우후 임평(林枰)
조부 승지·호조참의 귀래정 임붕(歸來亭 林鵬)
백부 장수공 임익(長水公 林益)
중부 정자공 임복(正字公 林復)
숙부 첨지공 임몽(僉知公 林蒙)
아버지 평안도병마절도사 임진(林晉)
어머니 남원윤씨, 윤개(尹塏)의 따님
백호 임제(白湖 林悌,1549~1587선조20)
배위 숙인 경주김씨, 대사헌 김만균(金萬鈞)의 따님, 직제학 김천령(金千齡)의 손녀
장남 임지(林地)
차남 임준(林埈)
삼남 임탄(林坦)
손자 임강(林綱),
증손자 임정(林禎), 임지(林榰)
사남 호조좌랑 임기(林垍), 출계 숙부 문화현령 임환(林懽)
따님 나주임씨, 안동인 도사 김극녕(金克寧), 내자시주부 김고언(金顧言)의 자
외손자 군자감정 김당(金鏜)
따님 나주임씨(1575~?), 양천인 허교(許喬,1567~1632)
외손자 문정공 미수 허목(文正公 眉叟 許穆,1596~1682)
동생 문화현령 임환(節度公 林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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