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본-장도공 한치의(章悼公 韓致義) 청주한씨
장도공 한치의 (章悼公 韓致義)
세종 22년(1440) ∼ 성종 4년(1473).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산170. 네비 산본동 940
장도공 신도비
純誠佐理功臣資憲大夫 兵曹判書淸陽君 贈諡章悼韓公神道碑
순성좌리공신자헌대부 병조판서청양군 증시장도한공신도비
장도공 한치의(韓致義)는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字는 의지(誼之)이고 본관은 淸州이다.
좌의정 한확(韓確)의 아들이며
성종의 생모인 인수왕비(仁粹王妃; 후에 昭惠王后로 바꾸어 봉함)의 동생이다.
配位는 정부인 전의이씨로 군사공 이환전(郡事公 李桓全)의 따님으로
子는 2남 1녀로 청원군 한위(淸原君 韓偉), 평해공 한탁(平海公 韓倬)이다.
세조 1년(1445) 음보(蔭補)로 사정겸 상서사록사(尙瑞司錄事)가 되었고
이듬해 생원시에 등과하였다.
세조 5년(1459)에 통례원봉례랑을 거쳐 군기시부정을 역임하고,
1464년에는 안동대도호부사가 되었고
1467년에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선전관관 훈련원도정을 맡았다.
예종 즉위 후에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성종 1년(1470)에 동지중추부사, 한성부좌윤에 올라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71년 호조참판으로서 좌리공신 4등에 녹훈되고 청성군(淸城君)에 봉하여졌다가
다음해에 청양군(淸陽君)에 바꾸어 봉하여졌다.
공조참판으로 관직을 옮긴 후
1472년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이듬해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졸 하였다. 諡號는 장도(章悼)이다.
純誠佐理功臣資憲大夫兵曹判書淸陽君 諡章悼韓公致義 配貞夫人全義李氏祔 之墓
순성좌리공신자헌대부 병조판서청양군 시장도한공치의 배정부인전의이씨부 지묘
//장도공 한치의 가계//
부친 양절공 한학(襄節公 韓確)
청양군 장도공 한치의(淸陽君 章悼公 韓致義)
자 청원군 한위(淸原君 韓偉) , 평해군수 한탁(韓倬)
손자 충좌위부호군 한수도(韓守道)
증손호조참의 한항(韓亢), 한기(韓箕), 한규(韓奎), 한익(韓翼), 병조참의 한두(韓斗)
4대손 가선대부 호조참판 청녕군 한충남(淸寧君 韓忠男)
5대손 충좌위부사과 한영(韓瑩), 용양위부사과 한락(韓犖)
6대손 훈련원도정 청평군 한덕우(淸平君 韓德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