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은보 서즐 정려각(尹殷保, 徐騭 旌閭閣)
장반곡 윤절효 서남계 삼선생 유허비(張盤谷 尹節孝 徐南溪 三先生 遺墟碑)
옥계 노진 선정비(玉溪 盧禛 善政碑)
경북 김천시 지례면 교리 산68-1

양효위사 윤은보 서즐 정려각(兩孝爲師 尹殷保 徐騭 旌閭閣)
윤은보 서즐 정려각은 지례면 교리 마을 입구에 자리한
김천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정려각으로
고려말 향리로 낙향해 후학을 양성한
장지도와 윤은보, 서즐 등 사제지간인 세 사람의 효행이 담긴 정려각이다.

조선 전기 양효위사(兩孝爲師) 윤은보와 서즐의 정려각.
고려가 망한 후 지례에 낙향해 제자들을 가르치던 반곡 장지도(張志道)에게는
절효(節孝) 윤은보(尹殷保)와 남계 서즐(南渓 徐騭)이라는 각별한 두 제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늘
“우리를 낳은 분은 우리 부모이지만, 우리를 세상에 사람답게 길러준 분은 선생님이시다.
아들 없는 선생님을 우리가 모시지 않으면 어찌 사람이라 하겠는가.”
하며 앞다투어 스승을 모셨다.
두 효자는 스승이 돌아가시자 부모에게 허락을 얻어
친아들의 예로써 3년간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사는 시묘살이를 했다.
윤은보는 시묘 중 부친이 병석에 눕자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서 돌아갔는데
아버지를 간호함에 잠시도 허리띠를 풀지 않고 정성을 다했다.
다행히 아버지의 병환에 차도가 있자 다시 스승의 묘소로 달려가 시묘를 했다.
끝내 부친이 세상을 뜨자 부친 묘에 시묘하면서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에는 스승의 묘를 찾았다.
아버지 산소 옆에서 시묘살이를 하던 중
하루는 돌풍이 불어 제상에 놓여 있던 향합(香盒)이 날아갔다.
자기의 정성이 부족하여 향합이 날아가 버렸다고
더욱 부끄러워하며 지성을 다해 시묘살이를 계속하였다.
몇 개월이 지난 후 까마귀가 향합을 물어다 묘 앞에 던져주어
효자의 지성에 까마귀조차 감동했다고 주위에서 감탄했다 한다.
서즐은 3년을 스승의 시묘에 정성을 다했는데
스승의 대상(大祥)[2년째 제삿날]일에 폭설로 길이 막혀 제수를 차리지 못하게 되자
불효를 통탄하고 통곡하니 호랑이가 노루를 몰고 와
제수를 장만하게 되었다는 설이 전해질 만큼 스승에 대해 효를 다했다.
이후 서즐이 부모의 상을 당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6년간 시묘살이를 하니
사람들이 두 사람을 하늘이 낸 효자라 하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1432년(세종 14)에 정려(旌閭)가 내렸다.
김천에서 가장 오래된 정려각으로 고쳐 짓기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節孝爲師厚陵參奉尹殷保門 世宗壬子銘 旌閭
절효위사후릉참봉윤은보문 세종임자명 정려
파평인 참봉 절효 윤은보(節孝 尹殷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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節孝爲師司涓 徐騭之門 世宗壬子銘 旌閭
절효위사사연 서즐지문 세종임자명 정려
이천인 남계 서즐(南溪 徐騭)

旌閭重修後擖板文
정려중수후갈판문

節孝門重修記
절효문중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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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생 유허비와 옥계 노진 선정비

張盤谷 尹節孝 徐南溪 三先生遺墟碑
장반곡 윤절효 서남계 삼선생유허비
조부 보승랑장 장표(張彪,1349~ ?)
백부 현감 장을제(張乙濟)
중부 장을하(張乙河)
중부 운봉현감 장을해(張乙海)
부친 청하현감 장을포(張乙浦)
옥산인 반곡 장지도(盤谷 張志道,1371~ )
고조부 파평부원군 윤호(尹虎)
부친 윤시조(尹時祖)
파평인 참봉 절효 윤은보(節孝 尹殷保)
조부 문하시랑평장사 서윤(徐玧)
부친 원주목사 서강(徐强)
이천인 남계 서즐(南溪 徐騭)

