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안성-서운산 청룡사

碧巖 2016. 9. 8. 21:54
728x90


                             청룡사 입구의 사적비

경기도시도유형문화재 제124- 청룡사사적비(靑龍寺事蹟碑)

청룡사사적비 (靑龍寺事蹟碑)

사적비란 어떠한 사건에 관련된 사실이나 자취를 기록한 것이다.

청룡사 절내의 부도밭으로 가는 입구에 서 있는 이 비는 청룡사의 중수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1265) 명본국사가 대장암이라 이름지어 창건하였고,

공민왕 13(1364) 나옹왕사가 크게 중창(원래의 절을 고쳐 새롭게 함)하면서 절의 이름도 청룡사로 바꾸었다.


비는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인데,

특이하게도 지붕돌 귀퉁이마다 네마리의 용이 머리를 대고 서려 있는 모습이다.

비문에는 나옹화상이 절을 중창할 때의 일과,

그 뒤 조선 숙종 때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을 중건한 사실 등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 경종 원년(1721)에 세운 것이다.

 






.청룡사(靑龍寺)는 경기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28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절이며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의 서운산 자락에 있다.

선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원찰이었다.

 

고려 원종 6년인 1265년에 명본(明本)이 창건하여 대장암(大藏庵)이라고 부르다가,

공민왕 13년인 1364년에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고 이름을 청룡사로 개칭했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던 나옹화상

이 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고려 시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대웅전은 대한민국의 보물 제824호로 지정되어 있고,

대웅전 앞에 명본국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삼층석탑과 동종(銅鍾) 등 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조선 말기에는 교통의 요지인 안성장터를 중심으로 전국을 떠돌면서 공연을 하는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절 건너편에 남사당마을이 남아 있다.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과 김윤배의 장편 서사시 여사당 바우덕이는 청룡사 사당패를 소재로 하고 있다.

장길산에서 청룡사는 장길산의 스승인 운부대사가

미륵의 세상은 민중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혁명 사상을 설파하는 장소로 비중있게 등장하며,

청룡사 사당골의 여성 공연예술가인 바우덕이는 실존 인물로서 안성시가 바우덕이 축제를 열어 기리고 있다.


서운산 청룡사







보물 제1257- 청룡사영산회괘불탱(靑龍寺靈山會掛佛幀)


 청룡사영산회괘불탱

(靑龍寺靈山會掛佛幀)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괘불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제자 등이 에워싼 모습인데,

중앙의 석가불은 머리에서 빛이 나고

특이하게도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에 올린 시무외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관을 쓴 제석천, 면류관에 홀을 든 범천상, 책과 연꽃·정병 등을 들고 있는 6명의 보살 등이 석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석가 위로는 여러 제자들과 부처의 수호신인 4명의 금강역사상이 있고,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여러 불상들이 작게 그려져 있다.

주로 진한 붉은색과 청색이 많이 사용되었고 복잡한 구도로 인해 무거운 느낌이 들지만

윗부분에서 보여주는 화려함과 아랫부분의 무늬로 인해 여유있어 보인다.

이 그림은 효종 9(1658)에 승려화가인 명옥 등이 그린 것으로

본존의 크기가 매우 컸던 고려말조선초의 그림과는 달리

본존인 석가불이 작아져 상대적으로 주변 인물의 크기와 비슷해진 그림으로,

17세기 중엽 영산회상도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보물 제824- 안성청룡사대웅전(安城靑龍寺大雄殿)

청룡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건물로 추측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 윗몸에

연꽃과 연꽃봉오리를 화려하게 조각해 놓아 장식이 많이 섞인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인다.

기둥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목을 그대로 세운 것이 특징이다.

건물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으로 꾸몄다.

이 대웅전은 안쪽에 조선 헌종 15년(1674)에 만든 범종을 보관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건축 기법과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경기도시도유형문화재 제170- 안성청룡사금동관음보살좌상(安城靑龍寺金銅觀音菩薩坐像)

안성청룡사금동관음보살좌상

(安城靑龍寺金銅觀音菩薩坐像)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사는 고려 원종 6(1265) 명본대사가 창건하여 대장암(大藏庵)이라 하던 것을

공민왕 13(1364) 나옹왕사가 새롭게 고쳐지으면서 이름을 바꾼 사찰이다.

