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제주-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 之地), 제주 상모리충혼비

碧巖 2018. 6. 17. 00:26
728x90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586-1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서귀포 대정읍 상모리의섯알오름에서 

1950년 8월 학살된 유해가 묻힌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원래는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 之地)였으나 지금은 백조일손지묘로 불리운다.

 

 

 

 

                             위령비慰靈碑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 중 일부가 묻힌 무덤.

당시 모슬포경찰서 관할 양곡 창고에는

예비검속으로 7월 초부터 붙잡혀온 347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1950820(77)밤중에 이들 중 250명 가량을 창고에서 끌어내어

해병대와 경찰들이 합동으로 섯알오름(송악산의 한 봉우리) 기슭에서

새벽 2시와 5시경에 61, 149명으로 나누어 총살을 하였다고 한다.

백조일손 희생자란 이 때 희생된 210250명 중

1957년에 발굴되어 현 묘역에 안장된 132명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2시경에 희생된 61구의 시신은 3(혹자는 6)

경찰의 눈을 피해 몰래 파내어 한림읍 갯거리오름 공동묘지에 안장하였지만

40명의 명단과 시신은 아직도 그 행방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총살당한 시신을 수습할 자유마저 빼앗긴 채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68개월만에 거의 형체도 알 수 없는 시신

149구의 유골을 수습하고 그 중 132구를 현재의 공동 묘역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시신 중 옷가지 등으로 구별할 수 있었던 경우는 가족들이 독자적으로 수습하였다고 한다.)

1960년에는 유족들이 묘비를 세워 '백조일손지묘'라 칭하고 뒷면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으며,

시신을 구별할 수 없었기에 '백 할아버지의 한 자손'이라는 뜻으로 명칭을 지었으며

그러나 1961, 5·16 쿠데타가 발생되고 강제철거를 겪었으나,

오늘날의 위령비는 1993년에 다시 제작한 것이며 부서진 비 조각은 땅에 묻혀 있다가

1999년에 발굴하여 현 위령비 옆에 전시해 놓고 있다.

 

 

충혼비忠魂碑

서귀포 대정읍 상모리 670

이 비는 6.25전쟁(1950.6.25.~1953.7.27.)당시

조국과 향토를 지키다가 장렬히 전사하고 순직한 사계리 출신 용사들의 넋을 기리고저

제주 사계리 재향군인회에서 19559월 안덕면 사계리 189-3번지에 건립한 것으로서,

1985안덕면 사계리 230번지로 이설되었다가, 1999년 현 위치로 옮기었다.

 

이곳 대정읍 사계리에는 19506.25 전쟁의 상흔속에서 

지역 주민간에도 동과 서로 나뉘어 서로를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다가

이슬속에 사라져간 서로 다른 영혼들이

위령비慰靈碑와 충혼비忠魂碑라는 이름아래  서로 이웃에서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