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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행장기/서애류성룡 뇌사기/김찬선생행장기

구름에 달

by 碧巖 2015. 3.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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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 선생 뇌사기(西涯 柳成龍 誄詞記)

김찬행장기

1.西涯 柳成龍 誄詞

서애 류성룡 뇌사

서애 류성룡이 눌암 효헌공(김찬)의 죽음 소식을 듣고 보내온 애도의 글


萬曆庚子 冬至月 旬後

만력경자 동지월 순후

만력 경자 동짓달에 열흘이 지난 뒤에

友人豊山 柳成龍 聞亡友金判書 叔珎之喪 已一年矣

우인풍산 류성룡 문망우김판서 숙진지상 기일년의

친구인 풍산 류성룡이 김판서 숙진의 상이 이미 1년이 되었음을 듣고

路遠未能致隻雞 漬綿之奠

노원미능치척계 지면지전

길이멀어 능히 닭 한마리나 짠 비단의 부의라도 보내지 못함으로

今回龍宮 姜君霙之行 謹具哀詞 託寄于靈座而哭之曰

금회룡궁 강군영지행 근구애사 탁기우영좌이곡지왈

이제 회용궁 강군영의 가는길에 겨우 애사를 갖추어 맡겨 영전에 부치며 통곡하여 이르노라.


余愛君之淑美兮 早託契於蘭室 自靑陽而遊從 斯皓首而無斁 君崑玉之溫姿

여애군지숙미혜 조탁계어란실 자청양이유종 사호수이무두 군곤옥지온자

余山石之頑質 豈琢磨之敢近 偶臭味之相投 飮醇酎而心醉 每自失而懷羞

여산석지완질 기탁마지감근 우취미지상투 음순주이심취 매자실이회수

外醞藉而諄諄 中耿介而自持 衆雎雎而盰盰 獨整襟而敷危 超氛昏而孤邁

외온자이순순 중경개이자지 중저저이간간 독정금이부위 초분혼이고매

指終始而離訾 嗟知德者鮮矣 孰瑚璉之爲貴 就君才而議任 亦裕然於經緯

지종시이리자 차지덕자선의 숙호련지위귀 취군재이의임 역유연어경위

位八座而非滿 年六袟而何奪 豈仁壽之無徵 實天時之撏剝 痛餘哀於祥琴

위팔좌이비만 연육질이하탈 기인수지무징 실천시지잠박 통여애어상금

焂纏凶於稼木 隱天衷而輟宁 人百身而思贖 念見君之初載 共城南之螢雪

숙전흉어가목 은천충이철저 인백신이사속 염견군지초재 공성남지형설

始承懽於淡水 終見親於膠漆 恨分離於中晩 各牽掣於宦業 閱世故而萬變

시승환어담수 종견친어교칠 한분리어중만 각견체어환업 열세고이만변

見君心之如結 當戊戌之秋仲 余館賓於西郵 君持服於江介 佇莽蒼而懷悠

견군심지여결 당무술지추중 여관빈어서우 군지복어강개 저망창이회유

辱嗣子而問訊 副簡札而繆綢 時悤悤而寡賴 跡昧昧而愈獨 求交道於平生

욕사자이문신 부간찰이무주 시총총이과뢰 적매매이유독 구교도어평생

知百一而難得 綿歲月之幾何 遽幽明之永隔 發情函之未久 驚訃音之踵及

지백일이난득 면세월지기하 거유명지영격 발정함지미구 경부음지종급

哭寢門而失聲 駕素車而無從 哀吾黨之凋落 詠殄悴而增恫 閟純明於一丘

곡침문이실성 가소거이무종 애오당지조락 영진췌이증통 비순명어일구

已宿草之離離 斷牙絃而不御 伊余懷之誰知 構荒詞而託人 隔千里而杼情

이숙초지리리 단아현이불어 이여회지수지 구황사이탁인 격천리이저정

想精靈之如在 庶諒余之中誠

상정령지여재 서량여지중성

 

 

 

余愛君之淑美兮 내가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였노니

여애군지숙미혜

早託契於蘭室 일찍이 지란지교에 함께하였네.

조탁계어란실

自靑陽而遊從 어릴 적부터 좇아 노닐어

자청양이유종

斯皓首而無斁 흰머리에 이르도록 싫음이 없었네.

사호수이무두

君崑玉之溫姿 그대는 곤륜산 옥의 온화한 자질이요

군곤옥지온자

余山石之頑質 나는 뒷동산의 시원찮은 자질이니,

여산석지완질

豈琢磨之敢近 어찌 탁마로 가까이할 수 있으리요마는

기탁마지감근

偶臭味之相投 우연히 취미가 서로 투합하여

우취미지상투

飮醇酎而心醉 잘 빚은 술을 마시며 마음으로 취하였네.

