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洛郡開國公 陵洞 事蹟碑
상락군개국공 능동 사적비
경북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 329-1
上洛郡開國公 陵洞 事蹟碑
안동 녹전면 죽송리 능동은 안동김씨의 성지이며 중시조이신 상락충렬공의 묘가 있는 곳으로 永逝하신지 어언 7백여 성상이 흘렀다. 공의 휘는 方慶이고 자는 本然으로 고려 최고위직 僉議令에 올라 상락군개국공 公爵의 작위와 식읍 3000호 식실봉 300호를 받으시고 1300년 8월 16일 노환으로 개경 백목동 앵계리에서 薨逝하셨다. 유언에 따라 9월 초3일 예안현 지례촌에 예장드리니, 선충협모정난정국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에 추증되셨으며 시호를 忠烈로 내리고 왕명에 의해 신도비를 세웠다. 墓誌는 李瑱이 짓고, 봉분은 고려시대 묘제의 특징인 장방형 호석을 둘렀으며 상석 1기, 구비·신비 각1기, 동자석 1조, 문인석 1조, 망주석 1조를 배치하여 古拙하면서도 엄숙하다. 1310년 3남 恂이 先親의 묘에 제사를 올리고, 1319년에는 아들 永煦를 대동하여 성묘를 다녀오기도 하였다. 1350년 安震에 의해 상락공 행장이 간행되고, 이후 고려왕조가 무너지면서 충신들은 두문동을 비롯 벽지로 은둔하였고, 상락공 묘소를 돌보는 묘하의 후손들도 점차 멀어져 갔다. 조선왕조가 건국되고 世宗代에 이르러 1421년 5대손 經歷 明理가 안동에 와서 安震이 엮은 행장을 鄭以吾의 감수를 받아 안동부사 崔開에게 기록하게 하였다. 1467년 7대손 礩이 경상감사에 부임하였고, 1480년에는 6대손 自行이 경상감사에 부임하였다. 1498년 8대손 예안현감 禮生이 묘갈을 세웠으며 1499년 8대손 壽童이 경상감사에 부임하였다. 1526년 8대손 希壽가 경상감사에 부임하였고, 1534년 광산 金孝盧가 졸하자 상락공묘소 동원에 장사지냈는데 김효로는 상락공의 사위 權允明의 맏사위 金稹의 후손이며 광산김씨 예안파 오천입향조로 상락공의 7대 외후손이다. 1567년 10대손 평안감사 德龍이 행장을 판각제책하여 반포하였음을 13대손 九鼎이 부기하고 1580년 안동김씨 姓譜에 상락공의 묘소를 예안현 지례촌 속칭 능동으로 기록하였다. 11대손 睟는 1588년 경상감사에
부임하였고 1591년 재임하였다. 이해에 12대손 昉이 경차관으로 안동에 왔다가 광산 金富倫으로부터 상락공묘소를 전해듣고 참배하였으며, 1593년 광산 金垓가 졸하여 김부륜에게 장지를 상락공묘에 인접하여 정했다고하자 김부륜은 挾葬을 우려했으나 그대로 장사지냈다. 임진왜란으로 묘소가 황폐화되고 후손 禮生이 세운 묘갈도 파손되어 1602년 12대손 참봉 慶建을 비롯한 후손들이 외후손 광산 참봉 金圻 생원 金坪 등과 협력하여 외후손 경상감사 李時發이 묘갈문을 짓고 참봉 曺友仁의 글씨로 비석을 세웠다. 이 비문 탁본의 원본이 일본 교토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1603년 관청에서 예안의 상락공묘를 비롯한 忠賢들의 훼손된 묘를 봉식하고 초목을 금지시켰으며, 1607년 후손 慶建이 金垓의 묘가 상락공묘에 매우 가까워 12대손인 時獻·大來·繼燾 등과 이장을 협의하였으나 지체되어 이루지 못했으며 안동부사 鄭逑는 13대 외조인 상락공묘에 제사를 올렸다. 1609년 12대손 時讓이 경차관으로 와서 상락공묘에 제사를 올리고 1625년 13대손 緻가 경상감사에 부임하여 상락공묘에 제사를 올렸다. 1622년 후손 時讓이 경상감사로 부임하여 12대손 삼가현감 孝建·참봉 慶建 등 후손들과 함께 상락공묘에 제사를 올리고 金垓의 묘가 상락공묘에 너무 근접해 있어 김해의 아들 金光繼를 불러 이장을 권유했으나 불응하자 중앙의 12대손 自點과 외손 韓浚謙·尹昉을 대표로 사헌부에 청원하였다. 1627년 헌부에서 이장하라는 명령서가 경상감영에 하달되자 감사 時讓은 파묘하는 일에 12대손 英男을 감독자로 임명하고 金孝盧묘는 옮기지 말고 金垓묘만 옮기게 하여 그 후손들이 거음곡으로 이장하였고, 감사 時讓이 임기가 끝나면서 상락공묘에 제사를 올렸다. 1635년 회곡동에서 글자가 민멸된 상락공 유허비가 발견되었으며 1641년 후손 孝建은 상락공과 배위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의 합장여부를 상고할 기록이 없음을 한탄스러워했다. 