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安東門里磨崖三尊佛立像
태안동문리마애삼존불입상
문화재 지정 국보 제307호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원이로 78-132(동문리 산 5)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불상. 높이 좌불 2.07m, 우불 2.09m, 중앙보살 1.3m.
국보 제307호.
바위의 동면에 감실을 마련하고 삼존불입상을 새겼다. 보살의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이다.
국보 제307호. 거대한 바위의 동면(東面)에 감실(龕室)을 마련하고 삼존불입상을 새겼다.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脇侍菩薩)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삼존 배치와 달리,
중앙에 보살,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였다.
더욱이 좌우의 불상은 큼직하고 중앙의 보살은 상대적으로 작아
1보살(一菩薩)·2여래(二如來)라고 하는 파격적인 배치와 함께 특이한 구도를 보여 주고 있다.
좌우의 불상은 기본적인 형태가 같다. 다만 오른쪽 불상의 얼굴이 뚜렷하고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두 손의 인상(印相)이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을 한 모습이 약간 다를 뿐이다.
왼쪽 불상은 소발(素髮)의 머리에 팽이 모양의 육계(肉髻)가 표현된 것이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軍守里石造如來坐像, 보물 제329호)과 비슷하다.
그래서 얼굴의 기본 골격과 함께 같은 백제불의 전통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 같다.
얼굴은 살이 붙어 양감이 있는 데다 근육이 팽창되어 강건한 인상을 보여 준다.
가는 눈, 꽉 다문 입과 보조개, 큼직한 코 팽창된 뺨과 함께 만면에 미소가 번지고 있어 고졸하고 장중한 인상을 풍긴다.
신체 역시 장대하여 얼굴과 잘 조화되어 있다. 하지만 얼굴은 신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아서 서로 대비된다.
이러한 점이 중국의 북제(北齊) 불상 내지 수(隋) 불상의 장대한 양식 계열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좀 더 위풍당당한 점에서 부처의 위엄을 명쾌하게 표현하였다.
통견(通肩)의 불의(佛衣)도 두껍고 힘 있게 처리되었으며,
앞자락이나 두 팔에 걸쳐 내린 옷자락도 묵직하게 표현되어 부처의 위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두 손은 가슴 부근에 평행되게 모아 오른손은 손바닥을 보이면서 손가락을 굽히고 왼손은 보주(寶珠)를 살짝 잡고 있다. 능숙한 기량에는 미치지 못하는 고졸성(古拙性)을 보여 준다.
띠 매듭은 전 황룡사 금동불입상(傳 皇龍寺 金銅佛立像)의 것과 함께
중국과는 다른 우리나라 불상의 형식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중앙의 보살은 기본적으로는 좌우 두 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여성적이며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이 점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의 오른쪽 협시보살과 비교될 수 있다.
그러나 능숙한 기량과 세련된 아름다움까지는 진행되지 못한 것 같다.
묻혀 있었는 대좌는 들어낸 결과,
단판연화문(單瓣蓮花文: 홑잎의 연꽃잎무늬)로 날카롭고 분명한 연꽃을 표현하고 있어
백제 연꽃무늬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큰 바위에 삼존을 조각하고 여기에 목조전실(木造前室)을 조영하였던 일종의 마애석굴사원 내의 불상이다.
북위(北魏) 말 이래 중국의 산둥 지역에서 유행하던 마애석굴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생각된다.
또한 양식상으로는 중국 북제불 양식 계통을 따르고 있어 제작 연대는 7세기 초로 볼 수 있다.
지역적으로도 당시 삼국시대에 중국과의 교역에서 교두보 구실을 하였던 태안반도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새로운 석굴사원 양식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感慕臺감모대
태을동천 앞쪽에는 일소계(一笑溪)
태을동천(太乙洞天)을 쓴 金圭恒김규항의 아들 김윤석씨의 글이라네요.
