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강릉-강릉 오죽헌(江陵 烏竹軒), 율곡 이이(栗谷 李珥), 신사임당(申師任堂)

碧巖 2024. 1. 2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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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栗谷 李珥)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3139번길 24,  (죽헌동 177-4)

 

강릉 오죽헌(江陵 烏竹軒)----보물 제165호

오죽헌(烏竹軒)은 원래 조선 초기 강릉의 선비로

이조참판을 지낸 경호 최치운(鏡湖 崔致雲, 1390~1440)이 지은 것으로 전한다.

그의 아들로 대사헌과 형조참판을 지낸 수재 최응현(睡齋 崔應賢, 1428~1507) 대에서

둘째 사위인 이사온(李思溫, 신사임당의 외조부)에게 상속되었다가

이사온의 딸인 용인이씨(龍仁李氏, 1480~1569,신사임당의 어머니)가

평산인 신명화(申命和, 1476~1522)와 혼인하며 물려받았다.

이후 용인이씨(龍仁李氏, 1480~1569)는 외손인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와

권처균(權處均, 1541~1620)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며

그 중 오죽헌이 속하여 있는 고택은

묘소를 관리하는 조건으로 권처균(權處均)에게 상속되어 안동권씨의 소유가 되었다.

 

1975년 지역의 정화 사업시에 강릉시로 이관되었다.

경내에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사당인 문성사(文成祠)와 율곡기념관,

강릉시립박물관과 율곡인성교육관 등을 지으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오죽헌은 우리나라 가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5만원권과 5천원권 도안 인물인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7~1584)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사임당  빛의 일기

신사임당 초충도 화단(申師任堂 草蟲圖 花壇)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

                            見得思義견득사의

                            이득을 보거든 옳은것인가를 생각하라          덕수 이이 서(德水 李珥 書)

자경문(自警門)

자경문(自警文): 스스로를 경계하는 글

입지(立志)​ 성인이 되고자 쉼 없이 노력한다.

과언(寡言) 마음을 정하는 데는 먼저 말을 적게 한다.

정심(定心)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어들여 바르게 한다.

근독(謹獨) 매사에 공손하며 삼가고 조심한다.

독서(讀書) 족서, 공부에는 생각이 앞서야 한다.

금욕(禁慾) 재산과 명예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진성(盡誠) 해야 할 일이라면 정성을 다한다.

정의(正義) 천하 경영에 억울한 희생이 없어야 한다.

감화(感化) 아무리 포악한 사람이라도 감화시킨다.

수면(睡眠)​ 때가 아님 잠을 자는 것을 경계한다.

용공(用功)​ 수양과 공부는 서두르지 않고 계속한다.

율곡선생 유적 정화기념비

문성사(文成祠)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어제각(御製閣)이 있었으나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어제각을 서쪽으로 옮기고 문성사를 지었다.

문성(文成)은 인조 임금이 율곡에게 내린 시호(諡號)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政事)의 근본을 세웠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성사의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

강릉 오죽헌(江陵 烏竹軒)-몽룡실(夢龍室) --보물 제165호

조선 초기에 지어진 별당 건물로,

당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주택이다.

이 건물은 주심포양식(柱心包樣式)에서

익공양식(翼工樣式)으로 변해 가는 건축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아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왼쪽 마루방은 율곡이 여섯 살 때까지 공부하던 곳이며,

오른쪽 온돌방은 1536년 신사임당이 용(龍)이 문머리에 서려 있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은 곳이다.

몽룡실(夢龍室)이라고 부르는 이 온돌방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擊蒙要訣)중에서

                                                          非禮勿視

                                                          비예물시===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非禮勿聽

                                                          비예물청===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非禮勿言

                                                          비예물언===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非禮勿動

                                                          비예물동===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할 것이니

                                                                 四者修身之要旨

                                                                 사자수신지요지===이 네 가지는 몸을 닦는 요점이다.

율곡송(栗谷松)

소나무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군자(君子) 식물이다.

곧은 덕과 굳센 절개에 대하여 옛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율곡 선생은 우송당기(友松堂記)에서

“이 소나무의 기이한 형상을 보니 천공(天功)의 오묘한 조화를 빼앗았다.

한참을 바라보노라면 청아한 운치를 느낄 것이다.

소나무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데 어찌 사란이 즐길 줄 모르는가!” 라고 했다.

사임당 배롱나무(師任堂 木百日紅)

강릉시의 시화(市花)로 꽃피는 기간이

100일이나 된다고 하여 백일홍(百日紅)이라고도 한다.

이 배롱나무는 고사한 원줄기에서 돋아난 새싹이 자란 것으로 나이가 600살이 넘는다.

신사임당과 율곡 모자(母子)가 어루만졌을 이 배롱나무는

율곡송(栗谷松)과 함께 오늘날 오죽헌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강릉 오죽헌(江陵 烏竹軒)-보물 제165호

조선 초기에 지어진 별당 건물로, 당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주택이다.

이 건물은 주심포양식(柱心包樣式)에서 익공양식(翼工樣式)으로 변해 가는

건축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아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왼쪽 마루방은 율곡이 여섯 살 때까지 공부하던 곳이며,

오른쪽 온돌방은 1536년 신사임당이 용(龍)이 문머리에 서려 있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은 곳이다.

몽룡실(夢龍室)이라고 부르는 이 온돌방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강릉 오죽헌 율곡매(江陵 烏竹軒 栗谷梅)

이 나무는 세종22년(1440년)경에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崔致雲)이 오죽헌을 건립하고 별당 후원에 심었다고 하며,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이 직접 가꾸었다고 한다.

사임당은 여러 매화그림을 그렸고

맏딸의 이름을 매창(梅窓)이라고 지을 만큼 매화를 사랑하였다.

율곡매는 꽃 색깔이 연분홍인 홍매 종류이며,

열매는 다른 나무에 비하여 훨씬 알이 굵은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