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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동락팔곡, 청성서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호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2. 1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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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 묘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산78-1

 

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1532(중종 27)1587(선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는 장중(章仲), 는 송암(松巖).

안주교수(安州敎授) ()의 아들이다.

1549(명종 4) 아버지를 여의고 156130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1564년에 어머니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靑城山) 아래에 무민재(無悶齋)를 짓고 그곳에 은거하였다.

이황(李滉)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같은 문하생인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이들로부터 학행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만년에 덕망이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다.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내시교관(內侍敎官)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56세로 일생을 마쳤으며, 묘지는 안동부 서쪽 마감산(麻甘山)에 있다.

안동의 송암서원(松巖書院)에 제향되었다.

그는 평생을 자연에 묻혀 살았는데,

이황은 그를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고 하였고,

벗 유성룡도 강호고사(江湖高士)라 하였다.

저서로는 송암집이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경기체가의 변형형식인 독락팔곡 獨樂八曲>

연시조인한거십팔곡 閑居十八曲이 있다.

 

 

                          청성산인권호문지묘

 

 

 

 

 

 

 

 

 

 

 

청풍사

 

 

 

 

 

 

 

 

 

 

 

청성서원(靑城書院)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159 에 있는 조선 중기 서원.

건립시기 1612(광해군 4) 

청성서원은 조선 중기의 학자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을 추모하는 서원이다.

권호문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제자이며,

류성룡(柳成龍, 1542~1607)·김성일(金誠一, 1538~1593) 등과 깊이 사귀었다.

만년에 덕망이 더욱 높아져 문인들의 출입이 잦았으며,

참봉·교관(敎官) 등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나아가지 않고 평생을 자연에 묻혀 살았다.

저서로 송암집(松巖集)62책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경기체가의 변형 형식인 독락팔곡(獨樂八曲)과 연시조인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이 전한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159번지에 있다.

청성서원은 1608(선조 41) 사림의 발의로 연어헌(鳶魚軒) 옛 터에 건립하였다.

1612(광해군 4) 권호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고, 1767(영조 43)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9년 도내 유림들의 뜻에 따라 옛 터에 복원하였다.

청성서원은 강당, 동재(東齋서재(西齋), 정도문(正導門), 청풍사(淸風祠), 전사청(典祀廳), 신문 등

 모두 7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청성서원은 19858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되었다.

2011년 현재 소유자는 권오상이다.  매년 2월 하정일(下丁日)8월 하정일(下丁日)에 향사를 지낸다.

--디지털안동문화대전에서--

 

 

 

 

 

 

 

 

 

 

 

 

동재

 

서재

 

 

 

獨樂八曲동락팔곡

1581(선조 14) 권호문이 지은 경기체가.

송암별집 松巖別集1 연보에 따르면,

권호문이 50세 되던 해 내시교관을 제수받았으나 이 노래를 지어 벼슬을 사양하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과거공부나 벼슬살이는 선비의 뜻을 해치는 일이므로,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낚싯대와 갈매기를 벗삼아 풍류를 즐긴다며 은거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제목과 달리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긔 엇더 이미지니잇고"라는 구절이 매장 끝부분에서 반복되는 것 외에는

경기체가의 형식적 특징이 거의 지켜지고 있지 않다.

1215년경 최초의 경기체가인 한림별곡 翰林別曲이 지어진 이래

 400여 년 간을 지속해온 경기체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벽암 두릉연가

1

태평스럽고 성스러운 시대에, 시골에 은거하는 절행이 뛰어난 선비가, (재창) 구름덮인 산기슭에 밭이랑을 갈고,

내낀 강가에 낚시를 드리우느니, 이밖에는 일이 없도다. 빈궁과 영달이 하늘에 달렸으니,

가난함과 천함을 걱정하리오. 나라때 궁궐문이나 관아앞에 銅馬를 세움으로 명칭한 金馬門,

翰林院의 별칭인 玉堂署가 있어, 이들은 임금을 가까이서 뫼시는 높은 벼슬아치로,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로다. 천석으로 이루어진 자연에 묻혀 사는 것도, 仁德이 있고 수명이 긴 壽域으로

盛世가 되고, 초옥에 묻혀 사는 것도, 봄전망이 좋은 春臺로 성세로다. 어사와! 어사와! 천지를 굽어보고

쳐다보며, 삼라만상이 제각기 갖춘 형체를 멀리서 바라보며, 安靜된 가운데 넓고도 큰 흉금을 열어제쳐 놓고

홀로 술을 마시느니, 두건이 높아 머리뒤로 비스듬히 넘어가, 이마가 드러나서 예법도 없는데다

길게 휘파람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2

초가삼간이 너무 좁아, 겨우 무릎을 움직일 수 있는 방에는, 지행 높고 한가한 사람이,

(재창) 가야금을 타고·책읽는 일을 벗삼고·집둘레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로 울을 하였으니,

찢기어진 생계와 산뜻하게 가슴깊이 품고 있는 회포는, 속세의 명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디서 나리오.

저녁 햇빛이 맑게 개인 곳에 다다르고, 흰갈대꽃이 핀 기슭에 비쳐서 붉게 물들었는데,

남아 있는 내에 섞여 부는 바람결에 버드나무가 날리거든,

하나의 낚시대를 비스듬히 끼고·세속일을 잊고서 갈매기와 벗이 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3

선비는 무엇을 일삼아야 하느냐, 뜻을 높게 가질 뿐이로다. (재창) 과거급제란 명예로움은 내 뜻을 손상시키고,

이익과 출세란 덕을 해치는 것이로다. 모름지기 책가운데서 성현을 뫼시옵고,

언어와 정신을 맑은 달밤에 잘 가다듬고,고요히 수양하여, 내 한몸이 바르게 된다면 어디러로 못 가리오.

