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풍천인 남은 임향(藍隱 任珦)
풍천임씨 고려정승 남은 임향(藍隱 任珦)
충남 보령시 웅천읍 평리 산 36-3
이 다리를 건너서~~~
풍천 임씨의 시조는 임온(任溫)으로 관작이 은자광록대부에 이르렀다.
고려시대 충렬왕 때, 그의 6대손 임주(任澍)가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에 들어와 살았기에 황해도 풍천에 사적(賜籍)된 것으로 전해진다.
임주(任澍)는 고려 충렬왕 때 경상도안찰사(慶尙道按察使),
조봉대부(朝奉大夫), 감문위대장군(監門衛大將軍)을 역임하였다.
풍천 임씨의 성장은 임온(任溫)의 5대손인
임주(任澍)에서 부터라는 것은 대체로 일치한다.
임주의 아들 대에서
삼사판사(三司判事) 임자송(任子松)과
민부전서(民部典書) 임자순(任子順)이 나와 두 파로 나뉜다.
임자송은 백파/부원군파(伯派/府院君派)의 시조가 되고
임자순은 중파/전서공파(仲派/典書公派)의 시조가 되었다.
정승 임향(任珦)
어사대부 임주(任澍)의 손자이며 민부전서(民部典書) 임자순(任字順)의 큰아들로
고려말(高麗末)에 장령(掌令)을 거쳐 정승(政丞)에 이르렀다.
신돈이 정권을 잡고 나라가 어지러움에 왕에게 직동(直諌)을 하다가
홍주, 고두도, 남포, 죽도(竹島) 등에 유배되었다.
조선 개국 후에도 웅치(熊峙) 오상동에 은거하였고
묘는 남포현(現 웅천면 평리) 양각산에 있다.
아들로는 임안길(任安吉), 임효곤(任孝崑)을 두었다.
高麗政丞任公之墓고려정승임공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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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인 고려 정승 남은 임향(藍隱 任珦) 신도비
충남 보령시 웅천읍 평리 621
풍천인 경연관 전재 임헌회(全齋 任憲晦,1811~1876) 찬
완산인 우찬성 이용원(李容元) 서
양주인 대사성 조중엽(趙重燁) 전
高麗政丞任公神道碑銘
고려정승임공신도비명
通訓大夫司憲府執義兼 經筵官傍裔 憲晦撰
통훈대부사헌부집의겸 경연관방예 헌회찬
崇祿大夫前議政府右贊成 完山李容元書
숭록대부전의정부우찬성 완산이용원서
通政大夫行吏曹參議 原任成均館大司成 楊州趙重燁篆
통정대부행이조참의 원임성균관대사성 양주조중엽전
//풍천임씨 전서공파 정승 임향(任珦) 가계//
7대조 시조 광록대부 임온(任溫)
6대조 임가규(任可珪)
5대조 상의봉경 임비(任備)
고조부 대장군 임도(任徒)
증조부 풍해군 임천유(豊海君 任天裕)
조부 감군위대장군 임주(任澍)
부친 민부전서 화재 임자순(和齋 任子順), 중파 전서공파 시조
모친 정부인 사천목씨, 직제학 목준평(睦俊平)의 따님
동생 원사부좌사윤 임진(任瑨)
정승 임향(任珦) 정승공파
자 진사 임안길(任安吉)
손자 임준(任俊)
증손자 동지중추부사 임영지(任永智)
현손 첨지중추부사 임명신(任命新)
현손 송운 임응규(松雲 任應奎), 사명대사 유정(泗溟大師 惟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