1650년 13대손 尙璘의 주도하에 충렬공 위토를 매수하여 매년 10월 상순에 향화를 받들게 되었다. 1665년 13대손 徽가 경상감사로 부임하여 상락공묘에 제사를 올렸고, 1685년 14대손 良佐는 내외손 66명을 모이게 하여 상락공묘에 제사를 올리고 회곡 유허와 고산정 상락대를 탐방한 宗會記를 남겼다. 1698년 14대손 世翊이 경상감사에 부임하였으며 1733년 15대손 濰가 안동부사에 부임하여 상락공께서 지은 영호루의 낡은 시판을 새로 판각하여 게판하였고, 1765년 관청에서 李象靖이 쓴 유허비를 회곡동 안산에 세웠다. 1799년 18대손 鎭鼎이 안동영장에 부임하여 상락공 유허에 투장한 묘를 이장시켰으며, 1825년 嶺西에서는 족보간행을 맡고 嶺南에서는 능동재사 건립을 맡아 22대손 宗洛의 상량문으로 준공하고 회곡동 냉평국대부인의 단소에 제사를 올렸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의성 사촌과 안동 소산 후손들의 주관에 의해 묘역이 관리되었고 22대손 振鍾의 상량문으로 능동재사를 중건하였다. 1934년 서울 창신동에 종약소를 창립하여 묘소수호를 체계화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침체를 겪다가 1970년 재사 사랑채 솟을대문 관리사를 중건하고 22대손 思達의 글씨로 신도비를 건립했다. 홍수로 유실되었던 영호루의 상락공 시판을 24대손 崙會와 昌會의 고증으로 안동군청
에서 새로 게판하였다. 1979년 묘지석을 발굴 탁본하고 후손 崙會의 필체로 복제후 묘전에 매설하였으며 1984년 24대손 昌信이 기증한 목재로 관리사를 중건하였다. 1992년 泰亨 회장은 능동묘역 제절확장 및 진입로를 석재로 시공하고, 1994년 회곡동 냉평국대부인 묘역제절을 확장하였다. 2001년 相祚 회장은 능동재사의 음수재와 영정각을 중건하고 24대손 昌會가 상량문을 지어 준공하였으며, 2008년 南應 회장은 상락공 영정을 새로 제작하여 영정각에 봉안하였고, 2009년에는 상락공묘역 사초시 묘지석을 발굴하여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보관하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2012년 鳳會 회장은 충렬공탄신80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2017년 錫漢 회장은 능동의 묘소 사초와 회곡 냉평국대부인의 묘역 정화사업을 마치고 2018년 선영관리에 일조하기 위해 안동 송현동에 회관을 구입하였다. 2019년 능동재사 음수재의 지붕과 신도비각을 銅기와로 개수하고 2022년 능동 관리사를 개축하였다. 안동시 녹전면 능동은 상락 충렬공 김방경의 묘가 있어서 불려진 이름으로 안동김문의 성지이다. 이제 세대가 멀어지고 능동 묘소를 수호한 기록 또한 상고하기 어렵다. 百世의 情誼가 도타운 陵洞의 귀중한 자취를 후대를 위해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錫漢 대종회장의 요청에 따라 사무총장 泰榮은 관련문헌을 詳考하여 그 사실을 서술하고 전면은 후손 思達의 글씨를 집자하여 사적비를 세운다
西紀 二0二二年 十一月 初二日
翼元公派 水原 參議公宗中 後援
安東金氏大宗會 謹竪
안동-농수 김효로(聾守 金孝盧,) 광산김씨 예안 오천(禮安 烏川) 입향조 (1) | 2022.11.20 |
---|---|
안동-단모부(旦暮賦)-동안거사 이승휴(動安居士 李承休),둔헌 이승휴(遯軒 李承休),가리이씨(加利李氏),단모부답부(旦暮賦答賦)-상락공 김방경(上洛公 金方慶) (1) | 2022.11.18 |
안동-상락군개국공 충렬공 김방경(上洛郡開國公 忠烈公 金方慶),안동김씨 중시조 (0) | 2022.11.13 |
안동-동지중추부사 효계 이준휘(曉溪 李俊輝) 유허비, 우계이씨 (0) | 2022.11.10 |
안동-가선대부 병조참판 북산 이영(北山 李榮)경모비(景慕碑),우계이씨 (0) | 2022.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