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하동 옥산서원(河東 玉山書院), 문충공 포은 정몽주(文忠公 圃隱 鄭夢周), 옥봉 정대순(玉峰 鄭大淳),
하동 옥산서원(河東 玉山書院)
경남 하동군 옥종면 옥산서원길 61-7 (정수리 176-1)
문충공 포은 정몽주(文忠公 圃隱 鄭夢周), 처사 옥봉 정대순(玉峰 鄭大淳)
하동 옥산서원 진행문(真行門)
하동 옥산서원(河東 玉山書院)
조선시대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몽주(鄭夢周)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68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1칸의 영각(影閣), 10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3칸의 장판각(藏版閣),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7칸의 주사(厨舍) 등이 있다.
묘우에는 정몽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영각에는 정몽주의 영정이 소장되어 있다.
옥산서원(玉山書院) --- 옥산재(玉山齋) ---흥도당(興道堂)
옥산재(玉山齋)
흥도당(興道堂)
하동 옥산서원 장판각(藏板閣)
하동 옥산서원 내삼문 광계문(光啓門)
하동 옥산서원 문충사(文忠祠)
포은선생영당(圃隱先生影堂)
玉峰先生迎日鄭公事蹟碑
옥봉선생영일정공사적비
==========================================================================
처사 옥봉 정대순(玉峰 鄭大淳)의 배위 진주유씨 정려갹
學生烏川鄭大淳妻 節婦 晉陽柳氏之閭
학생오천정대순처 절부 진양유씨지려
鄭婦晉州柳氏褒節碑
정부진주유씨포절비
옥봉 정대순(玉峰 鄭大淳)은 영일정씨로
고려말 충신 문충공 포은 정몽주(文忠公 圃隱 鄭夢周,1337~1392)의 7대손이다.
옥봉 (玉峰)선생은 임진왜란시 가재를 털어 창의하였고
진주성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모산 최기필(茅山 崔琦弼, ?~1593)을 도와 왜적과 싸웠으며,
임란 후에는 지역 유림들과 힘을 합쳐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을 주벽으로 하는
산청의 덕천서원(德川書院) 중건에 앞장섰다.
배위인 진주유씨는 임진왜란시 시천(矢川)으로 피난갔다가
왜적을 만나 팔뚝이 잘리는 단비(斷臂)를 하여 순절하였다.
이에 조정에 알려져 선조(宣祖)가 정려(旌閭)를 내렸다.
//영일정씨 옥봉 정대순(玉峰 鄭大淳) 가계//
7대조 문충공 포은 정몽주(文忠公 圃隱 鄭夢周,1337~1392)
6대조 첨지중추원사 정종성(鄭宗誠,1374~1442)
5대조 사헌부감찰 증 이조참의 설곡 정보(雪谷 鄭保)
고조부 증 형조참의 정윤관(鄭允寬)
증조부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정견(鄭堅)
조부 사포서별제 정세우(鄭世佑)
부친 사과 정기(鄭起)
모친 전의이씨, 이익남(李翼南)의 따님
처사 옥봉 정대순(玉峰 鄭大淳,1552명종7~1630인조3), 옥봉취선(玉峰醉仙)정대순
배위 절부 진주유씨,
계배위 밀양손씨, 손경영(孫景英)의 따님
시양손(侍養孫) 정계(鄭枅), 생부 학포 정훤(鶴圃 鄭暄,1588~1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