음순주이심취

每自失而懷羞 매양 스스로 실망하여 부끄러움을 품었으나

매자실이회수

外醞藉而諄諄 밖으로는 평안하며 화애로왔다네.

외온자이순순

中耿介而自持 안으로는 꿋꿋한 절개 스스로 지니니

중경개이자지

衆雎雎而盰盰 사람들이 흘낏흘낏 멀리서 살펴보네.

중저저이간간

獨整襟而敷危 홀로 자리를 거두어 위태로운데 이르니

독정금이부위

超氛昏而孤邁 위기를 넘어 홀로 고매하다네.

초분혼이고매

指終始而離訾 처음이나 끝이나 헐뜯음을 만나니

지종시이리자

嗟知德者鮮矣 아! 덕을 아는 자 드무니,

차지덕자선의

孰瑚璉之爲貴 누가 호련이 귀한 줄을 알리오?

숙호련지위귀

就君才而議任 그대의 재주에 나아가 벼슬을 의논하자면

취군재이의임

亦裕然於經緯 또한 경천위지에도 넉넉하니,

역유연어경위

位八座而非滿 지위는 팔좌로도 차지 않을 것이며

위팔좌이비만

年六袟而何奪 나이는 육질에도 어찌 빼앗으리오?

연육질이하탈

豈仁壽之無徵 어찌 어진 이가 장수함이 징조가 없으리오?

기인수지무징

實天時之撏剝 참으로 하늘의 때를 따냈도다.

실천시지잠박

痛餘哀於祥琴 아픈 나머지 상서로운 거문고가 슬퍼하고

통여애어상금

焂纏凶於稼木 심은 나무에 흉함이 얽혀 있네.

숙전흉어가목

隱天衷而輟宁 숨은 하늘의 속마음이 멈추어 있고

은천충이철저

人百身而思贖 사람의 백년 인생에 생각이 남네.

인백신이사속

念見君之初載 그대가 처음 등재될 때를 생각하니,

염견군지초재

共城南之螢雪 성남의 형설지공과 같았다네.

공성남지형설

始承懽於淡水 처음 담수에서 벼슬에 올랐다가,

시승환어담수

終見親於膠漆 마지막 교칠에서 부모를 뵈었네.

종견친어교칠

恨分離於中晩 한은 중만에 얽히어 있고

한분리어중만

各牽掣於宦業 각기 벼슬길에 얽매었다네.

각견체어환업

閱世故而萬變 세상을 보니 만 가지로 변하는데

열세고이만변

見君心之如結 그대의 마음은 묶어놓은 듯 변함없다네.

견군심지여결

當戊戌之秋仲 무술의 중추를 만나

당무술지추중

余館賓於西郵 나는 서우에 있고,

여관빈어서우

君持服於江介 그대는 강개에 있을 때에

군지복어강개

佇莽蒼而懷悠 풀섶에 우두커니 서서 그윽히 생각하며

저망창이회유

辱嗣子而問訊 아들에게 소식 묻자니,

욕사자이문신

副簡札而繆綢 편지를 부침에 내마음이 엉켜있다.

부간찰이무주

時悤悤而寡賴 때는 총총하니 생각은 적고

시총총이과뢰

跡昧昧而愈獨 자취는 혼미하니 더욱 고독하다.

적매매이유독

求交道於平生 평생동안 교유의 길 구했으나

구교도어평생

知百一而難得 백에 하나도 얻기가 어려운 줄 알겠네.

지백일이난득

綿歲月之幾何 함께 사귄 세월이 얼마인가?

면세월지기하

遽幽明之永隔 갑자기 살고 죽음이 영원히 멀어지다니.

거유명지영격

發情函之未久 내 속마음 보인지 오래되지 않아서

발정함지미구

驚訃音之踵及 놀랍게 부음이 이르렀네.

경부음지종급

哭寢門而失聲 침문에서 통곡하여 목놓아 우노매라.

곡침문이실성

駕素車而無從 상여를 타나 좇는 이가 없네.

가소거이무종

哀吾黨之凋落 우리 무리가 시듦을 슬퍼하며

애오당지조락

詠殄悴而增恫 죽은 친구 애도하니 더욱 슬프구나.

영진췌이증통

閟純明於一丘 저 언덕에 순수하고 밝음을 묻으니

비순명어일구

已宿草之離離 이미 묵은 풀도 퇴색하다.

이숙초지리리

斷牙絃而不御 백아의 거문고줄 끊고 켜지 아니하니

단아현이불어

伊余懷之誰知 내 마음을 누가 알리오?

