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화성-대제학 문간공 송곡 조복양(文簡公 松谷 趙復陽), 문효공 포저 조익 삼남

구름에 달

by 碧巖 2023. 2. 9. 21:56

본문

728x90

풍양조씨 대제학 문간공 송곡 조복양(文簡公 松谷 趙復陽, 1609~1671) , 문효공 포저 조익 삼남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송라리 82-1

송곡 조복양(松谷 趙復陽, 1609~167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과 가까웠으며 당파로는 서인이었다.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의 문인이다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중초(仲初), 호는 송곡(松谷)이다.

의빈부도사 조간(趙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조영중(趙瑩中)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문효공 포저 조익(文孝公 浦渚 趙翼)이다.

어머니는 성주현씨(星州玄氏)로 군수 현덕량(玄德良)의 딸이다.

1633년(인조11) 25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8년 30세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을 거쳐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41년 정언으로 있을 때, 인조의 아우인 능원대군(綾原大君) 집 객청(客廳)에

국고의 음식을 공급하는데 반대하다가 체직되었으나

낙정재 조석윤(樂靜齋 趙錫胤)의 구원으로 다시 정언에 임명되었다. 이후 헌납·교리를 지냈다.

 

1649년(효종즉위년) 지평을 거쳐 부교리가 되었는데,

붕당의 폐를 주장하다가 오히려 원두표(元斗杓)의 당으로 지목되어

왕의 미움을 샀으나 낙정재 조석윤(樂靜齋 趙錫胤) 등의 신구로 무사하였다.

1651년(효종2) 그의 아버지 포저 조익(浦渚 趙翼)이 쓴

문익공 지천 윤방(文翼公 稚川 尹昉)의 시장(諡狀) 문제로

의금부에 감금되었다가 곧 풀려났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못하였다.

1653년 헌납으로 복직된 뒤, 부교리·이조정랑을 역임하고 집의가 되었다.

그러나 사적인 감정으로 사천(史薦)을 마음대로 막았다고 하여 파직되었다가

또다시 낙정재 조석윤(樂靜齋 趙錫胤)의 파직 환수 주장에 의해 종성부사로 밀려났다.

그 뒤 화곡 서원리(華谷 徐元履)등의 적극적 주장으로 다시 겸보덕으로 돌아와 집의.필선·사간·응교를 역임하였다.

1657년 시강관(侍講官)으로 궁중음악의 타락을 지적,

고악(古樂)을 본받아 이를 시정할 것을 주장하고, 악장옥책교문(樂章玉冊敎文)을 지었다.

이듬해 응교로서 서필원(徐必遠)의 많은 기생을 둔 것을 비방하다가 효종의 미움을 샀으나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의 구원으로 다시 부응교가 된 뒤 1659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현종이 즉위하면서 적극적인 진휼정책의 이행을 주장하였다.

1660년(현종1)에 대사성, 이듬해에는 대사간으로 별도로 설치된 진휼청당상(賑恤廳堂上)이 되어

흉년으로 기아에 있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에 힘썼다.

그 뒤 부제학, 예조와 병조의 참판, 동지성균관사, 강화유수를 역임하고

여러 차례 대사성을 지낸 뒤 원자(元子)의 보양관(輔養官)이 되었다.

 

1668년에는 예조판서로 대제학을 겸하여 정시(庭試)를 총괄했으나,

과거의 시제(試題)가 같은 것을 두 번 출제한 실수로 이듬해에 파직되었다가 곧 형조판서로 돌아왔다.

그 뒤 우참찬과 대제학, 이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역임하고 1671년 현종 12년에 63세로 졸 하였다.

광주(廣州)의 명고서원(明皐書院)에 제향되었고, 저서로 『송곡집』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조복양(趙復陽)의 저서로는 시문집인 『송곡집(松谷集)』이 있다.

『송곡집』은 1705년(숙종31) 아들 조지겸(趙持謙)과 조카 조지항(趙持恒), 조지정(趙持正)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총 12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두에 명곡 최석정(明谷 崔錫鼎)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책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판각은 공주 마곡사 고방에 보관되어 있다.

판각은 조익의 『포저유서(浦渚遺書)』 판각과 함께 「포저유서 및 송곡문집 판각」으로 명명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다.

 

朝鮮國吏曹判書大提學 松谷趙文簡公復陽之墓  貞夫人德水李氏祔左

조선국이조판서대제학 송곡조문간공복양지묘  정부인덕수이씨부좌

이조판서 대제학 문간공 송곡 조복양(文簡公 松谷 趙復陽) 묘역 후경

 

 

 

대제학 문간공 송곡 조복양(文簡公 松谷 趙復陽)의 장남  통덕랑 조지형(趙持衡)

通德郞趙公持衡之墓  孺人靑松沈氏祔左

통덕랑조공지형지묘  유인청송심씨부좌

//이조판서 대제학 문간공 송곡 조복양(文簡公 松谷 趙復陽) 가계//

  시조 삼중대광 문하시중평장사 조맹(趙孟)

 

 8대조 군기시부정 조우(趙玗)

 7대조 남원도호부사 조계팽(趙季砰, 1393~ ? )

 6대조 증 공조참판 조지진(趙之縝)

 5대조 동지중추부사 조현범(趙賢範, ? ~ 1538)

고조부 증 좌찬성 한풍군 조안국(漢豐君 趙安國, 1501~1573)

증조부 강서현령 의빈부도사 조간(趙侃, 1535~1603)

   조부 첨지중추부사 증 영의정 조영중(趙瑩中)

   부친 문효공 포저 조익(文孝公 浦渚 趙翼, 1579~1655)

   모친 정경부인 성주현씨, 군수 현덕량(玄德良)의 따님

               형님 여산현감 조몽양(趙夢陽, 1597~1646)

                           조카 조지강(趙持綱)

               형님 단양군수 조진양(趙進陽, 1606~1659)

                           조카 통덕랑 조지한(趙持韓)

               대제학 문간공 송곡 조복양(文簡公 松谷 趙復陽, 1609~1671)

                           장남 통덕랑 조지형(趙持衡)

                                       손자 조명덕(趙命德)

                           차남 조지성(趙持成)

                           삼남 경상도관찰사 부제학 조지겸(趙持謙, 1639~1685)

                           사남 조지원(趙持元)

                동생 진사 도산 조내양(道山 趙來陽, 1614~1648)

                            조카 공조정랑 조지헌(趙持憲)

                동생 생원장원 조현양(趙顯陽, 1616~1643)

                배위 파평윤씨, 전라관찰사 사정 윤명은(思亭 尹鳴殷)의 따님

                            조카 해주목사 조지항(趙持恒)  -- 조운룡(趙雲龍)

                            조카 공주목사 조지정(趙持正)  -- 조운린(趙雲鱗)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