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쓰시마 번주 소가 묘소, 역대 대마도 도주 묘, 반쇼인,만송원(万松院)
국가지정 사적, 대마번주 소가묘소
국가지정사적, 대마번주 소가묘소 반쇼인
종의지(宗義智, 소 요시토시)
제 19대 대마도주(초대 쓰시마 번주)종의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협조함으로써 초대 쓰시마 번주가 되었다.
조선과는 항상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라는 유언을 남겼기에
이후 종의지의 후손들은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종의지의 묘역 앞에서 논의를 했다고 하며,
현재 일본에서는 제 1대 대마도주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종의지를 초대 쓰시마 번주로 기준 삼아 역사적 배경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대마도주 가문과 관련된 내용이 한국의 역사와 연관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종의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 1군에 속해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는데
지난 2015년도에 방영됐던 징비록에서도 잘 나타났듯이
종의지와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강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처형이 되었으나
종의지는 대마도주 가문이라는 사유와 조선과의 교섭 경험이 풍부하다는 이유를 들어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그리고 이후 종의지의 노력으로 조선과 일본의 국교가 재개되었으며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언급되는 1609년의 기유약조를 체결하는데 공을 세우게 되고
이로써 대마도는 조선과의 무역 권한을 다시금 손에 넣었다.
즉 제 19대 대마도주였던 종의지에 노력으로 대마도가 계속 번성하게 된 것일 것이다.
종의성(宗義成, 소 요시나리)
제 19대 대마도주(제 2대 쓰시마 번주)아버지였던 종의지의 뒤를 이어
제 20대 대마도주가 된 종의성(宗義成, 소 요시나리)은
대마도 내에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하게 다져나가는데 주력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였던 종의지의 명복을 빈다는 명분으로 반쇼인(万松院만송원)을 창건하고
이 반쇼인(万松院만송원)에 종(宗)씨 가문의 묘소를 보전하였는데
이는 임란과정에서 조선의 산하에 모셔져 있던 조선인의 조상을 모시는 묘소를 보고
이를 본따서 반쇼인(万松院만송원)을 조성하였을 확률이 제일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대마도 이즈하라의 반쇼인에는
제 10대 대마도주의 묘소부터
제 32대 대마도주의 묘소까지만 있다.
그러나 반쇼인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종의지의 묘가 가장작게 조성되어 있다.
반쇼인의 132개 돌계단
반쇼인에는 하쿠간기(百雁木)라고 불리는 132개의 돌계단이 있다.
이 계단을 지나면 제 10대부터 제 32대까지 역대 대마도주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