이여회지수지

構荒詞而託人 애사를 얽어 남에게 부탁하니

구황사이탁인

隔千里而杼情 천리를 떨어져 뜻을 보내노라.

격천리이저정

想精靈之如在 생각은 그대 영혼곁에 있는 듯하니

상정령지여재

庶諒余之中誠 아마도 내 정성을 헤아려주리.

서량여지중성

 

2. 神道碑銘 幷序 / 龍洲 趙絅 撰

신도비명 병서/ 용주 조경 지음

上下執公手曰 與卿等講治道 凡幾年 所乃有今日耶 公俯伏呑聲 仰以對曰 臣等之罪也 遂極諫去邠之非

請於明曉 出於敦化門 集衆 思招義勇 且以羽檄 徵四方兵 以示效死勿去之義 二百年休養生靈 寧無感動 言甚切至 上頷之

(상하집공수왈 여경등강치도 범기년 소내유금일야 공부복탄성 앙이대왈 신등지죄야 수극간거빈지비

청어명효 출어돈화문 집중 사초의용 차이우격 징사방병 이시효사물거지의 이백년휴양생령 영무감동 언심절지 상함지)


임금이 내려와 공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기를, “경등과 더불어 정치의 도를 강론한지가 몇 년인가?

어찌하여 오늘이 있을 수 있는가?” 공이 엎드려서 목소리를 삼키고 우러러 대답하기를,

“신등의 죄입니다.”라 하고는 마침내 도성을 떠나 피란하시는 일의 잘못됨을 극력 간언하고,

‘ 이튿날 날이 밝으면 돈화문에 나가서 군중을 모아놓고 의용군을 모집하며 격문으로 사방의 군사를 징집하여

죽어도 떠나지 않을 뜻을 보이시면, 200년을 아름답게 받들어온 생령들이 어찌 감동하지 않겠습니까?’로 청하니,

말이 매우 절절하고 지극하니 임금이 끄덕이셨다.


公退 省老親于家 則夜未艾矣 旋卽馳詣闕下 以俟敦化門御座之儀 乘輿已駕 出城矣 無如何

遂陪衛以從 至碧蹄 命加從臣 資且錄功 公與同寮 啓執不可承 允

(공퇴 성노친우가 즉야미애의 선즉치예궐하 이사돈화문어좌지의 승여이가 출성의 무여하

수배위이종 지벽제 명가종신 자차록공 공여동료 계집불가승 윤)


공이 물러나와 노부모를 집에서 살피니 곧 밤이 새지 않았더라.

발걸음을 돌려 곧바로 궐문아래로 나아가서 돈화문에 어좌의 행차를 기다렸더니,

수레에 멍에 이미 올라가서 성을 빠져나갔더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모시고 호위하며 좇았다.

벽제에 이르니, 호종한 신하들에게 직급을 올리고 공을 기록하라 명하니,

공과 동료들이 장계하여 (하루 호종의 공으로 과분한 상급을) 받들 수 없다 아뢰니, 윤허하셨다.


至松京 又與同寮 論首相李山海誤國罪 及金公亮招權黷貨 釀成禍亂 請罷山海 鞫公亮 上皆允之 仍命三司

入侍 上謂執義權悏曰 爾何不直 勸我去邠者 獨山海乎 柳成龍 亦然爾 公與悏 反復陳成龍之言 與山海異之之意

(지송경 우여동료 논수상이산해오국죄 급김공량초권독화 양성화란 청파산해 국공량 상개윤지 잉명삼사

입시 상위집의권협왈 이하불직 권아거빈자 독산해호 류성룡 역연이 공여협 반복진성룡지언 여산해이지지의)


송도에 이르러 다시 동료들과, 수상(영의정) 이산해가 나라를 잘못 이끈 죄

(역자주 : 구체적으로는 섣불리 임금의 거처를 옮기게 결정한 것을 말함)와

김공량이 권력을 통해 뇌물을 받아 화란을 빚은 죄를 의논하여,

이산해를 파직하고 김공량을 국문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모두 윤허하였다.

곧이어 삼사에 명하여 입시하게 하니, 임금이 집의 권협에게 일러 말씀하기를,

“너는 어찌 정직하지 못하는가? 나에게 서울을 떠나 피란하도록 권한 것이 유독 이산해 뿐이었는가?

유성룡도 역시 그러했느니라.”라고 하니,

공과 권협이 반복하여 유성룡의 말이 이산해와는 달랐다는 뜻을 진언하였다.


* 이부문에서 류성룡도 그러했느니라 하는 선조대왕의 말씀은

류성룡과 김찬의 관계가 목숨을 주고 받을 만큼 친밀함을 알고 있을을 확인할수 있다.