김규항씨는 (1881년 6월 15일생) 43세에 이 태을동천(太乙洞天)을 썼고,
김윤석이 (1917년 11월 26일생) 일소계(一笑溪)를 썼다고 한다.
이 감모대(感慕臺)는 당시 지역의 부호였던 김씨 가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정리가 된다.
感慕臺감모대
一笑溪일소계
태안 마애삼존불 바로 옆에는 지금은 물이 말라있지만
계곡 신선바위 벽면에 "태을동천"이라는 글이 음각되어 있다.
태을동천은 1800년 후반 김규항이란 사람이 9살때 필체라고 전해져오고
적색 각자의 "일소계" 는 그의 아들 김윤석이 적었다고 한다.
太乙洞天태을동천이란?
"태을" 은 도교사상에서 하느님이나 옥황상제를 뜻하며
"동천" 이란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뜻으로 신선동네로 아름답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이곳은 하늘과 통하는 아름다운 곳이라 뜻이다.
또한, 도교에서 ‘태을’ 이란 오늘날 북극성인 태일성이라 했는데
태일성에 옥황상제가 머무르는 것을 ‘태을’ 이라 하고,
‘동천’ 이란 신들이 산다는 별천지라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는 통할 통자로 해석해서 이곳은 옥황상제가 상거하는 태일성과 통한다는 뜻이라 한다.
태을동천(太乙洞天) 글 우측에 “계해맹추해초김규항제(癸亥孟秋海超金圭恒題)”
“계해년(1923) 음력 7월에 김규항이 지었다.
1923년 여름에 태을동천(太乙洞天)이라는 글을 새기고,
그 다음해인 1924년에 그 주변에 글을 새기고 족보를 보관한 것이라고.....
먼저 태을동천(太乙洞天) 상단에
“가락기원 1883년 갑자(駕洛紀元一千八百八十三年甲子)”라는 각자가 보이는데,
가락(駕洛)이란 김해김씨의 기원을 말하는 것이며,
가락국(駕洛國)은 서기 42년에 김수로왕이 세웠으니, 1883년을 더한 후 1년을 빼면 1924년 갑자(甲子)
우측상단에는 김해김씨장보품(金海金氏藏譜品) 각자는 김해김씨 보책을 저곳에 보관하였다고???
오언절구五言絶句
重來非偶事 중래비우사 = 어쩌다 오는 것이 우연이 아니니
詣點說前緣 지점설전연 = 전해오는 인연으로 이곳에 이르렀네
歷歷靈山蹟 역역영산적 = 영산에 자취 또한 그대로이니
沼然一笑邊 소연일소번 = 호젓이 웃음한번 지어보네
태을동천 앞쪽에는 일소계(一笑溪)
태을동천(太乙洞天)을 쓴 金圭恒김규항의 아들 김윤석씨의 글이라네요.
김규항씨는 (1881년 6월 15일생) 43세에 이 태을동천(太乙洞天)을 썼고,
김윤석이 (1917년 11월 26일생) 일소계(一笑溪)를 썼다고 한다.
이 감모대(感慕臺)는 당시 지역의 부호였던 김씨 가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정리가 된다.
"태을동천"이라 음각된 감모암 바위를 올라서면
옛 선비들이 바둑을 두었던 흔적으로 바위에 바둑판이 그려져 있었다.
예전에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마애삼존불 바라보며, 세월을 낚으며 신선놀음에 취해 보고픈 심정이다.
◆◆김규항(金圭恒)◆◆
1881년에 태안읍 남문리에서 출생,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관후(寬厚)하고 자비심이 많아 동네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성장.
성년이 되어 본격적인 사회 활동을 시작하며
가난한 사람과 병약자를 돕고 흉년이 들면 소작인에게서 소작료를 일정 받지 않으며 대우하여 주고,
많은 자선 사업을 실시하여 원근 각지에서 주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지금도 태안읍 남문리에는 그의 뜻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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