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함양-낙포영각(洛圃影閣),참봉 김영주(金榮珠)송덕비,

구름에 달

by 碧巖 2023. 4. 17. 23:56

본문

728x90

낙포영각(洛圃影閣),  매각마을의 익원공 낙포 김사형(翼元公 洛圃 金士衡) 영정각

경남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 464

낙포영각(洛圃影閣)

익원공 영정각(影幀閣)

金翼元公影幀閣上梁文김익원공영정각상량문(影幀閣上梁文)1)

立德建功于邦國旣有列聖不忘之褒崇奉主掛影於廟堂尤功百世寓慕之誠敬

報祀無賛2) 建宇惟新恭惟上洛伯金翼元公諱士衡赫赫花山舊族翼翼靑邱名門

此有干城之材自在孩提而氣宇峻發3) 期以牙纛之貴孰不欽仰其器局

流通理陰陽順四時早自任輔相之獨責奮思義綜庶物亦無愧文武之兼資。◇康獻

恭靖父子元勳文英貞簡之祖曾餘蔭歸臥洛圃富貴等浮雲議革私田襟期懷明月

躋配于太室聖朝之追榮4) 尊莫尊焉入社于耆園曠世之芳名貴莫貴矣

5) 乎遺像克肖七分之眞顔遙矣後承散在四方之列邑尙慮世禍之6)

爰卜地靈之轉深移奉安陰之梅山來自扶餘之楮石天慳地秘絶無城市之紛喧

水麗山明允合道義之晦遯幷忘勞而趨役可象子姓之老少齊誠衆樂事而敦功

亦喜士類之遠近同力上下四方周正翬飛鳥革之形左右兩而齊莊龍蟠虎踞之勢

庶精靈之完爾若氷霜之凜然僾若見爾若聞其或曰予有後進以禮退以義

庶無忝爾所生此乃報本追遠之誠已然矣抑其敦宗睦族之誼亦在玆助擧脩樑敢陣矩唱

    兒郞偉抛梁東恩褒眷眷敎文中風雲際會終何極一體君臣祭祀同

    兒郞偉抛梁西嶻彼東金路不迷太祖當年幾駐蹕狩公勳業此山濟

    兒郞偉抛梁南方丈山高翠滴嵐今古干城材幾許窮林日夜秀楩楠

    兒郞偉抛梁北衆星約煙環震極六洲風雨嗟何時夜夜忠魂應帝側

    兒郞偉抛梁上壑風日夜吹空幌何時掃却千重雲更見中天瑞色晃

    兒郞偉抛梁下一帶長川晝夜寫達海方知源已深請看繼繼如斯者

伏願上梁之後山川增彩山可夷谷可遷詎可忘肯構之美蘋蘩益精遵先訓述先事必先思立揚之方

戊寅臘月上旬河東鄭道鉉撰

김 익원공 영정각상량문(金翼元公影幀閣上梁文)