(왕조실록에 더 자세하게 나옴)


時故相鄭澈 自行在 拜都體察使 來江華 奏公爲副 癸巳 改全羅道都檢察使

冬劉總兵綎 統兵南下 自行在 命公爲接伴使 公儐相以禮 與俱上下於兵間

披露肝 隔無間 雖以天將之貴倨 亦致敬重焉 臨別 贈以其先稿一帙 爲信

甲午秋 隨總兵 至義州 冬復命

(시고상정철 자행재 배도체찰사 내강화 주공위부 계사 개전라도도검찰사

동유총병정 통병남하 자행재 명공위접반사 공빈상이례 여구상하어병간

피로간 격무간 수이천장지귀거 역치경중언 임별 증이기선고일질 위신

갑오추 수총병 지의주 동복명)


訃聞輟朝 遣郞文以祭之 越明年二月 葬于龍仁縣 西頭郞里 午向之原 從先也

(부문철조 견랑문이제지월명년이월 장우용인현 서두랑리 오향지원 종선지야)

부임이 알려지자, 조회를 멈추고 애도하였으며, 낭관을 보내어 제사하게 하고,

이듬해 2월에 용인현 서쪽 두랑리 오향의 언덕에 장례지내니 선지(先坻)을 따른 것이다.


夫人陽城李氏 甲午名臣大司憲 世英之曾孫 務功郞 墉之女 在家以孝稱 十六歸公

事舅姑盡婦道 佐君子主中饋 肅恭誠至 及公歿 以未亡居者 三四十年 持門戶 斬斬如也

(부인양성이씨 갑오명신대사헌 세영지증손 무공랑 용지녀 재가이효칭 십육귀공

사구고진부도 좌군자주중궤 숙공성지 급공몰 이미망거자 삼사십년 지문호 참참여야)


絅入甥館以來 升堂起居者數 夫人見子壻輩 必以議政公事勗之曰 夫子治經業 不翅若嗜欲 一月之內

未嘗見一日怠 而在家也 問其所與遊則盡一時名流而其中最相善者 西崖柳相 鶴峯金公也 金公於辛卯奉使日本也

無一字家問而獨於公 封尺牘示情 素柳相坐時論 幾齮齕墳墓矣 聞公之歿 哭而失聲 馳誄千里

一字一淚云 此非老婦臆說公 猶子慶建 能親目見二事而云

(경입생관이래 승당기거자수 부인견자서배 필이의정공사욱지왈 부자치경업 불시약기욕 일월지내

미상견일일태 이재가야 문기소여유즉진일시명류이기중최상선자 서애유상 학봉김공야 김공어신묘봉사일본야

무일자가문이독어공 봉척독시정 소유상좌시론 기기흘분묘의 문공지몰 곡이실성 치뢰천리

일자일루운 차비노부억설공 유자경건 능친목견이사이운)


내가甥館(생관 : 처조카집)에 들어간 이래로 집안에 출입한지가 여러 번인데,

부인께서 자식들과 사위들을 보심에 반드시 돌아가신 공의 일로 권면하시어 이르기를,

“돌아가신 어른께서는 경학에 전념하시기를 즐거운 듯 하셨을 뿐 아니라,

한 달 안에 하루라도 나태함을 보이신 적이 없으셨고,

또한 집에 계실적에 그 더불어 교유하시는 사람들을 물어본 즉 다 당대의 명사들이신데,

그 중에서도 가장 서로 잘지내시는 분은 서애 류성룡공과 학봉 김성일공이시었다.

김공은 신묘년에 일본에 봉사로 가셨을 때에 집에는 일자 소식도 전하지 않았는데도

유독 공에게는 편지를 보내오셔서 정분을 보이셨고,

평소에 류성룡공이 시론에 연루되어 거의 분묘를 깨물 듯이 칩거하셨는데도,

공이 돌아가심을 듣고는 통곡하여 목소리를 잃으시고는 뇌사를 천리에서 보내오심에

한 글자가 눈물 한 방울씩 떨어져 얼룩졌다고 하니,

이것은 늙은 할미(김찬의 부인)의 억지로 말하는 것 아니라,

오히려 장조카 경건도 직접 한 두 가지 일을 목격한 바라 하였다.

<카페 ----------------豊柳마을에서>


류성룡(1542년-1607년) 풍산류씨 서애 문충공 영의정 풍원부원군

      류성룡의 모친 안동김씨는 송은 김광수(안동김씨 도평의공파)의  따님

찬(1543년-1599년) 안동김씨 눌암 효헌공 이조판서 예조판서 증영의정

                                                        (안동김씨 익원공파) 

경(1586년-1669년) 한양조씨 용주 문간공 이조판서 증영의정

                               눌암 효헌공 김찬의 4째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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