굽어보고·쳐다보아 크고 넓게 포용하는 모습이 왕래가 평이로워지느니, 내 갈 길을 알아서 뜻을 세우지 아니하리오

벽처럼 선 낭떠러지가 만길은 되는데, 내 마음은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변하지 않느니,

뜻이 커서 말함이 시원스러운데다, 책 읽어 아득한 옛 현인을 벗으로 삼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4

韓愈가 산에 들면 산이 깊지 않을까 두려워 하고, 숲에 들면 숲이 빽빽하지 않을까 두려워 하며,

마음은 너그럽고도 한가한 들판에서 밭을 갈고, 쓸쓸한 물가에서 낚시를 드리울 수 있는,

살만한 곳을 가려 점쳐서 정하였느니, 시골사람의 의복에다 野人의 관을 쓰고 살면서, 물고기와 새밖에는 벗이 없도다

향그러운 교외에는 비가 개이고, 수많은 나무들에는 꽃이 떨어진 뒤에, 명아주지팡이를 짚고서,

십리되는 시냇머리를 한가하게 오고 가는 뜻은, 마치 曾點氏沂水에서 목욕하고·舞雩로 바람을 쐬며 돌아오는

산뜻한 그 기분과, 程明道가 꽃을 곁에 두고 버드나무를 좇아 거닐던 기분도 이렇던가 어떻던고.

따스한 햇볕과 청명한 날씨에 부는 바람이 불거니·밝거니 하여 흥취가 내앞에 가득하여지느니,

침착하고도 여유있는 가슴속이, 천지만물과 더불어 상하가 함께 흘러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5

내집은 저 後漢范萊蕪가 끼니가 떨어질 정도로 가난하였어도, 태연자약하게 초야에 묻혀 살았듯,

前漢蔣元卿이 뜰앞의 꽃과 대나무 아래에다 세갈래 길을 여고, 求仲羊仲으로 더불어 조용히 놀기를 구하였도다.

평생동안 덧없는 인생이 이렇다고 어떠하리. 진실로 은거하여 뜻을 구하고,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대부가 타는 수레와 복장이 진흙처럼 천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종묘에 두는 그릇에다 공적을 새긴 이름도 아득한 후세에는 흙먼지에 지나지 않는도다.

천번이나 갈았는 서릿발 서슬이 푸른 날카로운 칼날일지라도 이 뜻을 끊으랴. 韓昌黎는 세번이나 상서를 올림에,

그 때마다 귀양을 감으로써 벼슬길이 막혔는데, 그것은 나의 뜻에 각기 달랐고,

杜子美三大禮賦를 올림에 드디어 벼슬길이 트였다고, 내 마침내 그러한 도를 행하랴. 두어라,

그들은 그들의 작위를 가지고 행하나, 나는 나의 正義를 가지고 행하는데,

남의 수놓은 비단옷(벼슬)을 원치 않으매, 세간의 만사가 모두 천명에 달려 있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6

임금님 계신 곳은 깊은 구중궁궐이고, 초야에 묻혀사는 백성들과는 만리로 막혔느니,

십년동안 마음에 생각한 일을 어찌하여 위로 임금님께 여쭈어 알게하리오.

운수가 기이하여 내 계책을 봉하여 둔 지가 오래되었도다. 벼슬하면 임금에게 충성함에 이르게 되고,

백성에게는 은택을 내려 주어야 하는 것인데, 이는 나의 천부의 재능이 아니던가

경서를 궁구하는 가운데, 성현의 도를 배우기 위한데다 뜻을 두고 이리하랴. 차라리 쉬지 않고 글을 읽어서,

배움에 힘쓰는 저 언덕과 구릉이 있는 은거처에서, 세상을 숨어 살아도 고민이 없으매,

나를 따르는 벗님네 뫼옵고 史書庫綠牙籤을 표지로 한,

장서가 가득한 창앞에서 성현의 경서를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궁구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7

하나의 병풍에다 하나의 평상을 두고, 왼쪽에는 경계가되는 箴言·오른쪽에는 마음에 아로 새길 座右銘을 두고,

 (재창) 귀신의 눈으로 볼 제는 번갯불같이 밝게 보이므로, 어두운 방안이라고 제 마음을 못 속이며,

하늘이 들을 제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므로, 사사로이 하는 말이라도 망발을 하랴.

군자가 경계하고·삼가며 몹시 두려워 하는 것은, 은암한 곳보다 더 잘 드러나는 곳은 없고,

세미한 일보다 더 뚜렷해진다는게 없다는 사실을 잊지마세.

앉은 모습은 尸童氏처럼 반드시 공경하고·장중한 태도로 앉아야 하고,

얼굴빛과 몸가짐은 엄숙하고·단정하게 가져서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처럼, 낮에는 하루종일 쉼없이 노력하고,

저녁에는 반성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뜻은,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잘 섬김으로써,

내 몸 밖에서 오는 누끼치는 일을 물리쳐 없애고, 온몸이 을 좇아서,

아비는 의롭고·어미는 자애롭고·형은 우애롭고·아우는 공경하고·아들은 효성함으로써, 五常을 싫어함이 없어야만,

 백성들이 잘 다스려져 평안한 세상이 되게 하고, 사업을 모두 이루고자 하였더니, 때가 아닌지 운명인지,

마침내 성공함이 없었고, 세월은 나와 더불어 기다려 주지 않으니,

흰머리의 늙은이로 숲과 샘이 있는 은거처에서 할 일이 다시 없도다. 우습다,

산의 남쪽과 물의 북쪽인 양지바른 곳에다 내 발자취를 거두어 감추고,

평생동안을 한가하게 늙어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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