정려각 옆으로는
張盤谷尹節孝徐南溪三先生遺墟碑
장반곡윤절효서남계삼선생유허비 라 새겨진 비석이 있다.
옥산장씨 반곡 장지도(盤谷 張志道)는 보승랑장 장표(張彪,1349~ ?) 의 손자이며,
청하현감 장을포(張乙浦) 의 아들로 1371년(고려 공민왕 20년) 지례 거물리에서 태어났다.
문과에 급제한 후 고려조정에서 기거주지의주사(起居注知宜州事),
조선 건국 초에 종4품의 소감(少監)직에 올랐으나 태종 조에 이르러 골육상잔의 참극을 목격한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향 후 자신의 심경을 노래한 시가 전한다.
“천년 반곡은 평평한 방안 같고 깎아지른 앞산은 석성을 이루었네.
예부터 몇 집이나 대를 이어 살아왔던가? 오늘에 이르러 열 집이나 관직을 얻었네.
처마 밑 드리운 감과 밤은 산중의 진미요, 문에 걸린 구름은 세상의 인정을 잊게 하네.
출세하다 버림받음을 원망하지 마라. 편안하고 한가한 손님이 자연과 친구가 되었지 않은가.”
이 시를 통해서 볼 때 장지도는 조선왕조에 종사할 뜻이 없으며
과감히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낙향해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겠다는 불사이군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장지도(張志道)는 향리인 거물리 반곡(바람실)에 서당을 열고
제자들을 길러내 지례현의 향풍을 쇄신하고 문풍을 진작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특히 제자들 중에서 윤은보(尹殷保)와 서즐(徐騭)의 학문이 출중했는데
두 사람은 아들이 없는 스승 장지도를 위해 어버이의 예로서 봉양해
훗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은보감오(殷保感烏)’라는 제목으로 그 효의 행적이 수록돼 지례의 명성을 드높인다.
다음은 ‘삼강행실도’에 실린 장지도와 윤은보, 서즐의 행적이다.
知禮縣人尹殷保, 徐騭, 俱學於同縣知宜州事張祉, 一日相謂曰,“人生於三, 事之如一, 況吾師無子可養乎?” 得異味輒饋 每遇良辰, 必具酒饌, 如事父然. 張沒, 二人請廬墓於其親, 親憐而聽之. 乃玄冠腰絰, 居墓傍. 躬爨供奠, 尹父嘗病, 卽歸奉藥, 依不解帶, 父愈, 令復師廬. 月餘尹感異夢, 亟歸則父果異夢夕病作, 未旬而死. 尹晨夕號哭, 不離喪側, 旣葬, 廬父墳. 一日飄風暴起, 失案上香盒, 數月有烏銜物, 飛來置塋前, 人就視之, 卽所失案上盒也. 至朔望酋奠張墳, 徐終三年, 宣德壬子, 事聞, 殷保 騭, 竝命旌門拜官

지례현의 윤은보와 서즐은 같은 고을 지의주사 벼슬을 한 장지도에게 배웠다.
하루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람으로 태어나 임금과 어버이와 스승은 섬기기를 하나같이 하라 했는데
우리 스승이 아들이 없으니 우리가 봉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문득 맛있는 것이 생기면 스승에게 먼저 드리고 명절이면 술과 반찬을 준비해 어버이와 같이 섬겼다.
장지도가 돌아가자 두 사람은 아버지에게 여묘살이 할 것을 청하니 아버지는 가련하게 여겨 허락했다.
이내 상복을 입고 묘 옆에서 살면서 몸소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윤은보의 아버지가 병이 드니 곧 돌아가 약을 올렸는데 이때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한달여가 지나서 윤은보가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급히 집에 돌아가 보니 아버지가 병이 들어 열흘이 되지 않아 별세했다.
윤은보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곡을 하면서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장례를 치른 후 아버지 무덤에 여막을 지었다.
하루는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더니 향로가 날라 갔다.
몇 개월 뒤에 까마귀가 무엇을 물고 날아와 무덤 앞에 두었는데 살펴보니 잃어버린 향합이었다.
삭망이 돼 장지도는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서즐도 3년상을 마쳤다.




縣監盧公禛善政碑
현감노공진선정비
풍천인 예조판서 문효공 옥계 노진(文孝公 玉溪 盧禛,1518~1578)



郡守李侯根榮淸德善政碑
군수이후근영청덕선정비
군수 이근영(李根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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