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김씨 공조판서 설파 김득인(雪坡 金得仁)
충남 당진시 송산면 금암로 275-32 (당산리 654-1)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과 시곡동에 집중 거주하는 강릉김씨는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溟州郡王 金周元)의 21세손인
조선 시대 성종 때의 문신 설파 김득인(雪坡 金得仁,1423~1494]에 의해 형성된 집성촌이다.
이들은 군자감정을 지낸 김응추(金應秋)와
이조참의를 지낸 김우추(金遇秋)에 의하여
원당파와 시곡파로 나뉘어 근 300년 동안 거주해 왔다.
江陵金氏雪坡院
강릉김씨설파원
설파원창건기
설파원(雪坡院)
설파 김득인(雪坡 金得仁,1423~1494)은
조선 태종 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낸 김효렴(金孝廉)의 장남으로
성종 때 공조 판서에 오른 인물이다.
1438년 세종20년에 16세로 진사를 거쳐
1441년 세종23년 19세에 문과 장원으로 한림원으로 출사하여
성균관과 대사간을 거쳐 북평사를 지냈다.
성종조에 도승지 청단 현석규(淸湍 玄碩奎,1430~1480)가 국사 처리에 잘못이 많음에도
중신들이 말을 못할 때에 설파 김득인(雪坡 金得仁)은 상소로 극간하여 잘못하였음을 논고하니
성종은 그 뜻을 불쾌하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조판서겸 예빈시제조로서 연회를 주관하여 빈객을 접대하는데
검약(儉約)위주로 시행한 것을 두고
청단 현석규(淸湍 玄碩奎)가 왕에게 접대의 예를 소홀히하여
죄가가 있다고 고하여 호조판서직을 덜치게 되었다.
이후 면천현에 이르러 금의리(錦衣里)에 집터를 마련하고
당진 오도(鰲島)에 무덤을 지었다고 한다.
2년이 안되어 성종은 공의 공조판서로 등용하여
황해도 감찰사까지 맡겼는데 부임치 못하고 72세로 졸하였다.
이때 조야에서 선정비를 세웠다고 전하여진다.
김득인의 입향 경위는 유배왔다는 설,
관직에서 사퇴한 뒤 요양하기 위해 낙향하였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김득인의 부인이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에 집성촌을 이룬
신평이씨 판서공파 판서공 이상(李祥)의 따님이라
처가쪽으로 낙향하였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강릉김씨 당진입향조 설파 김득인 숭모비
충의효행의 귀감(龜鑑) 이땅의 큰선비
江陵金公雪坡得仁崇慕碑
강릉김공설파득인숭모비
공조판서 설파 김득인(雪坡 金得仁)
資憲大夫工曹判書 金公諱得仁之墓 配貞夫人新平李氏祔
자헌대부공조판서 김공휘득인지묘 배정부인신평이씨부
강릉김씨 공조판서 설파 김득인(雪坡 金得仁) 묘역후경
//강릉김씨 공조판서 설파 김득인(雪坡 金得仁) 가계//
증조부 판사 김광병(金光丙)
조부 판사 김덕손(金德孫)
부친 지중추부사 김효렴(金孝廉)
모친 정부인 능성구씨, 판서 구의(具儀)의 따님
동생 호조판서 김득의(金得義)
동생 참의 김득례(金得禮)
공조판서 설파 김득인(雪坡 金得仁,1423~1494)
배위 정부인 신평이씨, 판서 이상(李祥)의 따님
장남 충청병마사 김봉원(金奉元),무과
차남 칠곡부사 김봉선(金奉先),무과
삼남 병마절도사 벽동군수 김봉증(金奉曾),무과
손자 철원방어사 병마절도사 김수(金琇)
증손자 승정원우승지 김희정(金希汀)
현손 생원 김호(金虎)
5대손 군자감정 김응추(金應秋)
5대손 이조참의 김우추(金遇秋), 출계 숙부 김표(金彪)
현손 봉사 증 예조판서 김표(金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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