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예산-대의사大義祠, 송원 인한수(松園 印漢洙), 의사 장문환, 고덕만세공원,

碧巖 2018. 7. 2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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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고덕 대의사 전경

충남 예산군 고덕면 대천리 647-4,5,6,7

 

 

 

 

 

 

 

 

 

 

古德萬歲公園造成事蹟碑

고덕만세공원조성사적비

 

한내장4.3독립만세운동기념탑

 

 

 

 

 

송원 인한수 의사 현충비

 

義士印公漢洙顯忠止碑

의사인공한수현충지비

 

송원 인한수松園 印漢洙,

인한수(印漢洙, 1881120~ 191943)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교동(喬桐), ()는 송원(松園)이다.

1899년 대한제국 하급 관료에 천거되어

1909년까지 충청남도 홍성군, 예산군, 천안군, 아산군, 보령군, 당진군에서 부군수를 지냈고

관료 퇴임 이후 충청남도의 성리학 중급 대표 향반으로 충청남도 예산에서 훈도로 활동하였다.

 

일제 강점기 초 191943일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忠淸南道 禮山郡 古德面) 장날에

예산 고덕면 대천(大川) 장터에 모인 대한독립만세운동 시위 군중을 이끌고

대천교(大川橋) 옆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면서 시위대 선두에 서서 활동하였다.

그 때 일제 관헌과 일경들이 휘두른 총검으로 인하여 많은 군중이 부상되는 것을 보고

격분한 나머지 말을 타고 있던 일군 수비대장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끌어내려 내동댕이치자

말에서 떨어진 수비대장이 군도로 목을 가격하였고 그는 결국 그 자리에서 38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그후 1992년 인한수 의사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義士張文煥義擧紀念碑

의사장문환의거기념비

 

의사 장문환

33세의 일제 공주지방법원판결문의 한구절에

'왜 사람을 죽였느냐 살려내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모두 죽여라,

 191943일 의사는 만여 한내장 시민의 선두에서 격렬하게 조선독립만세를 외칠 때

왜 헌병이 이를 제지함에도 해산하지 않자 급기야 일본칼로 무참하게도 인한수(印漢洙) 의사를 살해하였다.

이에 격분한 장문환(張文煥)의사는

상궁리 윤독회원 李麟性이인성, 李尹洙이윤수, 白致三백치삼, 方贊容방찬용, 金昌洙김창수, 朴昌來박창래,

梁有石양유석, 鄭德信정덕신, 宋鉉孫송현손, 金致寬김치관, 田斗煥전두환, 張斗煥장두환, 吳敬淳오경순,

池秉喜지병희, 朴榮來박영래 등과 같이 시체를 높이 받든 그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주재소로 난입하여 가슴치며 절규한 소리다.

 

의사는 서기 1887130일 부친 장지식 모친 주병수의 二男으로 고덕면 상궁리에서 출생하였다.

1885년경

양촌에 온 블란서 신부 퀴를이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고 설파한 신학문에 크게 영향을 받은 의사는

유학의 고장 면천유학을 마치고 고향에서 서당을 개설하였으나

1918년 탄압 폐지되자 의사는 즉시 양촌 교회에서 청년 야학을 열고 윤독회를 조직하였다.

이 회원들이 4.3 한내장의 거의 주역이 되었다.

장문환 의사와 이인성은 검거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의사는 징역 16월의 실형을 받았고

이인성(李麟性)은 석방되었으나

두분 다 고문의 여독으로 그 후 6년을 넘기지 못하고 순국하였다.

의사는 199231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으시고

2003117일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배위 임정숙 여사와 같이 안장되시다

이는 우리가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기념비를 건립하고 기념행사를 갖은 소이이다. -기념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