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아산-공세리성당,牙山 貢稅里聖堂 ,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144호

碧巖 2019. 12. 14.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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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공세리성당

牙山 貢稅里聖堂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144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94


1890년 양촌성당 공세리 공소로 시작되었으며

18956월 양촌성당(陽村本堂, 구합덕성당의 전신)에서 분리 창설되었다.

공세리란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충청도 내포(內浦) 지역에 위치한 공세리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던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에 의해 복음이 전래되었다.

이 후 박해기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보존하던 이 지역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에는 양촌본당의 관할 아래 있다가

18956월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드비즈(Devise, 한국명 성일론,成一論) 신부가 공세리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드비즈 신부는 이미 매입한 10칸 정도의 기와집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꾸몄고,

18976월에는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공세창이 있던 일대를 매입한 다음,

1899년 그 자리에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1905년에는 조성학당(1927년 폐쇄)을 세워 교육 사업에도 앞장서 공세리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편 1920년대 들어 신자수가 증가하자 기존의 성당으로는 늘어나는 신자들을 다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드비즈 신부는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지휘 감독하여

19229월에 현재의 고딕 양식의 서양식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1958년 초에는 9대 주임 이인하(李寅夏) 신부가  강당을 신축하였고,

19711월에는 13대 주임 김동욱(金東旭) 신부가 성당을 증축하고 별관을 완공하였다.
















                               福者 안드레아金大建殉敎百週年紀念碑

                               복자 안드레아김대건순교백주년기념비




삼십이위순교자현양비 신유(1801)병인(1866)박해 순교자

순교자묘지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1873년 병인박해 때까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처형된 공세리 부근의 순교자들을 모신 곳이다.

1825아산 지역에서 하 바르바라 처음 체포되어

투옥, 문초, 형벌 후 풀려나 곧 죽은 것을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곳의 지명이 공세리인 이유가 바로 이 공세리 성당이 있던 자리가

충청도에서 걷어들인 공세를 저장하던 창고가 있던 곳이기 때문이라 한다.







박씨순교자삼형제   박의서, 박원서, 박익서

공세리 성당에는 순교자 박씨 삼형제에 대한 이야기가 적힌 비석도 서 있었다.

박의서, 박원서, 박익서라는 삼형제가 살고 있었다.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기 1866년 병인년 이 세형제는 붙잡혀서 수원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이 때 박원서는 "내 평생 천주 공경함을 실답게 못하였는데 오늘 천주께서 나를 부르신다'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천주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만 하면 살려 보내주던 때인데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관청에서 고문을 받으면서도 천주학을 계속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60,45, 40세에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