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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명빈 김씨(明嬪 金氏), 명빈묘(明嬪墓), 태종의 후궁

구름에 달

by 碧巖 2026. 6. 2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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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明嬪 金氏), 명빈묘(明嬪墓)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333-3

 

조선전기 제3대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明嬪 金氏)

조선 태종 17명의 후궁 중에 유일한 간택 후궁으로,

할아버지는 상락군 김묘(上洛君 金昴)이고

큰 아버지가 문온공 척약재 김구용(文溫公 惕若齋 金九容),

아버지는 돈녕부 판사를 지낸 안정공 김구덕(安靖公 金九德)이며,

어머니는 정부인 장숙택주 영월신씨로 판서 신경창(辛慶昌)의 따님이다.

남동생은 김오문(金五文)으로, 그의 딸이 문종의 세자시절 첫 번째 세자빈이었던 휘빈 김씨이다.

태종의 다른 후궁들과 달리 명빈(明嬪)은 슬하에 자녀가 없다.

가장 장수하여 1479년 성종 10년까지 내명부를 지켰다.

 

1411년(태종11) 태종은 '일빈이잉(一嬪二媵)'의 빈어 제도를 마련한 후,

김구덕의 딸을 빈(嬪)으로 삼고,

전 제학(提學) 노귀산(盧龜山)의 따님과

전 지성주사 김점(金漸)의 따님을 두 잉(媵)으로 삼았다.

안동김씨(金氏)를 봉하여, 명빈(明嬪)을 삼고,

장연노씨(盧氏)는 소혜궁주(昭惠宮主)를,

청도김씨(金氏)는 숙공궁주(淑恭宮主)를 삼았다.

                       《태종실록》 태종 11년 11월 20일

 

이때부터 후궁 제도가 완전히 정착하였다.

태종의 재위 연간에 유일하게 빈(嬪)의 지위에 있던 후궁이었고,

그녀의 거처를 가리켜 명빈전(明嬪殿)이라고 불렀다.

한편, 태종은 명빈 김씨에 대한 처우 때문에

교서교감(校書校勘)으로 있던 방문중(房文仲)의 상언을 받았다.

"정비(靜妃)와 명빈(明嬪)이 각각 양전(兩殿)을 설치하여,

빈(嬪)으로서 적비(嫡妃)와 나란하게 함은 신(臣)의 이해할 수 없는 첫째요,

궁중에 창기(娼妓)를 많이 불러들이는 것이 신의 이해할 수 없는 둘째요,

후궁을 총애하여 큰 집을 많이 지어서

'신전(新殿)'이라 칭함이 신의 이해할 수 없는 셋째입니다."

조정에서는 "방문중이 망령되게 두 중궁(中宮)을 두었다 하였으니 죄가 있다"고 하여

처벌하기를 주장하였다.

이에 방문중을 전옥서에 가두고 형조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

방문중의 말이 '망언'이라고 해도

당시 태종이 원경왕후와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며,

명빈 김씨의 존재가 중궁으로 비춰질 만큼 이례적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1479년(성종 10) 음력 6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명빈(明嬪)이 졸(卒)하였다. 승정원에 전교(傳敎)하기를,

"전례에 빈(嬪)이 졸하였을 때에 조회를 받았는가?" 하니,

좌승지 김승경(金升卿), 우승지 이경동(李瓊仝)이 아뢰기를,

"빈이 졸하였을 때에 예로는 조회를 정지한 일이 없었고,

다만 은정(恩情)의 정도를 보아서 후(厚)하게 하고 박(薄)하게 할 뿐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금일(今日)의 일이 후일(後日)의 예(例)가 될 것이다.

근일에 군신에게 조회받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마땅히 조회를 받을 것이다." 하고, 드디어 받았다.

빈은 태종(太宗)의 후궁 김씨(金氏)였다.

불심이 깊어 의빈 권씨 등과 함께 여러 사찰에 시주하고

불상 및 경전을 발원·조성하여 현재까지 남아있는 불교 문화재가 다수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은 보물 제1125호로

1432년(세종 14) 명빈 김씨의 발원으로 제작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종사에 있는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南陽州 水鐘寺 八角五層石塔)》은

보물 제1808호로 내부에 봉안된 31점의 불상이 해체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중 금동석가불좌상, 반가사유보살상, 지장보살좌상과 목조관음보살입상,

지장보살입상, 천왕상 6점의 불상이 명빈 김씨의 발원으로 제작되었다.

세조가 수종사를 중창하며 만들게 했다는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이 보물 제1808호로,

그 안에서 나온 출토유물들이 보물 제1789호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도 다수의 보물급 문화재를 소장하였다.

국보 제282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의 주요 시주자로 기록되어있다.

장수하여 생애 동안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의 아홉 임금을 거쳤다.

출생년도는 미상이지만, 당시에는 19세만 되도 노처녀 취급을 당했을 시기고

10대 중후반에 결혼하는 게 일반적이라, 80대 중반쯤에 사망한 게 추정한다고 한다.

묘비의 전면 明嬪金氏之墓 명빈김씨지묘

           후면 楊州面 成化己亥七月初七日

                   양주면 성화기해칠월초칠일=1479년

명빈김씨지묘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明嬪 金氏) 가계//

5대조 충렬공 상락공 김방경(上洛公 金方慶,1212~1300), 안동김씨 중시조

고조부 전법판서 상장군 김선(金愃)

증조부 평장사 양간공 김승택(良簡公 金承澤, ?~1358)

조부 평장사 상락군 김묘(上洛君 金昴)

조모 삼한국부인 여흥민씨, 대제학 문온공 급암 민사평(文溫公 及庵 閔思平)의 따님

백부 문온공 척약재 김구용(文溫公 惕若齋 金九容,1338~1384)

중부 내서사인 김제안(金齊顔)

부친 판돈녕부사 안정공 김구덕(安靖公 金九德)

모친 장숙택주 영월신씨(莊淑宅主), 판서 신경창(辛慶昌)의 따님

       동생 총절제사 김오문(金五文)

       명빈 김씨(明嬪 金氏, ?~1479) 태종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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