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정렬공 기찬(貞烈公 奇襸),정견공 기대항(貞堅公 奇大恒),삼강공 기응세(三綱公 奇應世),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23호,기윤헌,기수발, 기수보,행주기씨
三綱公 贈領議政 奇應世 曾祖父 貞烈公 奇襸 墓所
삼강공 증영의정 기응세 증조부 정렬공 기찬 묘소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산48
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 經筵義禁府事 春秋館成均館事兩館大提學諡貞烈奇公之墓 贈貞夫人坡平尹氏祔左
증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 경연의금부사 춘추관성균관사양관대제학시정열기공지묘 증정부인파평윤씨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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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烈公 奇襸 後配位 贈 貞夫人安東金氏 墓所
정열공 기찬 후배위 증 정부인안동김씨 묘소
贈貞夫人安東金氏之墓
증정부인안동김씨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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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綱公 贈 領議政 奇應世 父親 貞堅公 奇大恒 墓所
삼강공 증 영의정 기응세 부친 정견공 기대항 묘소
奇大恒 기대항<1519(중종 14)∼1564(명종 1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행주(幸州). 字는 가구(可久).
축(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찬(襸)이고,
아버지는 응교 준(遵)이며,
어머니는 윤금손(尹金孫)의 딸이다.
1546년(명종 1)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청환직(淸宦職)을 두루 역임하고,
1551년 평안도암행어사로 나가 민폐를 살폈다.
이듬해 이조정랑을 거쳐 1553년 헌납이 되었다. 1554년 사간이 되고 이어 전한·직제학이 되었다.
1556년에는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용양위대호군에 임명되었다.
1559년(명종 13) 춘천부사로 나가 3년간 선정을 베푼 뒤 예조·호조참의, 우부승지,부호군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561년 대사간으로서 재변소(災變疏) 6조목을 올려,
경천(敬天)·법조(法祖)·무학(務學)·납간(納諫)·임현(任賢)·애민(愛民)에 힘쓸 것을 건의하였다.
1563년 부제학이 되었는데, 당시 권신이던 이량(李樑)이 사화를 일으켜 사류들을 숙청하려 하자,
심의겸(沈義謙) 등과 함께 이량의 죄상을 폭로하였다.
이때 李樑이량을 옹호하던 사헌부의 죄상도 함께 탄핵하여 이량을 강계로 귀양보내고
그 일파도 관직을 삭탈하는 한편, 새로 등용된 사림들을 옹호하였다.
이어 대사헌이 되고 이조참판을 거쳐, 1564년 공조참판·한성부판윤에 발탁되었다.
諡號는 정견(貞堅)이다.
資憲大夫漢城府判尹兼 同知經筵成均館事 贈諡貞堅公奇大恒之墓 貞夫人趙氏之墓
자헌대부한성부판윤겸 동지경연성균관사 증시정견공기대항지묘 정부인조씨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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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綱公 贈 領議政 奇應世 墓所
삼강공 증 영의정 기응세 묘소
奇應世기응세
배의인(配宜人) 선산임씨(善山林氏)와 쌍분(雙墳)으로 되어 있는 묘앞에는
폭 40cm, 두께 18cm, 높이 120cm의 대리석(大理石) 묘표(墓表)가 있는데
1586년 입석(立石)한 것으로 한호(韓護)가 글씨를 썼으며
약(約)10m 전방(前方)에 묘갈(墓碣)은 1606년 여름에 입석(立石)한 것으로
폭 54cn, 두께 18cm, 높이 140cm의 대리석(大理石)으로 신숙(申熟)이 찬(撰)하고
제자(題字)는 중국명필(中國名筆) 주지번(朱之蕃)이 썼고 세서(細書)는 석봉(石峯) 한호(韓護)가 썼다.
기응세는 조선시대 문신으로 자(字)는 경우(景遇), 본관(本貫)은 행주(幸州)이다.
복재(服齋) 기준(奇遵)의 손(孫)이요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낸 대항(大恒)의 장자(長子)이며
후(後)에 영의정(領議政)을 역임한 자헌(自獻)의 아버지다.
평소 효행(孝行)이 있어 선조조(宣祖朝)때 정려(旋閭)를 사(賜)했고 삼강록(三綱錄)에 책록(冊綠)되였다.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아들 자헌(自獻)의 공(功)으로
보조공신(補祚功臣) 대광보국(大匡輔國) 숭정대부(崇政大夫) 영의정(領議政)에 증직(贈職) 되었다.