머리는 상투 모양으로 높게 묶은 후 양쪽 어깨로 몇 가닥씩 흘러내리게 하였다.

적당히 살이 올라있는 얼굴에는 눈··입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옷은 양 어깨에서 마치 깃처럼 한번씩 접혀진 상태로 자연스럽게 흘려내려 배 부분에서 큰 W자의 주름을 띠고 있다.

하체로 내려온 옷은 양 무릎을 감싸고 무릎 아래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점, 얼굴과 신체의 단아하고 사실적인 표현 등에서 고려 후기의 보살양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고개를 앞으로 숙인 자세, 단순화된 구슬 장식 등에서 조선 초기인 15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11-4- 사인비구제작동종-안성청룡사동종(思印比丘製作銅鍾-安城靑龍寺銅鍾)

전체높이129m, 밑지름89cm, 윗지름56cm, 두께7.5cm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에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새겨져 있다.

또한 종의 어깨와 아래 입구 부분에는 연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어깨 띠 아래에는 사각형 모양의 대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을 세웠다.

또한, 검은빛이 감도는 큰 종으로서 원래는 1674년에 종루의 종으로 만든 것이다.

현재도 매일 행해지는 예불의식 때마다 종을 치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종의 모양을 보면 소리를 좌우하는 음통(音筒)이 맨 위에 있고 그 옆에는 용 모양의 종을 거는 고리(용뉴)가 있다.

그 아래에 배가 불록한 포탄 모양의 종이 있다.

종신의 표면을 보면 위쪽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과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1줄씩 새기고

그 아래 사다리꼴로된 4개의 유곽(乳廓)이 있고

그 사이에는 연꽃 가지를 든 4구의 보살입상과 4개의 위패(位牌)가 한 쌍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같은 구성법은 17세기 전반기에 정통 승장계(僧匠系)장인들이 주로 썼던 방식이다.

이 종은 숙종 대에 활동했던 승장 사인(思印)30대 중반에

지준(智俊태행(太行도겸(道兼담연(淡衍청윤(淸允)과 함께 만든 통일신라 때부터 보이는 전통 계열의 종이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후기 종들 가운데서도 우수한 작품으로

17세기 범종의 연구와 승장들의 사회 및 사원경제구조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경기도문화재자료 제59- 청룡사삼층석탑(靑龍寺三層石塔)

靑龍寺三層石塔청룡사삼층석탑  

청룡사 앞뜰에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4장의 판돌을 세워 4면을 이루게 한 뒤, 판돌을 얹어 마무리하였는데,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과 지붕돌이 교대로 올려진 탑신부는 몸돌의 모서리에 기단에서와 같은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다.

몸돌의 크기는 2층에서부터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이로 인해 전체에 흐르던 비례감이 약간 흐트러지고 있다.

급한 경사를 이루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들려 가벼움을 실었으며,

윗면의 네 모서리선이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기단과 지붕돌 모서리의 일부가 깨져 나가고,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없어지긴 하였으나,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있는 탑으로, 고려시대의 석탑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의 중후한 원목기둥

청룡사 대웅전은 아름다움 자체만으로도 꼭 찾아보아야 할 가치가 있다.

사방 기둥을 모두 구불구불 휘어진 자연목으로 사용했는데

그 균형미와 굴곡의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눈을 붙잡는 건축물이다.

자연미 넘치는 건축계획과 치밀한 배치작업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웅전은 축대며 모든 것이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해서 서로 잘 어울린다.

그리고 바우덕이의 민중 연예예술의 극치와

청룡사 대웅전의 자연적이며 서민적인 아름다움은 상호 비교되며 연관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청룡사를 중창한 나옹화상의 예술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옹화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풍류시를 남긴 분이다.

스님의 이름은 잘 몰라도 시를 들어보기만 하면

 ! 그것!”이구나 할 만큼 매우 유명한 시 한 편 읊어보고 떠나보자.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 놓고 욕심도 벗어 놓고 / 강같이 구름 같이 말없이 가라 하네

나옹화상의 청산은 나를 보고










                                          괘불주


명부전


산신각

봉향각


관음전

청룡당/종무소







범종각


지봉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