나라에 덕()을 쌓고 공()을 세우면 역대 임금들은 잊지 않도록 업적을 기리고 숭상한 뒤에 종묘(宗廟)나 사당(祠堂)에 신주(神主)를 봉안하고 영정(影幀)을 걸게 해서 더욱 공()을 기리도록 하였으니 대대손손 영원토록 공경스럽게 제사를 지내 사모하면서 제사를 폐하지 않도록 사당을 세워 새롭게 한다. 삼가 생각건대 상락백(上洛伯) 김 익원공(金翼元公) () 사형(士衡)은 혁혁(赫赫)한 화산(花山)7) 의 지체 높고 유서 깊은 가문이요, 우뚝한 청구(靑邱 : 東邦)의 명문가 출신이다. 이분은 나라를 지킬 만한 재주를 지니고 있어 어린아이 때부터 기개와 도량이 걸출하여 아독(牙纛)8) 을 세울 정도로 귀해지리라 기대하였으니 누군들 그 성품과 재능을 공경하여 우러러보지 않겠는가. 음양(陰陽)을 다스리고 사계절을 순조롭게 통하게 해서 임금을 보좌하는 직책9) 을 일찍부터 자신의 임무로 여겨서 옳은 길을 추구하는 데 힘쓰고 온갖 사물을 통할하였으며, 문무(文武)의 자질을 겸비하는 것 역시 부족함이 없었다. 태조(太祖) 강헌대왕(康獻大王)과 정종(定宗) 공정대왕(恭靖大王) 부자(父子)의 원로 훈신(元老勳臣)으로서 증조부 문영공(文英公 : )과 조부 정간공(貞簡公 : 永煦)의 음덕(蔭德)을 입었는데 벼슬을 사양하고 낙포(洛圃)로 돌아온 것은 부귀 따위를 뜬구름처럼 여긴 것이며, 사전(私田) 개혁을 논의한 것은 가슴에 품은 회포가 밝은 달을 껴안은 것과 같다. 태실(太室 : 宗廟)에 배향되니10) 성스러운 우리 왕조의 추증(追贈) 중에 존중한 것이 이보다 더한 경우가 없었으며, 기원(耆園 : 耆老所)에 들어가 명성을 드날린 것이 세상에서 보기 드물 정도니 귀하기가 이보다 더한 경우가 없었다.

 

()의 초상은 실제 모습과 흡사하게 닮았는데,11) 아득하게 먼 후손들은 여기저기 사방의 여러 고을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세상의 화란(禍亂)이 침투할 것을 염려하였다. 이에 지령(地靈)이 신묘한 더욱 깊은 곳을 택하여 안음(安陰)의 매산(梅山)으로 영정(影幀)을 옮겨 봉안하였으니 부여(扶餘)의 저석(楮石)에서 모셔 온 것이다.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춘 곳으로 번화한 시가(市街)의 시끄럽고 떠들썩한 것이 전혀 없고, 산수가 아름답고 밝아서 참으로 도의(道義)를 지키며 은둔하기에 적합하다. 후손들이 모두 고단함을 잊고 노역에 나가는데 늙은이나 젊은이나 모두 정성을 다 바쳐 본받을 만하였으며, 사람들이 즐겁고 화목하게 일을 해 나가자 원근(遠近)의 선비들 역시 기꺼이 힘을 보탰다. 영정각은 위아래와 사방이 반듯하고 훨훨 나는 새가 날개를 활짝 편 듯 웅장한 형상으로 좌우 양쪽 면이 엄숙하면서도 장엄하여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린 듯한 기세이다. 아마도 정령(精靈)께서 완벽하게 여기실 듯한데, 얼음과 서리처럼 늠름하면서도 마치 눈에 보이는 듯 귀에 들리는 듯이 나에게 훌륭한 자손이 있다.”라고 하시는 듯하다. ()로써 나아가고 의()로써 물러나서 그대 조상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여 선조를 추모하는 정성이다. 곧 친족 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의의 또한 여기에 있다. 긴 들보를 들어 올리는 것을 돕기 위해 감히 곱자에 새긴 노래를 올리는 바이다.

 

兒郞偉抛梁東 어영차 들보 동쪽에 떡을 던져라

恩褒眷眷敎文中 교서(敎書)에 담긴 은혜로운 표창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으니

風雲際會終何極 어진 임금과 총명한 신하의 만남12) 어찌 끝이 있으리

一體君臣祭祀同 한몸 같은 임금과 신하라 제사도 함께 받네

 

兒郞偉抛梁西 어영차 들보 서쪽에 떡을 던져라

嶻彼東金路不迷 우뚝한 안동김씨 길이 낯설지 않음을 깨달으리

太祖當年幾駐蹕 태조께서 당시에 몇 번이나 어가(御駕)를 멈추셨던가

狩公勳業此山濟 정벌할 때 익원공의 공로 이 산에 가득 하다네

 

