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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 청묘거사 차천로(淸妙居士 車天輅)

구름에 달

by 碧巖 2023. 2. 1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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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 1556~1615), 청묘거사 차천로(淸妙居士 車天輅)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 산35

과천시 향토유적 제7호

                                     오산 차천로 선생묘소입구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 1556~1615)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복원(復元), 호는 오산(五山), 귤실(橘室), 청묘거사(淸妙居士)이다.

송도(松都:개성) 출신으로 고려의 간의대부(諫議大夫) 차원부(車原頫)의 6대손이고,

차계생(車繼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차광운(車廣運)이다

아버지는 평해군수를 지낸 이재 차식(頤齋 車軾)이며,

어머니는 정부인 아산이씨로  현감 이계원(李繼元)의 따님이다. 

                                 (정부인 덕수이씨 이계천(李繼天)의 따님==?)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는 짧은 시간에 4~5,000 여수를 시를 짓고

하룻밤에 한시 600운(韻)을 지어 뛰어난 문재(文才)로서 이름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문장이 수려하여 선조가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의 작성을 전담했고,

임진왜란 때 명에 원군을 요청할 때에도 공을 세웠다.

한시에 뛰어나

석봉 한호(石峯 韓濩)의 글씨, 간이 최립(簡易 崔岦)의 문장과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일컬어지며,

조선시대 한문학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으며,

글씨 또한 명필로 당대를 풍미했던 선생은 연안차씨(延安 車氏)의 자긍심을 높여준 인물이라 한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1577년(선조10) 22세에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개성교수(開城敎授)를 지냈고,

1583년 28세에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86년 정자(正字)로서 고향 사람 여계선(呂繼先)이 과거를 볼 때 표문(表文)을 대신 지어주어

장원급제시킨 일이 발각되어 명천에 유배되었다가 1588년 문재(文才)가 있다는 이유로 용서되었다.

이듬해인 1589년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그 때 일본 체류기간이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었으나 4,000∼5,000수의 시를 지어 일인(日人)들을 놀라게 하였다.

특히, 명사(明使:명나라 사신)들이

문장의 속작(速作)을 실험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시에 거침없이 응하여 이름을 더욱 떨쳤으며,

또한 명나라에 보내는 대부분의 외교문서를 담당하였는데

그의 뛰어난 문명(文名)은 명나라로부터 ‘동방문사(東方文士)’라는 칭호를 받았다.

벼슬에 큰 뜻을 두지 않은 오산(五山)은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유람하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살다가,

1601년 46세에 교리(校理)로 교정청(校正廳)의 관직을 겸임하고,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수행한 공로로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3등(衛聖原從功臣三等)에 책록되었으며,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을 지내고 세상을 떠났다.

석봉 한호(石峯 韓濩),

석주 권필(石洲 權韠),

남창 김현성(南牕 金玄成)과 더불어 '서격사한(書檄詞翰)'이라 하였다

특히 시에 능해

석봉 한호(石峯 韓濩)의 글씨,

간이 최립(簡易 崔岦)의 문장과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일컬어졌고,

문장에 뛰어나 아우인 창주 차운로(滄洲 車雲輅),

성균진사 팔해 마상원(八垓 馬尙遠)과 함께 '양차일마(兩車一馬)'로 불렸다.

아버지 이재 차식(頤齋 車軾),

아우 창주 차운로(滄洲 車雲輅)와 함께 세인(世人)으로부터 ‘3소(三蘇)’라 불렸다

가사(歌辭)와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로 오산집(五山集), 오산설림(五山說林), 작품으로 강촌별곡(江村別曲) 등이 있다.

강촌별곡은 관직에서 물러나 자연속에 은거하며 안빈한적(安貧閑適) 하는 삶을 노래한

낙빈가(樂貧歌) 계열의 작품으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

경기도 과천역에 강촌별곡 머릿부문이 새겨진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의 행장(行狀)을 지은 이면주(李冕宙)의 기록에

‘과천의 동쪽 별앙리에 묘가 있는데 산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하였는데,

1958년 후손이 발견하여 관리되고 있다.

차천로를 추모하는 ‘오산 차천로 선생 문학비(五山車天輅先生文學碑)’가 과천시 별양동 중앙 공원 내에 있다.

한국 문학비 건립 동호회에서 1993년 후진 교육의 거울로 삼기 위해 세운 것이다.

차천로의 후손들이 세거지를 이루고 있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에는 차천로를 배향한 문원사(文苑祠)가 있다.

문원사는 1790년(정조14) 건립시에는 명칭이 없었으나,

1924년 차천로의 영정을 봉안하면서 ‘문원사(文苑祠)’로 명명되었다.

1996년에는 현재의 모습으로 중수하였다. 당진시 향토유적 제2호다.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를 기리는 추모제는 매년 음력 11월 15일에 거행된다.

五山延安車公天輅之墓

오산연안차공천로지묘

추회(秋懷 : 가을을 회상하며)

春山非必勝秋山

춘산비필승추산    봄 산이 가을산보다 꼭 낫지는 않으니

擺落生成覺未閒

파락생성각미한    떨어지고 돋아나고 한가한 때 없겠네

舊綠如曾留木末

구록여증류목말    묵은 잎이 여태도 나무 끝에 달렸다면

新紅安可着枝間

신홍안가착지간    새 꽃잎 어이하여 가지 사이 피겠나

 

양화석조(楊花夕照 : 양화나루터에 지는 낙조)

楊花雪欲漫

양화설욕만     버들 꽃은 눈처럼 흩날리고

桃花紅欲燒

도화홍욕소     복사꽃 붉어서 불붙는 듯하구나

繡作暮江圖

수작모강도     해 저문 강가 한 폭의 수놓은 그림

天西餘落照

천서여락조     서쪽 하늘에는 낙조가 남아있네

강야(江夜 : 강가의 밤)

夜靜魚燈釣

야정어등조     고요한 밤 고기잡이 등불만이 깜박이고

波淺月滿舟

파천월만주     잔잔한 물결에 달빛만 배에 가득하다

一聲南去雁

일서남거안     남쪽으로 날아가는 외로운 기러기 소리

啼送海山秋

제송해산추     가을 짙은 바다와 산을 울며 가는가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 묘역후경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 묘역 전면의 이 묘소는 뉘신지???

 

//연안차씨 오산공파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 가계//

   6대조 고려 간의대부 문절공 운암 차원부(文節公 雲巖 車原頫)

  증조부 호군 차계성(車繼成)

     조부 교수 차광운(車廣運)

 아버지 평해군수 증 예조참판 이재 차식(頤齋 車軾, 1517~1575)

 어머니 정부인 아산이씨, 현감 이계원(李繼元)의 따님 이계천(李繼天)=?

           형님 차금로(車金輅)

           동생 첨정 창주 차운로(滄洲 車雲輅, 1559~1637)

           동생 차하로(車夏輅)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 1556~1615)

          배위 정부인 전주이씨, 금천정 이보(錦川正 李俌)의 따님,  금천부수 이보(錦川副守 李俌)

                 장남 하동현감 단구 차전곤(丹丘 車轉坤)

                 차남 차행곤(車行坤)

                 삼남 차서곤(車瑞坤)

                 사남 차방곤(車芳坤)

                 오남 차응곤(車應坤)

                 육남 차치곤(車治坤)

                 칠남 차윤곤(車輪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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