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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대사간 덕은군 삼락재 송응개(德殷君 三樂齋 宋應漑)

구름에 달

by 碧巖 2026. 1. 1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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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송씨 대사간 삼락재 송응개(三樂齋 宋應漑)

대전시 동구 주산동 산 25-6

대사간 덕은군 삼락재 송응개(德殷君 三樂齋 宋應漑,1536~1588)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공부(公溥). 호는 삼락재(三樂齋),

안동부사 송여해(宋汝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부서윤 송세충(宋世忠)이고,

아버지는 우참찬 송기수(宋麒壽)이다. 어머니는 대사헌 채침(蔡忱)의 따님이다.

1555년(명종10) 식년시에 생원으로 급제하였고, 1564년 29세에 식년 문과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5년(명종 20) 홍문관의 정자와 저작을 거쳐서 홍문관의 박사,부수찬,

사간원정언을 지내고, 예조정랑으로 『명종실록(明宗實錄)』 찬수에 참여하였다.

1570년(선조 3) 홍문관교리가 된 뒤,

1573년 함경도에 재상어사(災傷御史)로 파견되었다.

이 때 덕원부사 죽계 안상(竹溪 安瑺,1511~1579 이후) 등이

무죄인데 파직시켰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사헌부장령이 되고, 시강관(侍講官), 홍문관의 부응교와 부교리,

사간원의 사간과 집의, 홍문관응교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579년 승지로서 소위 이수(李銖)의 옥사에서

이를 석방하라는 왕의 명령을 철회할 것을 청하다가 다시 파직당하였다.

1583년 대사간이 된 뒤, 동·서 분당(分黨) 이후에는 동인의 중진으로서 활약하였다.

이 때 헌납 춘호 유영경(春湖 柳永慶,1550~1608), 정언 월호 정숙남(月湖 鄭淑男,1541~1599),

도승지 망일재 박근원(望日齋 朴謹元,1525~1585),

성균관전적 하곡 허봉(荷谷 許篈,1551~1588)과 함께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를 탄핵하다가 장흥부사로 좌천되고, 다시 회령에 유배되었다.

 

강계(江界)와 갑산(甲山)에 귀양간 박근원(朴謹元)과 허봉(許篈)과 더불어

세칭 계미삼찬(癸未三竄)이라 하였다.

이 때 중봉 조헌(重峯 趙憲,1544~1592)을 비롯하여

전라도와 해주 등지의 유생들로부터 맹렬한 배척을 받았다.

1585년 영의정 소재 노수신(蘇齋 盧守愼,1515~1590)의 상소로 풀려났다.

有明朝鮮通政大夫 司諫院大司諫 宋公諱應漑之墓

유명조선통정대부  사간원대사간  송공휘응개지묘

有明朝鮮 大司諫宋公墓碣文

유명조선 대사간송공묘갈문

孔巖 許穆撰  西原後學 韓耆東謹書  十一代孫 宋昌運 謹篆

공암 허목 찬   서원후학  한기동 근서   십일대손 송창운 근전

덕은군 삼락재 송응개(德殷君 三樂齋 宋應漑) 묘역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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