兒郞偉抛梁南 어영차 들보 남쪽에 떡을 던져라

方丈山高翠滴嵐 지리산13) 높고 푸르러 산기운이 뚝뚝 떨어지는데

今古干城材幾許 예나 지금이나 나라 지킬 인재 몇이던가

窮林日夜秀楩楠 깊은 숲속에 밤낮으로 편나무와 녹나무14) 만 빼어나네

 

兒郞偉抛梁北 어영차 들보 북쪽에 떡을 던져라

衆星約煙環震極 뭇별들 연기처럼 북극성15) 을 둘러싸는데

六洲風雨嗟何時 , 온 세상16) 은 어느 때나 비바람 부니

夜夜忠魂應帝側 밤마다 충성스런 혼령께서 상제(上帝) 곁에 마주하리

 

兒郞偉抛梁上 어영차 들보 위쪽에 떡을 던져라

壑風日夜吹空幌 골짜기에 부는 바람 밤낮으로 빈 장막에 불어오는데

何時掃却千重雲 어느 때나 천 겹으로 둘러싼 구름 걷어내서

更見中天瑞色晃 하늘에 상서로운 빛이 환히 빛나는 것을 보게 되리

 

兒郞偉抛梁下 어영차 들보 아래쪽에 떡을 던져라

一帶長川晝夜寫 띠처럼 기다란 시내 밤낮으로 비추는데

達海方知源已深 바다에 이르러 근원이 매우 깊은 것을 알 것이니

請看繼繼如斯者 계속해서 이와 같이 보기를 바라노라

삼가 들보를 올린 뒤에 산천(山川)이 더욱 빛나고, 산이 평평해지고 골짜기가 바뀌더라도 어찌 긍구(肯構)17) 의 아름다운 뜻을 잊겠는가. 변변치 못한 제수(祭需)라도18) 더욱 정성을 들이고, 선조의 가르침을 따르고, 선조의 사업을 계승하여 이름을 떨쳐 부모를 영광스럽게 해 드리는 방도를 반드시 먼저 생각하게 하라.

무인년(1938) 음력 12월 상순(上旬)

하동인(河東人) 정도현(鄭道鉉) 지음

충렬공김방경기념사업회(원문/국문)

 

1) 이 글은 경남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 매각(梅閣)마을의 낙포영각(洛圃影閣)에 걸려 있는 익원공 영정각상량문(翼元公影幀閣上梁文) 현판을 판독·번역한 것이다.

2) : ‘의 오자(誤字).

3) 峻發 : ‘峻拔의 오자(誤字).

4) 追榮 : ‘추증(追贈)’의 뜻이다.

5) : 현판에서 판독하지 못한 글자.

6) : 상동

7) 화산(花山) : 안동(安東)의 별호(別號). 이외에도 고타야(古陁耶), 고창(古昌), 영가(永嘉), 길주(吉州), 복주(福州), 능라(綾羅), 지평(地平), 석릉(石陵), 일계(一界), 고장(古藏), 고령(古寧) 등의 별호가 있다.

8) 아독(牙纛) : 깃대 끝을 상아로 장식한 큰 깃발. 주장(主將)이나 원수(元帥)가 있는 곳에 세운다.

9) 음양(陰陽)……직책 : 문무백관(文武百官)을 통솔하는 정승(政丞)을 뜻한다.

10) 태실(太室 : 宗廟)에 배향되니 : 익원공은 태조 배향공신으로 거론되기는 했으나, 끝내 포함되지는 않았다. 조선왕조실록1410(태종 10) 712일조 <태조의 배향공신을 조준·조인옥·이화·이지란 등으로 정하다> 참조.

