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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주목사 왕희걸(王希傑),왕시걸(王時傑),문화현령 왕빈(王濱),조봉대부 왕경상(王景祥),영광군수 왕경조(王景祚)

구름에 달

by 碧巖 2026. 3. 3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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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목사 왕희걸(王希傑), 왕시걸(王時傑)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천등리 산68-1

 

의주목사 왕희걸(王希傑), 의주목사 왕시걸(王時傑)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사웅(士雄). 일명 시걸(時傑)이라고도 한다.

증조는 왕지덕(王地德)이고, 할아버지는 왕종의(王宗義)이며, 아버지는 경흥도호부사 왕무(王懋)이다.

1534년(중종 29)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을 거쳐 1545년(명종 즉위) 홍문관정자가 되었으며

1546년(명종,1534~1567) 경성판관,

1550년 비변사 낭청이 되었다.

1551년 자산군수(慈山)가 되었고, 사인과 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을사사화가 일어나기 전인 1551년(명종6)에 함경도어사로 나가 있으면서

장계를 올려 봉은사(奉恩寺)의 주지를 지낸 보우(普雨)가

황해도 안변의 황룡사(黃龍寺)와 석왕사(釋王寺) 등지를 옮겨 다니면서

계림군 이유(桂林君 李瑠,1502~1545)를 숨겨주었다고 하였다.

 

당시에는 조작한 말이라고 무시되었으나,

뒤에 중종(中宗,1488~1544)의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1501~1565)가 죽고

조정 내부에서 배불의 상소가 잇따라 있게 되자,

이때의 장계가 보우(普雨)의 승직을 삭탈시키는 데 큰 구실이 되었다.

일찍이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2~1571), 소재 노수신(穌齋 盧守愼,1515~1590),

인재 홍섬(忍齋 洪暹,1504~1585) 등 당대의 명유와 교유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났다고 한다.

통정대부의주목사 왕공휘희걸지묘

숙부인남양홍씨  숙부인용인이씨  숙부인경주이씨 

의주목사 왕희걸(王希傑) 묘역후경

 

 

 

 

조봉대부 개성왕공휘경상지묘

배영인남양홍씨  영인남원양씨부

 

영광군수 개성왕공휘경조지묘 배숙인창녕조씨부

 

 

//개성왕씨 의주목사 왕희걸(王希傑) 가계//

8대조 중대광 안정공 왕재(安靖公 王榟)

7대조 찬성사 개성군 충정공 왕복명(開城君 忠靖公 王福命)

6대조 중랑장 왕규질(王圭質)

5대조 교서감 왕미(王亹)

고조부 공조참의 왕효곤(王孝坤)

증조부 호조참판 왕지덕(王地德)

조부 사마시세마 왕종의(王宗義)

백부 사마시세마 왕서(王恕)

중부 왕민(王愍)

숙부 왕헌(王憲)

부친 경흥도호부사 왕무(王懋)

        의주목사 홍문관부제학 왕희걸(王希傑,1505~1553)

           자 문화현령 왕빈(王濱)

           배위 광주정씨, 정지(鄭祗)의 따님

                   손자 조봉대부 왕경상(王景祥)

                                         왕경록(王景祿)

                   손자 영광군수 왕경조(王景祚)

                   손자 고부군수 왕경우(王景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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