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171030-나는 왜 고지도에 빠지게 되었나? 혼일강리도는 나그네를 경이와 의문의 바다로 이끌었습니다"

碧巖 2018. 8. 2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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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고지도에 빠지게 되었나?

 

김선흥의 <고지도 천일 야화>"강리도는 나그네를 경이와 의문의 바다로 이끌었습니다"

김선흥 전 외교관 | 기사입력 2017/10/30 [09:45] 30

나그네(앞으로 필자를 이렇게 부름)는 왜 고지도에 빠지게 되었나?

 

나그네 STORY TELLER의 초상: 해남 달마산에서( 2017. 9)

 

우연히 어떤 지도와 눈이 맞은 것은 2005년 상하이에서였습니다.

그 해는 유별나게 중국이 환상적인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수백동안 망각의 강 속에 깊이 잠겨 있던 사람 하나를 중국인들이 불러냈기 때문이었죠.

그의 이름은 정화鄭和/郑和 /Zhèng Hé, 1371~ 1434’), 환관이자 이슬람 계통의 인물로 명나라 초의 대항해가.

정화의 항해 60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 국제 학술 회의, 중국 내외의 글과 책들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출처: 鄭和史詩/ 사진- 나그네의 서재

 

 

정화 항해도

 

 

출처: 鄭和史詩/ 사진- 나그네의 서재

 

잠깐, 15세기 초로 시간 이동을 해 보겠습니다. 명나라에서는 장대한 대항해의 서사시가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아름다웠던 역사의 한 장으로 회상하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아래 사진들이 그 때의 모습을 엿보게 해줍니다.

 

 

 

출처: 鄭和史詩/ 사진- 나그네의 서재/ 정화 함대 출항 모습

 

 

출처: 鄭和史詩/ 사진- 나그네의 서재

 

 

출처: 鄭和史詩/ 사진- 나그네의 서재/ 외국 사신이 아프리카 기린을 중국에 조공 바치는 모습

 

 

한편, 정화의 대항해를 전후하여 조선에서는 놀라운 세계지도가 만들어지고, 모사되고 있었습니다.

<강리도 疆里圖 Kangnido>라 불리는 지도인데 원제는 상당히 길고 난해하지요.

<混一疆里歷代國都之圖>. 이 긴 이름은 우선 잊어버리기로 하지요.


 

출처: 鄭和史詩/ 사진- 나그네의 서재

 

역사의 지평에 15세기의 장이 열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 . 한 두 나라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항해와 지도는 불가분의 관계지요. 바늘과 실처럼, 춘향이와 이도령처럼 말이예요.

때문에 중국의 정화 항해 600주년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조선의 <강리도>도 조명을 받게 됩니다.

 

 

 

영국인 칼 멘지스 저 <1421, 중국이 세계를 발견하다>,

강리도 설명에 많은 지면 할애, 내용에 오류가 섞여 있으나 강리도를 알리는 데에는 크게 공헌--

 

당시 상하이에서 지내고 있던 나그네는 우연히 정화 관련 책자를 들여다보다가 그만 <강리도>와 눈을 맞추고 만 것입니다

 이 지도는 세계 역사를 다시 쓰게하는 문헌이라고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웬 호들갑인가 싶었지요.

그런데 실제로 서양에서 근래에 나온 세계 역사서들 중에는

강리도를 등장시켜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것을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부를 여기 올려 보면,

 

 

나그네의 서재에서-

 

 

 

 

나그네의 서재에서-

 

<강리도>를 처음 접했을 때 맨 먼저 드는 의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정작 한국인인 나는 왜 여태 모르고 있었지? 우리 조상들이 남기 유산이라는데 말이야혹시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

강리도는 나그네를 경이와 의문의 바다로 이끌었습니다.

궁금증을 잠재울 수 없던 나그네는 틈틈이 국내외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였지요.

자연히 다른 고지도들도 들여다 보게 되었구요. 그렇게 10년이 훌쩍 지난 끝에 여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그네의 서재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외국에서는 강리도에 대해 많은 연구와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반면에 국내의 연구와 인식은 아주 빈약하여 충분히 개탄할만 합니다.

나라 밖의 연구와 평가마져도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있으니까요.

조화영 이화여대 교수는 이를 우리가 지적 태만에 빠져 있거나 세계사의 맥락을 잃어버린 탓이라고 한탄하더군요(언젠가 동아일보 칼럼에서),

 

 

나그네의 서재에서-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지요. 우리가 나서서 우리 문화재를 외국에 홍보, 선양하는 게 정상일텐데,

 <강리도>의 경우는 거꾸로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하긴 이런 말도 있긴 하더군요,.

墻內開花墻外香 장내개화장외향

담장 안에 핀 꽃, 담장 밖에 향기를 풍기네!

 

이제 담장 안에서도 그 향기를 맡아야 하지 않을까요?

 

 

 

 

나그네의 서재에서-

 

<고지도 천일 야화>는 학술이나 이론과는 가급적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그져 해설픈 이야기였으면 합니다.

이제 이야기의 바다로 항해를 떠나려 합니다.   정해진 항로도 운항 일정도 없이,

오직 바람의 힘으로. 바람 가득 안고 부풀어 오른 돛이 지금 출항을 재촉하고 있군요. 동승을 환영합니다.

김선흥은 누구?

외무공무원 출신인 김선흥씨는 1980년 제14회 외무고시에 합격 후 외무부에서 근무하다

1990년 주네덜란드 대한민국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본격적인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오사카 영사, 상하이 부총영사, 칭다오 총영사 등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는 김대중평화센터 사무총장으로 재직했으며 DJ정부 국제의전비서관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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