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전등사,삼랑성종해루,서운대종사탑비,
강화전등사傳燈寺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고 했으나
1282년(충렬왕8) 충렬왕비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印奇)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玉燈)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전등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이 옥등은 전하지 않고 있다.
1337(충숙왕 6), 1341년(충혜왕 2)에 각각 중수되었다고 하나 당시의 기록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1605(선조 38), 1614년(광해군 6)에 일어난 2차례의 화재로 절의 건물들은 완전히 소실되었고,
1606년 4월부터 지경(志敬)이 중심이 되어 재건하기 시작해 7년 만인 1621년 2월에 완성되었다.
1678년(숙종 4)에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가 건립되면서 왕조실록 사찰로 왕실의 보호 아래에 있게 되었다.
이 사고장본(史庫藏本)은 1909년 서울로 옮겨져 조선총독부 분실(分室)에 보관되었다가
지금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707년에는 유수(留守) 황흠(黃欽)이 사각을 고쳐 짓고,
별관을 또 지어 취향당(翠香堂)이라 하고 보사권봉소(譜史權奉所)로 정했다.
그뒤에도 1749, 1839, 1855, 1871, 1876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래까지 대규모의 중수 불사가 이루어졌다.
이때 대조루(對潮樓)를 비롯해 양곡을 보관하는 정족창(鼎足倉)·
석량고(石糧庫) 등의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현재와 같은 대규모의 사찰이 되었다.
이 절의 후면에 있는 정족산의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하여 신성시된다.
경내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원건축인 대웅전(보물 제178호)·약사전(보물 제179호)을 비롯하여
명부전·삼성각·향로각·적묵당·강설당·범종각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중국 북송시대의 범종(보물 제393호)과
전등사의 말사인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된 조선시대의 법화경판(1544)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경판은 6·25전쟁 때 파주에 있었던 모부대에서 1매를 가져가 현재 104매만 남아 있다.
그밖에 거대한 청동수조(靑銅水槽)와 대웅전에서 사용했던 작은 옥등 등이 있다.
삼랑성 종해루
강화 삼랑성 (江華 三郞城)宗海樓종해루(사적 제130호)
정족산성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길이는 2,300m에 달하며 자연활석을 이용하여 축조된 성이다.
성 내에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3841)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전등사가 있으며
고려 고종 46년(1259)에는 이 성안에 궁궐(이궁)을 지었으나 현재는 무너지고 터만 남아 있다.
조선 현종 1년(1660) 마니산의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성 안에 있는 정족산사고로 옮기고,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다. 정족산사고지는 1998년 강화군에서 복원하였다.
조선 고종 3년 병인 양요시 양헌수장군이 이 성 남문과 동문으로 침입하는 프랑스군을 무찌른 전승지이며,
성내에는 양헌수 장군의 전승비가 서 있다.
이 성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이 있고 남문을 제외한 3개 문에는 문루가 없었다.
영조때에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였다 한다.
남문의 문루(종해루)가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76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서운대종사 탑비 및 부도
傳佛心燈扶宗樹敎總領禪風 二木堂瑞雲大宗師塔碑
전불심등부종수교총령선풍 이목당서운대종사탑비
二木堂瑞雲大宗師부도
이목당서운대종사부도
魯垠禪師之塔 印空堂大講伯之塔
노은선사지탑 인공당대강백지탑
강화 전등사 윤장대
보물 684호 예천 용문사 윤장대 (醴泉 龍門寺 輪藏臺)를 재현하여 제작한것으로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이다.
鎭撫中軍李公容儀愛恤僧徒永世不忘碑
진무중군이공용의애휼승도영세불망비
극락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