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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좌찬성 문량공 사숙재 강희맹(文良公 私淑齋 姜希孟), 연성재 연성문 (蓮城門)

구름에 달

by 碧巖 2024. 6. 22.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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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좌찬성 문량공 사숙재 강희맹(文良公 私淑齋 姜希孟)

경기 시흥시 하산동 산2

議政府左贊成晉山君文良公姜公之墓 貞敬夫人安氏附葬

의정부좌찬성진산군문량공강공지묘 정경부인안씨부장

문량공 사숙재 강희맹(文良公 私淑齋 姜希孟)선생  묘역후경

 

사숙재 강희맹(私淑齋 姜希孟,1424~1483)은

세조9년(1463) 40세에 중추원부사로서 진헌부사가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올 때

남경의 전당(錢塘)이라는 연못에서 자라는 꽃잎의 색이 희고 끝이 뾰족하며 담홍색을 띠는

아름다운 연꽃인 전당홍(錢塘紅)을 국내에 전파시켰으며,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로서 경사(經史)와 전고(典故)에 통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농촌사회에도 관심이 많아 관직에서 물러나 금양현(衿陽縣, 시흥의 옛지명)에 머물며 손수 농사를 지었는데

그곳 늙은 농부들의 경험과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금양잡록(衿陽雜錄)」을 지었다.

금양잡록은 '금양(衿陽)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잡다한 일을 적은 것'이라고 겸손한 이름을 붙였다.

 

문량공 강희맹선생 묘역안내도

강희맹선생 묘 및 신도비

좌찬성 문량공 사숙재 강희맹(文良公 私淑齋 姜希孟)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운송거사(雲松居士)·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강시(姜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북면순무사 강회백(姜淮伯),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沈溫)의 따님이다.

형님이 인순부윤(仁順府尹)이자 화가 강희안(姜希顔)이며, 이모부가 세종이다.

1447년(세종 29) 24세로 친시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종부시주부가 되었다.

1450년 예조좌랑과 돈녕판관을 역임하고, 1453년(단종1) 예조정랑이 되었다.

1455년(세조1)에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고, 그 뒤 예조참의·이조참의를 거쳐,

1463년 중추원부사로서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4년 부윤으로서 어제구현재시(御製求賢才試)에 2등으로 합격하고,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3등, 등준시(登俊試)에 2등으로 급제했다.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이 되었으며, 예조판서를 거쳐 1467년에는 형조판서로 특배되었다.

1468년(예종 즉위년)에 남이(南怡)의 옥사(獄事)를 다스린 공으로

1469년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봉되어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지고,

1471년(성종 2)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봉되었다.

그해에 지춘추관사로서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세조실록』·『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1473년에는 병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판중추부사,이조판서,판돈녕부사,우찬성을 역임한 뒤,

1482년에 좌찬성에 이르렀다. 인품이 겸손하고 치밀해 맡은 일을 잘 처리했으며,

또 경사(經史)와 전고(典故)에 통달했던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였다.

 

사대부로서의 관인적 취향과 섬세한 감각을 가진 문인이면서도

농촌 사회에 전승되고 있는 민요와 설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

관인문학(官人文學)의 고답적인 자세를 스스로 파괴했다.

『농구십사장(農謳十四章)』은 생활 주변에서 채집한 농요를 모아 정리한 것으로

농민들의 애환과 당시 농정(農政)의 실상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사숙재 강희맹의 시 중에서 그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는 평을 받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의 시집인 『진산세고(晉山世稿)』를 편찬했으며, 

세조 때 『신찬국조보감(新撰國朝寶鑑)』·『경국대전』의 편찬과 사서삼경의 언해, 

성종 때는 『동문선』·『동국여지승람』·『국조오례의』·『국조오례의서례』 등의 편찬에 참여했다.

또한, 소나무와 대나무 및 산수화를 특히 잘 그렸는데, 

현재 일본의 오구라문화재단[小倉文化財團]에 소장되어 있는 「독조도(獨釣圖)」는 강희맹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글씨로는 원각사비(圓覺寺碑)의 액전(額篆), 

아버지와 강지돈(姜知敦) 묘표의 액서(額書), 합천홍류동체필암각(陜川紅流洞泚筆巖刻) 등을 썼다.

저서로는 성종의 명에 따라 서거정(徐居正)이 편찬한 『사숙재집(私淑齋集)』 17권 이외에

 『금양잡록(衿陽雜錄)』.『촌담해이(村談解頤)』.『사시찬요초(四時簒要抄)』 등이 전하고 있다.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사숙재 강희맹(私淑齋 姜希孟, 1424~1483)의 신도비는

대구인 좌찬성 문충공 사가정 서거정(文忠公 四佳亭 徐居正,1420~1488) 찬하였으며

밀양인 홍문관박사 눌재 박증영(訥齋 朴增榮,1464~1493) 쓰고  전(篆)을 하여,

1488년 성종19년에 건립되었다.

 

 

 

 

재실 연성재 연성문 (蓮城門)

 

 

연성재(蓮城齋)

안산구업(安山舊業)

사숙재문(私淑齋門)

진산군 문량강공 사우중건기념비                                 연성재중건비

문량공사우(文良公祠宇)

//좌찬성 문량공 사숙재 강희맹(文良公 私淑齋 姜希孟) 가계//

고조부 정당문학 강군보(姜君寶)

증조부 문하찬성사 공목공 강시(恭穆公 姜蓍,1339~1400)

   조부 동북면순무사 통정 강회백(通亭 姜淮伯,1357~1402,태종2)

   생부 진양부원군 대민공 완역재 강석덕(戴愍公 玩易齋 姜碩德,1398~1459)

   양부 강순덕(姜順德), 찬성사 이숙번(李叔蕃,1373~1440)의 사위

   모친 증 정경부인 청송심씨. 영의정 안효공 심온(安孝公 沈溫,1375~1418)의 따님

          형님 인수부윤 강희안(姜希顔,1418~1464)

                   조카 팔용정 강학손(八龍亭 姜鶴孫,1455~1523) 생부 사숙재 강희맹(私淑齋 姜希孟)

          좌찬성 문량공 사숙재 강희맹(文良公 私淑齋 姜希孟,1424~1483=60)

          정경부인 순흥안씨, 관찰사 한백당 안숭효(寒栢堂 安崇孝)의 따님

                장남 우의정 숙헌공 강구손(肅憲公 姜龜孫,1450~1505),

                배위 정경부인 은진송씨, 군자감정 송요년(宋遥年)의 따님

                      손자 순천도호부사 강태수(姜台壽,1479~1526), 생부 팔용정 강학손(八龍亭 姜鶴孫)

                      배위 연일정씨, 홍문관직제학 산행와 정회(山行窩 鄭淮)

                      손자 안동부사 강이의(姜二儀)

               차남 장예원사평팔용정 강학손(八龍亭 姜鶴孫,1455~1523), 출계 백부 강희안(姜希顔)

               장녀 창녕인 평안공 일로당 성세명(平安公 佚老堂 成世明,1447~1510)

               차녀 안동인 부평도호부사 증 대사헌 김성동(金誠童,1452~1495)

               삼녀 고령인 인천부사 신렴(申濂)

               사녀 안동인 사헌부감찰 권만형(權萬衡)

               삼남 강오손(姜鰲孫)

               사남 강종손(姜螽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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