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시강원보덕 후곡 나급(後谷 羅級)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산124-8
나봉산(羅峰山), 원대산(元垈山)
나봉산(羅峰山), 원대산(元垈山)
나봉산(羅峰山)에는 나윤침(羅允忱)선생과
후곡 나급(後谷 羅級)선생의 묘가 있는데
나윤침의 아들 나급은 임진왜란때 한산군수, 공주목사로
난중에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강화 관계로 부산에 와 있던
명나라 유격(遊擊) 진운홍(陣雲鴻)의 접반관으로 차출되어 적진을 왕래하고
1597년 명나라에 동지사(冬至使) 서장관(書狀官)으로 다녀온 뒤
평산부사 등을 지낸 인물로
선조에게 나봉산을 중심으로 상당한 토지를 하사 받았는데
이때부터 나봉산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한편, 나봉산은 원대산(元垈山)으로도 불리는데
사사동쪽에서 보이는 산 기슭에 원터라 불리는 땅이 있고
사사동의 파평윤씨 족보에도 원대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금도 원터에서는 기왓장과 돌절구 등 석물이 발견되고 있다.
산 모양이 사방에서 보아도
모두 삼각형의 우렁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나봉산(羅峰山)이라는 설도 있다.
안정나씨 어영대장 나홍좌(羅弘佐)신도비, 후곡 나급(後谷 羅級)신도비, 나명좌(羅明佐)묘갈명
세자시강원보덕 후곡 나급(後谷 羅級)
유독 안산시의 많은 묘역을 거닐며 둘러본 바에 의하면
이곳 상록구 건건동 나봉산 일원의 안정나씨 묘역은
안산시 향토유적으로라도 지정하여 지속적인 관리가 되도록하여야 함이 마땅할 것 같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드러난 강직함속의 청렴결백은
스스로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고 백성을 위하여 행동하던 철학은
현대인 또한 젊은세대들이 본 받아야만 하는 안산의 정신일 것이다.
조사는 열심히 해 놓고 충족 못하는 그 무엇이 있는지 ...
시민과 함께 자유로운 혁신도시 안산시 문화유적 담당자들에게 아쉬움을 전하고 싶다.
세자시강원보덕 후곡 나급(後谷 羅級)
有明朝鮮世子侍講院輔德 贈議政府領議政 羅公級之墓 貞敬夫人光州金氏祔左
유명조선세자시강원보덕 증의정부영의정 나공급지묘 정경부인광주김씨부좌
세자시강원보덕 후곡 나급(後谷 羅級)
1552(명종 7)∼1602(선조 3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자승(子升), 호는 후곡(後谷). 나주 출신.
할아버지는 적성현감 나익(羅瀷)이고,
아버지는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나윤침(羅允忱)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별좌 이원기(李元記)의 따님이다.
1576년(선조9) 25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사직참봉에 제수되었다가,
1585년 34세에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이 되고
그뒤 한성부참군·병조좌랑·성균관전적을 거쳐 임진왜란 중 한산군수·공주목사로 난중의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였다.
1596년 제용감정으로 있을 때 왜군과의 강화관계로 부산에 파견되었던
명나라 무장인 유격(遊擊) 진운홍(陳雲鴻)의 접반관(接伴官)으로 차출되어 적진을 왕래하였다.
이듬해 지평,장령, 시강원문학 등을 거쳐
주은 김명원(酒隱 金命元1534~1602)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보덕·장령을 역임하였다.
1600년 평산부사로 나갔는데 마침 관하(管下) 서리의 죄를 심하게 다스린 것이
월권행위로 고발되어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죽은 뒤 임진왜란 때의 공로로 도승지에 추증되었고,
또 뒤에 아들 구포 나만갑(鷗浦 羅萬甲,1592~1642)의 공훈에 의하여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原任議政府左議政宋時烈述 議政府左議政金壽恒書
원임의정부좌의정송시열술 의정부좌의정김수항서
그는 천성적으로 순수하고 착하여 악한 데가 없었지만 시시비비를 가림에 있어서는
죽고 사는 험한 경우라도 그 강직함에는 그 누구도 가히 미치지 못했다.
그가 대헌(臺憲)으로 있을 때에도 옳지 못한 것을 탄핵하는 일에 피한 일이 없으며,
간혹 왕자가 기생과 놀아나거나 백성을 구타하면 엄한 형벌로 다스렸다.
그는 효성스럽고 우애가 깊었다.
아버지가 위독하자 한 손가락을 잘라 약에 타서 올리자 끊어진 생명이 다시 소생하였고,
집이 가난하여 미투리가 구멍이 뚫려도 마음은 항상 낙천적이었다.
들에는 백보의 땅이 없었고,
언덕 위에는 오두막집 한 칸 없이
비와 바람도 막지 못하는 쓸쓸한 셋집에서 죽었지만,
염하고 장례하는 일을 모두 지인들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贈領議政羅公級 貞敬夫人光山金氏之墓
증영의정나공급 정경부인광산김씨지묘
후곡 나급(後谷 羅級) 묘소측경 및 구비의 이수(舊碑의 螭首)
신도비 세자시강원보덕 후곡 나급(後谷 羅級,1552~1602)
贈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事感世子師行通訓大夫世子侍講院輔德羅公神道碑銘幷序
증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영경연사감세자사행통훈대부세자시강원보덕나공신도비명병서
大匡輔國崇祿大夫原任議政府左議政判中樞府事兼領經筵事感春秋館事 李廷龜撰
대광보국숭록대부원임의정부좌의정판중추부사겸영경연사감춘추관사 이정구찬
集正憲大夫行司憲府大司憲 宋浚吉書
집정헌대부행사헌부대사헌 송준길서
後十世孫相午篆幷한글敬書
후십세손상오전병한글경서
//안정나씨 세자시강원보덕 후곡 나급(後谷 羅級) 가계//
6대조 죽산현사 나경손(羅慶孫)의 따님
5대조 양산군수 나유선(羅裕善)
고조부 증 한성참군 나계종(羅繼宗)
중조부 창릉참봉 나세걸(羅世傑)
증조모 풍양조씨, 대사헌 공숙공 조익정(恭肅公 趙益貞)의 따님
조부 성균관전적 나익(羅瀷,1507~1537)==문과급제
조모 전주이씨,고흥수 이종(高興守 李鍾)의 따님,고흥부수 이억천(李億千)의 따님
부친 성균학유 나윤침(羅允忱,1527~1578)==문과급제
모친 숙인 전주이씨, 별제 이원기(李元紀)의 따님
세자시강원보덕 증 영의정 후곡 나급(後谷 羅級,1552~1602)==문과급제=신도비
배위 정경부인 광산김씨, 한성참군 김호선(金好善)의 따님
자 형조참의 증 좌의정 구포 나만갑(鷗浦 羅萬甲,1592~1642)==문과급제
배위 정경부인 광산김씨, 한성참군 김호선(金好善)의 따님
손자 증 호조참판 나성원(羅星遠,1628~1649=21)
증손 어영대장 나홍좌(羅弘佐,1649~1709) ===신도비
손자 해주목사 기주 나성두(碁洲 羅星斗,1614~1663)
증손 나명좌(羅明佐,1634~1651) ====묘갈명
증손 명촌 나양좌(明村 羅良佐,1638~1710)
증손 내시교관 상우당 나석좌(尙友堂 羅碩佐,1652~1698)
손자 나성한(羅星漢)
벽암두릉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