11) 흡사하게 닮았는데 : 현판 원문 肖七分之眞顔에서 七分은 초상(肖像)이나 영정(影幀)이 흡사하게 잘 그려졌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정이(程頤)역전(易傳)을 지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단지 7분만 설명한 것뿐이니 배우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다시 살펴서 체득해야 한다(只說得七分學者更須自體究).”라고 하였는데, 제자인 장역(張繹)이 훗날 정이(程頤)의 제문을 지으면서 그 말을 인용해 선생의 말씀 중에 글로 적은 것은 7분의 마음이 있고, 단청으로 그린 것은 7분의 용모가 있다(先生有言見於文字者有七分之心繪於丹靑者有七分之儀).”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12) 어진……만남 : 원문 풍운제회(風雲際會)’는 어진 임금과 뛰어난 신하가 만나 선정(善政)을 베푸는 것을 말하는데, 주역(周易)에서 용이 날아올라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飛龍在天利見大人).”라고 한 말과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르니 성인이 나오시면 만물이 모두 우러러보게 마련이다(雲從龍風從虎聖人作而萬物覩).”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13) 지리산 : 원문 方丈山은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를 일컫는데, 우리 나라 지리산(智異山)의 별호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매각 마을과 가까이 있는 지리산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14) 편나무와 녹나무 : 원문 楩楠은 좋은 재목감으로 쓰이는 편나무와 녹나무를 가리키는데, 훌륭한 인재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15) 북극성 : 원문 震極주역(周易)에서 나온 말로, ‘임금의 자리를 뜻한다.

16) 온 세상 : 원문 六洲는 육대주(六大洲)를 가리키는 말로, ‘온 세상을 뜻한다.

17) 긍구(肯構) : ‘긍구긍당(肯構肯堂)’ 또는 긍당긍구(肯堂肯構)’의 준말로 서경(書經)<대고(大誥)>아버지가 집을 지으려고 설계를 끝냈더라도 그 자손이 집터도 닦으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집이 완성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若考作室旣底法厥子乃不肯堂矧肯構).”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18) 변변치……제수(祭需)라도 : 원문 蘋蘩는 개구리밥과 산흰쑥이라는 뜻으로, 변변치 못하더라도 정성껏 올리는 제수(祭需)를 뜻한다.

익원공 영정각(影幀閣) 영정각기(影幀閣記)1)

影幀閣記

古之人有大功國而爲社稷之臣家而爲文憲2) 之祖則節錄之極圖像以榮之廟食之外影幀以奉之自漢以來遂成美典厚禮或至于今日若翼元公金洛圃先生可伯仲於古人而子姓之世居減陰縣梅閣里者亦有見於此歟往在丁戊之交移奉遺像於別祠春秋以安享已而在寬君以闔門3) 之意問其所記而辭甚懇摯顧雖膚淺不忍牢辭謹按來狀則公安東人諱士衡字平甫席累世之華蔭挺嶽降之偉才際値勝國之末見麗運寢衰天命人心盡歸李氏故佑我聖祖一戎衣而定國家論功行賞圖像之榮史失其傳而策勳一等官左議政4) 封上洛伯配食太祖廟追入耆老所至于子孫亦享不祧之祀而猶且未慊被寫當日之肖像崇衛於域中殆不讓於漢時之美典厚禮也於乎圓顱方趾鼻口耳目具此天形者孰非人也而禽心獸腸食粟而包者滔滔皆是公獨何人身上事業沒後聲名能使天下後世欲忘而不可得何只壯哉雖然常人之情奉先之際率多無其誠而謂無其神者以制神之無形也若今之影幀則出自三昧是無形而有形也余知金氏諸公選日瞻拜翼元公之席巍巍之巍巍泰山而喬嶽也昭宇靑天而白日也燦宇祥鸞而瑞鳳也俯仰怳惚靡所措躬退而相謂曰受祖先之氣脈一此不肖更何顔展謁於七分儀臨之下哉幡然改圖發靷於忠孝之路陳力於修治之方夙夜慥慥積以歲功則靈是醴泉自有根源安知翼元公後生於來世也哉敬以此爲金氏祝而題于影閣之隅

旃蒙協洽嘉月上瀚沙梁崔薰敎

영정각기(影幀閣記)

