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은율현감 조언국趙彦國, 한풍군(漢豐君)조안국趙安國
수군절도사 동추공 조현범(趙賢範)의 장남 은율현감 조언국(趙彦國)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산 135-1
通訓大夫行殷栗縣監 豐壤趙公彦國之墓 后配淑人完山李氏雙墳
통훈대부행은율현감 풍양조공언국지묘 후배숙인완산이씨쌍분
수군절도사 동추공 조현범(趙賢範)의 차남 함경남도병마절도사 한풍군 조안국(漢豐君 趙安國)
贈純忠補祚功臣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漢豐君行嘉善大夫咸鏡南道兵馬節度使
豐壤趙公安國之墓 贈貞敬夫人安東權氏雙墳
증순충보조공신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한풍군행가선대부함경남도병마절도사
풍양조공안국지묘 증정경부인안동권씨쌍분
한풍군 조안국 (漢豐君 趙安國)
1501년(연산군7)~1573년(선조6)
본관은 풍양(豊壤). 字는 국경(國卿).
아버지는 수군절도사 조현범(趙賢範)이며, 어머니는 파성군(坡城君) 윤찬(尹贊)의 따님이다.
전부인(前夫人) 여산송씨(礪山宋氏)는 일찍 졸하여 무후하고,
후부인(後夫人) 안동권씨는 생원 권세임(權世任)의 따님으로,
임진년 왜란중에 양주(楊州) 산골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그때의 나이가 82세였다.
아들 3명과 딸 1명을 두었다.
장남 휘 엄(儼)은 조졸로 자식이 없다.
차남 휘 간(侃)은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로 좌찬성을 추증받았다.
딸은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문정공(文貞公) 윤근수(尹根壽)에게 출가하였다.
삼남 휘 경(儆)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격파한 공으로 선무공신(宣武功臣)에 녹훈(錄勳)되고
풍양군(豐壤君)에 봉해졌으며 품계는 자헌대부(資憲大夫)이다.
부군과 선부군(先府君) 양세(兩世)가 증직을 받은 것은 풍양군 조경(漢豐君 趙儆)의 훈작(勳爵) 덕분이다.
조안국 (趙安國)은 24세인
1524년(중종19) 무과에 급제, 이듬해 선전관이 되고,
여러 차례 시사대회(試射大會) 또는 격구대회(擊毬大會)에서 우승하는 등 무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1535년(중종30) 문관직으로 발탁되어 동부승지를 지내고,
1548년(명종3) 광주목사(光州牧使)·종성부사 등으로 외보되었다.
1551년(명종6)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재직 중
사사(賜死)된 중종 때의 권신 김안로(金安老)에게 아부하였다는 탄핵으로 장단부사로 좌천되었으나,
1553년 관내의 도적을 일소한 공으로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전임되었다.
1555년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전라병사 겸방어사로
순변사 남치근(南致勤)과 함께 나주 일대에 침구한 왜적들을 소탕하였다.
뒤에 제2차 작전에서 적에게 허(虛)를 찔려 작전에 실패하자,
이로 인하여 관직을 박탈당한 채 녹도(鹿島)에 장류되었으나
1557년 장단부사에 다시 서용되고, 1561년(명종16) 함경남도병마절도사,
1567년(선조 즉위년) 경기도수군절도사를 거쳐 포도대장·오위장·부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조안국은 특출한 무예로 28세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종성부사가 되었을 때 아버지 조현범은 회령부사로 재직하여
육진(六鎭)을 부자가 지킨다는 명성이 한때 높았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