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흥해 권무정(勸武亭), 청덕사(淸德祠), 김영수 통제사, 구제기적비(九堤記蹟碑),유응환 선정거은비, 이응권 선정비
권무정(勸武亭)
포항시 북구 흥해읍 신흥로861번길 47-18
경포항시 북구 흥해읍 마산리 517
권무당기 / 김영수 통제사 친필 글씨
권무당기(勸武堂記) 번역문
옛날 택실(澤室)에서 무사를 선발하되 반드시 활쏘기를 하였으니
그 활쏘기는 육예(六藝:藝.樂.射.御.書.數)중의 일예(一藝)로서 군자(君子)의 덕행을 관찰하는 바라,
지금 사례(射禮)가 쇠(衰)하고 문무(文武)의 도(道)가 다르나 아직 옛것을 본 받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당연한즉 무릇 인재(人才)를 양육하여
그 재목을 달성하고자 하는 자는 가히 한쪽을 폐하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우리 고을이 바다를 낀 신령(神靈)한 지대로 권무(勸武)의 행정을
더욱 소홀히 못할 것이다. 불민한 내가 이 고을을 맡은 이래로 먼저 권학(勸學)을 염두에 두고 인재를 뽑아 학당에 모으고
장노(長老)에게 맡겨 일과(日課)를 가르치게 하고 세입을 감독하여 그 수요와 공급을 풍족하게 하니
삼자(三者)의 행정이 다사(多事)에게 저버리지 않았다. 이어 여가를 내어 관내의 무사들에 대한 사열(査閱)을 실시했던 결과
모두 재주는 성취 할만하나 자력으로 그 게으름을 이기지 못한지가 오래 되었다.
내가 이를 민망히 여겨 계획을 짜서 권장하게 하려니까 또한 무술을 익히는 장소가 있어야 뜻이 있는 자가 연습을 할것이며
시상제도가 있어야 재주있는 자가 분발할 것이므로 고을의 여러 인사(人士)들과 의논하여 동전 이백민(二百緡)을 협찬받아
하명자에게 명하여 각처의 사계(射契)에 보조후 원금은 보존하고 이식(利殖)을 납부토록 하여 매월 일차 궁술대회 때
그 이자 십민(十緡)으로 우수 무사에게 시상을 하도록 하고 또 그에 마땅한 준칙을 정한 후에
비로소 사당(弓道場)을 군성(郡城)의 남쪽 들에 세우니 권무당이 앞으로 백년 동안은 유지 될것이며
이자(利子)로서 매월 시상(施賞)을 하면 이로 인하여 이 고을 추향자(趨向者)의 의사에 부흥 할 것이다.
낙성식을 하던날 모든 궁사들을 모은 자리에서 내가 말하기를, 무술을 연마하여 성공을 거두는 것은 제군들의 몫이니 채찍을 않아도 노력하고
권함을 기다리지 말 것이다. 또 권해도 분발하지 않으면 이는 자포자기하는 자니 내가 어찌 꾸짖겠는가.
다만 무술이란 매우 소중한 것임을 인식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좋은 결과를 볼것인즉, 나는 오늘 이 일에 시작을 마련했을 따름이니,
제군들은 나의 이 작은 뜻을 깊히 자각하고 유종의 미를 거둔다면 후세 사람들의 바라봄이 있으리라.
김영수 삼도수군통제사 ‘중양제(重陽祭)’ 봉행
2018년 10월 17일 오전 8시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마산리 청덕사(淸德祠)에서
내빈을 비롯한 50여명의 유림 및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권무정(勸武亭)유림의 주관으로 김영수(金永綬) 삼도통제사를 기리는 232주기 중양제(重陽祭)를 엄숙히 봉행하였다.
청덕사는 영조 때에 목민관이었으며 당시 흥해군수를 지내신 김영수통제사를 주벽으로 모신 사당(祠堂)이며
뒤에 유응환(兪膺煥)군수의 위패를 우측에 배향하였다.
김영수통제사는 46세 되던 1761년(영조 37)에 흥해군수로 부임하였으나 잦은 왜구의 약탈로
백성들이 불안과 고통속에서 가난한 생활이 계속 이어지자 이에 대응하고자 권무당을 창설하고
고을 청년들을 모아 궁술교육을 실시하여 민병으로 육성, 관군과 함께 왜구로부터 흥해를 지켰다.
또한 당시 극심한 가뭄과 홍수를 극복하기 위해 9개소의 보(堡)와 제(堤)를 축성해 농민들에게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등
당시 김영수 군수의 활약으로 고을이 안정되면서 주민들은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김영수(金永綬, 1716~1786) 통제사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처음 이름은 영적(永績), 字는 중약(仲若)이다.
수안군사(遂安郡事)를 지낸 김칠양(金七陽)의 후손으로
의영고직장 김홍석(金弘錫)의 아들이며 조부는 청백리 안주목사(安州牧使) 김두남(金斗南)이다.
갑자무과(1744)와 병인중시(1746)를 거쳐 가선대부에 올랐다.
흥해군수(지금의 포항)와 김해부사, 전라우·좌수사를 거쳐
함경도병사, 제주목사, 충청도 병사를 역임하고 통제사에 부임하여 통영임소에서 순직 하였다.