옛날 사람들은 큰 공훈(功勳)이 있으면 나라에는 사직(社稷)을 지키는 중신(重臣)이 되고 가정에는 시호(諡號)를 받은 조상이 되니 이를 기록하고 초상(肖像)을 그려 극히 영광스럽게 하였으며, 종묘(宗廟)나 사당(祠堂)에서 제사를 올리는 것 외에도 영정(影幀)을 그려 받드는 것이 한()나라 이래 마침내 아름다운 의식(儀式)이자 두터운 예식(禮式)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익원공(翼元公) 김낙포(金洛圃) 선생 같은 분은 옛날 위인들 중에서도 으뜸을 다툴 만한 분인데, 후손들이 감음현(減陰縣)5) 매각리(梅閣里)에 대대로 살아오면서 또한 이러한 점을 알지 않았겠는가. 지난 정축년(丁丑年)과 무인년(戊寅年)에 모든 것을 완비하여 영정(影幀)을 별사(別祠)로 옮겨 봉안하고 봄가을마다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6) 곧이어 재관(在寬) 군이 집안 전체의 뜻이라며 그 내용을 기록해 달라고 부탁하였는데, 그 말이 참으로 정성스럽고 간절하여 마침내 내가 비록 지식이 얕고 견문이 좁으나 차마 고집스럽게 사양하기 어려웠다.

 

삼가 보내온 행장(行狀)을 살펴보니 공()은 안동인(安東人)으로 휘()는 사형(士衡), ()는 평보(平甫)이다. 대대로 이어진 화려한 가문(家門)의 음덕(蔭德)을 받고, 산악(山嶽)의 정기(精氣)를 받아 뛰어난 재능과 지혜를 갖추어 태어나셨는데, () 왕조의 말기에 이르러 고려의 국운이 쇠락하는 것을 보고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모두 이씨(李氏)를 따르게 되자 우리 성조(聖朝)를 도와서 한 번 융의(戎衣 : 軍服)를 입어 나라를 안정시키니 공()을 논하여 상을 내리고 초상을 그리는 영예를 입었으나, 역사서에 기록한 것이 전하지 않는다. 또한 공훈(功勳)이 일등(一等)으로 책록(策錄)되고, 벼슬은 좌정승(左政丞)이고, 상락백(上洛伯)에 봉해졌으며, 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기로소(耆老所)에 추가로 들어가시어7) 자손들이 영원무궁토록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지내기에 이르렀다. 그러고도 만족스럽지 않아 바로 그 날 초상을 그리게 하여 나라 안에서 높이 숭상하고 보위하게 하였으니 거의 한()나라 때의 아름다운 의식(儀式)이자 두터운 예식(禮式)에 못지않았다.

 

,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춘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늘이 갖추게 하는 것이지 그 누구라도 사람이 갖추게 하는 것은 아니다. 한갓 짐승의 마음이나 짐승의 속내로는 곡식을 먹고 배가 부른 것 그것이 전부이다. ()이 특히 어떤 사람인가 하면, ()의 처신이나 업적이 돌아가신 뒤에 명성을 떨쳐 천하 후세(後世)에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으니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비록 그러하나 보통 사람의 마음으로는 선조의 덕업(德業)을 받들어 모실 때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신령(神靈)이 없다고 한다면 임금이 친히 신령(神靈)에게 제사를 지내는 규정도 형체가 없어야 한다. 지금의 영정(影幀)은 삼매(三昧 : 오묘하고 깊은 뜻)에서 나왔으니 이는 형체가 없지만 형체가 있는 것이다. 내가 김씨(金氏) 제공(諸公)들과 알고 지냈는데, 첨배(瞻拜)8) 하는 날짜를 정하니 익원공의 자리는 우뚝한 중에서도 우뚝하여 태산(泰山)과 교악(喬嶽) 같았으며, 영정각이 밝게 빛나는 것이 맑은 하늘에 뜬 해와 같고, 영정각이 찬란한 것이 상서로운 난새와 봉황 같았다. 굽어보고 올려다보다가 정신이 몽롱하여 몸 둘 바를 몰라서 물러나와 서로 말하기를 선조의 기맥(氣脈)을 받는데, 이는 참으로 훌륭하게 그린9) 영정(影幀)이 내려다보고 계시니 우리 후손들이 다시 무슨 낯으로 배알하겠는가? 빨리 생각을 바꾸어서 충효(忠孝)의 길로 나서서 자신을 연마하고 수련하는 방도에 진력하는 일에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착실하게 힘써서 해마다 공()을 쌓으면 혼령(魂靈)은 이 단샘[醴泉]10) 의 근원이 되는 것이니 어찌 익원공의 후손이 내세(來世)에 태어나는 것을 알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공경스레 이와 같이 김씨(金氏) 집안을 축하하면서 영정각(影幀閣) 모퉁이에 적는다.

