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화성-화의군파 사곡지파-서일종회和義君派寺谷支派瑞日宗會-원곡익초종회原谷益僬宗會

碧巖 2019. 5. 1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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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李氏和義君派寺谷支派  瑞日宗會, 原谷益僬宗會

전주이씨화의군파사곡지파  서일종회, 원곡익초종회

경기 화성시 마도면 청원리 53-4


  全州李氏和義君派寺谷支派瑞日宗會     全州李氏和義君派寺谷支派原谷益僬宗會

  전주이씨화의군파사곡지파서일종회     전주이씨화의군파사곡지파원곡익초종회


正心齋정심재



如在門여재문


慕先祠모선사





화의군和義君

1425(세종 7) ~ 미상

 

이름은 영(). 자는 양지(良之).

세종의 아홉째 아들로 어머니는 영빈강씨(令嬪姜氏)이다. 박중손(朴仲孫)의 사위다.

1433(세종 15) 화의군에 봉해지고, 1436년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441년부터 1449년 그리고 1455년소소한 부침이 있어 외방으로 부처되었다가

1456년 사면되었지만그 해 상왕(上王: 단종) 복위사건에 가담해

가산을 적몰당하고 고신을 회수당한 뒤 전라도 금산에 안치되었다.

1457년 순흥에 유배되어 있던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단종복위운동을 도모했다가 사사(賜死)되고,

영월에 방출된 노산군(魯山君: 단종)이 교살(絞殺)되자 이에 연루되었다.

 

1482(성종 13) 성종과 파천부원군(坡川府院君)윤사흔(尹士昕) 등의 노력으로 외방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1484년에는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유교(遺敎)에 따라 중앙과 지방 등 편리한 곳을 택해 살 수 있게 하였다.

 

그 뒤 선원록(璿源錄)에 이름만 오르고 관작이 삭제되었던 것을

1518(중종 13) 손자 이윤(李綸)의 요청으로 관작이 추복되고 자손도 종친록에 추록되었다.

품행은 문란했지만 절의가 있었고, 초서와 예서에 능하였다.

 

일찍이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세종대의 한글창제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훈민정음처의 감독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791(정조 15) 장릉(莊陵)에 배식단(配食壇)을 구축하면서

단종조의 충절이 인정되어 정단(正壇)에 배식되었다시호는 충경(忠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