부임지 마다 김영수 통제사를 기리는 백성들의 기록이 전하는데,
흥해에 ‘구제기적비(九堤記蹟碑)'
제주에 ’선정비(善政碑)‘ ’조천비(朝天碑)'
여수에 ’좌수영창설사적비(左水營創設事蹟碑)'
통영에 ’타루비(墮淚碑)' 등이 있으며
시서(詩書)에도 능해 각종 필적을 남겼으며
흥해에 ’권무당기(勸武堂記)‘
김해에 ’선유정(仙遊亭)‘과 ’선유대(仙遊臺)‘
제주에 ’환선대(喚仙臺)‘ 와 ’용연(龍淵)’
특히 제주도 관덕정의 ‘탐라형승(耽羅形勝)’ 과
통영 한산도 ‘제승당(制勝堂)’ 대자 현판 글씨는 압권이다.
통제사로 재임중 임소에서 순직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흥해 군민과 이 지역 궁사들이
그의 흥해군수 재임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청덕사라는 사당을 세우고 영정을 봉안하여
매년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제사를 지낸 후에 활 쏘는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날 제례 봉행은 흥해향교 최재락(崔在洛) 총무가 집례를 맡았으며,
초헌관에 권태흠(權泰欽) 포항시 북구청장이,
아헌관에 후손 안동김씨 군사공파 김준회(金俊會)씨가
종헌관에는 권무정 사두(射頭) 이상진(李相鎭)씨가 헌작을 올렸으며 이정희(李禎熙) 권무정 고문이 독축을 하였다.
참례자는 권태흠 북구청장과 박성대 흥해읍장, 최진수 부읍장, 박대영 흥해파출소장, 남상달 포항시궁도협회장,
이상진 권무정 사두(회장)를 비롯한 지역 유림 및 관계자 분들이 참석했고,
안동김씨 후손으로는 돈식. 승남. 장회. 준회,태영,재영,태철 등이 참석했으며
제사를 마치고 청덕사 뒤에 위치한 권무정으로 자리를 옮겨 음복을 겸한 아침식사를 하였다.
음복을 마친 후에는 2층으로 올라가 권무정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영수 군수의 친필 글씨 ‘권무당기(勸武堂記)’를 비롯한
권무정 상량문 등 각 종 현판들을 관람하며 문무를 겸전한 목민관 김영수의 업적을 기렸다.
김영수 흥해군수 구제기적비
興海九堤記積碑 흥해구제기적비
생민지본(生民之本)은 농업에 있고, 농사의 근본은 관개(灌漑)에 있으므로
백성을 위한 정사(政事)는 농사짓는데 이로운 보(洑)를 막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흥해 고을은 바닷가에 있어 읍이 윤택하고 농사는 많이 짓지만 수원(水源)이 달려 읍민들이 걱정하고 있었다.
영조 임오년(1762년) 통제사 김영수 공이 흥해군수로 부임한 후 11개의 보를 막으니
太平(태평), (?)洞(?동),枾木(시목),都(도),(?)재,예(?),城谷(성곡),小長生(소장생),大谷(대곡),南(?)(남?) 등이다.
군수 김 공이 보를 막을 때에 본인이 직접 현장에 나가 일을 시키면서 입을 옷과 신고 다니는 신발까지도
현장 가까운 곳에 가져다 놓고 기숙하면서 새벽 일찍 공사장에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며,
일하는 자 가운데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현전(縣錢)으로 상을 주며 쇠고기와 술대접을 해가면서
노고를 치하함에 마치 군대를 통솔하는 것 같이 하였고,
때로는 백성들이 여가를 가지도록 하여 가면서 일년에 보 11개소를 막았다.
농사를 다 지은 후에는 태평들에서 수세 100석을 거두어 살기 어려운 김상철(金尙喆) 등을 도와주고
10석은 민폐를 끼친 자에게 혜택을 주는 등 골고루 백성들에게 은혜를 미치게 하니
그의 공적은 보를 막는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금은 소장생보와 대곡보가 없어졌으나 당시 공적은 백성들이 칭송했었다.
공은 본디 안동사람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고을 수령으로 다니면서 백성과 나라를 위해 전력을 다한 기록이 뚜렷이 남아 있다.
그러다가 죄가 있다고 옥살이를 하게 되었으나
얼마 후 임금께 죄를 용서받아 통제사(統制使)를 제수 받았다고 한다.
그것은 곧 남을 속이지 않았으므로 임금에게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으리라.
이런 사실을 들어본 사람은 누구나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기를 원하지 않으리요.
애석하게도 당시 보를 막은 김 공은 벌써 늙어 버렸으니
흥해군수로 재직할 당시 보를 막은 업적은 거의 기록이 없어졌다.
그로부터 20년후에 백성들의 간청에 의하면
공적을 특서(特書)하여 성상(聖上)에게도 알리고 흥해 백성들에게도 고하는 도다.(원문생략)
김영수 흥해군수 구제기적비
군수 유응환 선정거은비
본 군수유공응환 선정거은비 해석 자료는 권무정 카페에서 발췌함.
군수 이응권 선정비
본 군수이공응권 선정비 해석 자료는 권무정 카페에서 발췌함.
역대 흥해군수 선정비,불망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