을미년(1955) 음력 311) 상순(上旬)

사량인(沙梁人 : 慶州人) 최훈교(崔薰敎) 지음

충렬공김방경기념사업회(원문/국문)

 

1) 이 글은 경남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 매각(梅閣)마을의 낙포영각(洛圃影閣)에 걸려 있는 익원공 영정각기(翼元公影幀閣記) 현판을 판독·번역한 것이다.

2) 文憲 : ‘시호(諡號)’를 뜻한다.

3) 闔門 : ‘擧家한 집안, 온 집안, 한 가문의 뜻이다.

4) 左議政 : ‘左政丞의 잘못. 번역문에는 좌정승(左政丞)’으로 고쳐 적었다.

5) 감음현(減陰縣) : 경남 함양군 안의면의 고려시대 때 이름.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지리지 안음현(安陰縣) 참조.

6) 지난……되었다 : 원문 往在丁戊之交移奉遺像於別祠春秋以安享에서 丁戊는 병자년(丙子年 : 1936)에 익원공 영정을 전북 고창에서 이곳 매각마을로 옮겨 모시기 위해 별사(別祠)를 지은 정축년(丁丑年 : 1937)과 무인년(戊寅年 : 1938)의 간지(干支) 첫 글자 丁戊를 따온 것이다. ‘교제(交際), 우정(友情), 사귀다가 아니라, ‘구비하다, 갖추다, 완비하다의 뜻이다. ‘를 전자의 뜻으로 새기면 뒷말 移奉遺像於別祠春秋以安享과 문맥이 통하지 않는다. 강희자전(康熙字典)에는 를 한()나라 때의 훈고서(訓詁書) 소이아(小爾雅)라 하였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앞뒤 문맥을 고려하면 갖추다, 완비하다의 뜻으로 새겨야 한다.

7) 태조의……들어가시어 : 익원공은 태조 묘정의 배향공신으로 거론되기는 했으나, 끝내 포함되지는 않았다. 조선왕조실록1410(태종 10) 712일조 <태조의 배향공신을 조준·조인옥·이화·이지란 등으로 정하다> 참조. 또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직관고(職官考) 기사(耆社), 동국문헌록(東國文獻錄), 문헌고략(文獻攷略)등에는 1394(태조 3) 10월에 태조가 보령(寶齡) 60세로 기사(耆社)에 들어가면서 정2품 이상으로 만 70세가 넘은 문관(文官) 출신 관원을 기사(耆社)에 들어가도록 하였다고 적혀 있다. 이때 익원공은 개국 일등공신으로 우정승(右政丞)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태조의 특명으로 기사(耆社)에 들어간 것이지 나중에 추가된 것이 아니다. 이의현(李宜顯)<기로소제명록후(耆老所題名錄後)에 적다>에는 기사(耆社)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조건에 맞지 않지만 기사(耆社) 명단에 적혀 있는 사람들은 제도가 확정되기 전에 들어간 사람들인 듯하다고 하였다.

8) 첨배(瞻拜) : 선조(先祖)나 선현(先賢)의 묘소 또는 사우(祠宇)를 우러러 배례(拜禮).