시호(諡號)는 삼강(三綱)이다.
秉節校尉龍驤衛副司果奇應世之墓 宜人林氏之墓
병절교위용양위부사과기응세지묘 의인임씨지묘
追封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兼領 經筵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 奇應世之墓 追封貞敬夫人林氏祔
추봉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겸영 경연춘추관관상감사세자사 기응세지묘 추봉정경부인임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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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綱公 贈 領議政 奇應世 2男 安岳郡守 奇允獻 墓所
삼강공 증 영의정 기응세 2남 안악군수 기윤헌 묘소
奇允獻 기윤헌 1575(선조 8)∼1624(인조 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행주(幸州). 초명은 충헌(忠獻) 또는 내헌(乃獻), 字는 헌보(獻甫).
응교 준(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부윤(漢城府尹) 대항(大恒)이고,
아버지는 응세(應世)이며,
어머니는 우찬성(右贊成) 임백령(林百齡)의 딸이다.
형이 영의정을 지낸 자헌(自獻)이다.
현감으로 있다가 1605년(선조 38)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08년에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가 되고,
광해군 때는 공조좌랑·군기시정(軍器寺正)·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장령(掌令)·안악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617년(광해군 9)에 형인 영의정 자헌이 광해군의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론에 반대하여 유배될 때
형과 함께 관직을 삭탈당하고 남해로 유배되었고,
인목대비 폐비를 극렬하게 반대했던
오성대감, 권율장군의 사위인 이항복도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63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그 뒤 진사 이건원(李乾元)이 서궁폐출(西宮廢黜)에 반대한 이각(李覺)과 함께 처형하자고 주장하여
수차에 걸쳐 국문을 받았으나 뚜렷한 실증이 없어 방면되었다.
기윤헌은 남해로 유배가고, 열세살 많은 형인 영의정 기자헌은 홍원(洪原)·길주(吉州)로 귀양갔다.
그뒤 풀려나 강릉에 은거하였으나 인조반정 때 김유, 이귀 등이 인조반정에 가담할 것을 요청했으나
신하로서 왕을 폐할 수 없다 하여 거절했으며, 반정 뒤에도 인조가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오히려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제거할 때 동조하였다는 죄목으로
이해 7월 역모죄로 서울에 압송되어 중도부처 되었다.
그리고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난군과 내응하였다는 혐의로
온 집안이 추국을 받아 끝까지 불복하다가 억울하게 형이 먼저 죽고,
남해로 유배되었던 기윤헌 역시 이 사건과 관련되어 억울하게 임강(林茳)과 장살되었다.
奉正大夫安岳郡守幸州奇公允獻之墓 配淑人竹山朴氏祔
봉정대부안악군수행주기공윤헌지묘 배숙인죽산박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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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諫院正言 奇秀發, 漢城判官 奇秀實 묘소
사간원정언 기수발, 한성판관 기수보 묘소
朝奉大夫司諫院正言 幸州奇公秀發之墓 配恭人密陽朴氏祔
조봉대부사간원정언 행주기공수발지묘 배공인밀양박씨부
奇秀發 기수발
1596(선조 29)∼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행주(幸州). 字는 자산(子山).
이조참판 기대항(奇大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기응세(奇應世)이고,
아버지는 안악군수 기윤헌(奇允獻)이다.
1616년(광해군 8)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검열을 거쳐,
1621년에 예조좌랑,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난 직후
과거에 급제할 때에 답안지를 위조한 사실이 발각되어 국문을 받은 뒤 부처되었다.
그 뒤 김의민(金義敏)·이유림(李有林) 등의 역모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장살되었다.
漢城判官南隱奇公秀實之墓 配恭人海南尹氏合窆
한성판관남은기공수실지묘 배공인해남윤씨합폄
가계
5대조 정무공 기건(貞武公 奇虔)
고조부 기축(奇軸)
증조부 정열공 기찬(貞烈公 奇襸)
조부 기준(奇遵)
부친 한성판윤 정견공 기대항(貞堅公 奇大恒)
--- 기응세(奇應世)
자 기윤헌(奇允獻) - 형님 영의정 기자헌(奇自獻)
손자 기수발(奇秀發)
손자 기수보(奇秀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