9) 훌륭하게 그린 : 현판의 원문 七分儀는 초상(肖像)이나 영정(影幀)이 흡사하게 잘 그려졌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정이(程頤)역전(易傳)을 지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단지 7분만 설명한 것뿐이니 배우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다시 살펴서 체득해야 한다(只說得七分學者更須自體究).”라고 하였는데, 제자인 장역(張繹)이 훗날 정이(程頤)의 제문을 지으면서 그 말을 인용해 선생의 말씀 중에 글로 적은 것은 7분의 마음이 있고, 단청으로 그린 것은 7분의 용모가 있다(先生有言見於文字者有七分之心繪於丹靑者有七分之儀).”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10) 단샘[醴泉] : 물맛이 단 물이 솟는 샘. 태평성대의 상서로운 징조를 뜻한다.

11) 을미년(1955)……3: 원문 旃蒙協洽旃蒙은 천간(天干)을 뜻하는 고갑자(古甲子)이며, ‘協洽은 십이지(十二支)을 뜻하는 고갑자(古甲子)로 두 말을 합하면 을미년(乙未年)’이 된다. ‘嘉月음력 3의 이칭(異稱)이다.

 

 

 

 

참봉 김영주(金榮珠)송덕비

경남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 산 132

參奉安東金公榮珠 頌德碑

참봉안동김공영주 송덕비

 

傾鼎損匙   東道黔哉   極弱周窮   北海孔融

경정모시   동도검재   극약주궁   북해공융

施於不報   凡拻博夫   遇者飽德   視此刻石

시어불보   범회박부   우자포덕   시차각석

//안동김씨 익원공파 목사공계 함열현감 김수의(金守義)의 10대손 충의참봉 약산 김영주(樂山 金榮珠) 가계//

  7대조 익원공 낙포 김사형(익원공 낙포 김사형)

고조부 여주목사 증 영의정 영가부원군 김적(永嘉府院君 김적)

증조부 병조참의 증 호조판서 영안군 양한재 김수경(永安君 養閑齋 金壽卿, 1465~1525)

   조부 증 이조참판 화산군 김해(花山君 金瀣, 1490~1534)

    부친 첨지중추부사 김덕기(金德麒)

            함열현감 김수의(金守義,1584~1650) ==안동김씨 익원공파 목사공계 함양 입향조

            배위 숙부인 나주임씨, 임광하(林光夏)의 따님

            장남 절충장군 행목포만호 김인휴(金仁烋, 1601~)

            배위 숙부인 탐진최씨, 생원 최곤(崔崑)의 따님

                손자 예빈시봉사 김언세(金彦世, 1622~1687)

                        증손자 통사랑 김두일(金斗一, 1661~), 오대산 사고 참봉

                손자 김언종(金彦宗)

                  증손자 김귀남(金貴楠)

                    현손 통정대부 김하양(金夏亮)

                         5대손 김사연(金仕衍)

                         6대손 참봉 김이철(金履喆)

                         7대손 김상순(金相淳)

                         8대손 통정 돈녕부도정 김연근(金連根, 1812~1886) 

                                  조모 숙부인 밀양박씨, 박시손(朴時遜)의 따님

                                  조모 숙부인 완산이씨, 이봉의(李鳳儀)의 따님

                        9대손 부친 통정 돈녕부도정 김대원(金大源, 1841~1923) 신축 계해

                                  모친 숙부인 은진송씨, 송유정(宋有鼎)의 따님

                       10대손 충의참봉 약산 김영주(樂山 金榮珠, 1880~1949)

                                   배위 공인 밀양박씨, 박동옥(朴東玉)의 따님

                                   장남 김심묵(金心默, 1897~1913)

                                           손자 매봉 김재관(梅峯 金在寬, 1913~1985)

                                                   증손자 김이회(金以會)

                                                   증손자 부장검사 김차회(金次會)

                                   차남 김성묵(金性默, 1905~1940) 을사 경진

                                           손자 김재덕(金在德, 1923~1967)

                                                   증손자 김효회(金孝會)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